오늘도 평범했던 어제같이 인스타에 들어갔다. 인스타 상단에 보이는 형형색색의 프로필이 거슬리게 보인다. 이런 거추장스러운 건 눌러서 없애버려야 한다. 없애기 위해 친구의 프로필을 눌렀다. 학교 친구들의 일상이 보였다. 여행을 간 친구, 교실에서 찍은 사진을 올린 친구, 학교 농구장에서 찍은 사진을 올린 친구. 나도 전에는 그 친구들과 같은 일상을 공유했었다. 학교 끝나고 먹는 초코 애몽이 제일 맛있다고 매점을 가기도 했고, 농구하는 친구들을 벤치에 앉아 멍하니 구경하기도 했다.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스토리를 넘기다가 Y가 올린 사진에서 드디어 멈추었다. 천안의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지리 선생님, 영어 선생님, 사회 선생님이 보였다. 선생님들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친구들을 보니 반가웠다. 그 사진에 내가 없다는 사실이 양가감정을 준다. 어른들이 가끔 '시원섭섭하다'라고 할 때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이제는 제대로 안다. 나의 첫 번째 통합 답사도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반학교에서 중간고사를 볼 때 즈음 내가 다녔던 대안학교에서는 2박 3일로 '통합 답사'를 간다. 통합 답사는 그냥 놀러 가는 것이 아닌 여행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배우기 위함이다. 8학년 때 (대안학교는 7학년부터 12학년까지 있다.) 나는 처음으로 통합 답사를 갔다. 원래는 7학년부터 가지만 나는 코로나 여파로 7학년 때 가지 못했다.
통합 답사를 갈 생각에 이른 아침부터 설레었다. 8시 20분까지 미금역으로 오라는 멘토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 부리나케 준비했다. 이쁜 옷을 입고 가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많이 왔던 날이었다. 고민 끝에 검은색 옷을 집었다. 비 오는 날 예쁘게 꾸며서 뭐하냐는 생각이었다. 간단히 꾸민 후 새로 산 가방에 몇 가지 짐을 넣었다. 지도가 들어있는 워크북과 필통, 간식과 여분 양말을 여러 번 확인하고 나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엄마 차 내비게이션에 8시 10분 도착이라고 떠있다.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비가 오다 보니 차가 막힐 테니 말이다. 그러지 않길 바라다 잠에 들었다. 이제 도착했을까? 나는 잠에서 깨 창밖을 봤다. 미금으로 들어서는 터널이었다. 시간을 보니 8시 15분 주변에는 차가 꽉 차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가다 보니 인도가 나왔다. 엄마는 늦을 게 분명하니 그냥 뛰어가라고 거기에 내려주셨고 나는 우산을 쓰고, 있는 힘껏 뛰었다. 비 오는 날 땀이 나도록 뛴 덕에 다행히 편의점에 들를 시간을 확보했다. 아침에 깜빡하고 물을 안 챙겼기 때문이었다. 편의점에서 자일리톨과 물을 사서 또다시 뛰었다. 웅덩이를 피한다고 노력은 했건만, 신발과 양말이 몽땅 젖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제 저 횡단보도만 넘으면 도착이었다. 초록불이 뜨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때, 멘토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하아... 레고야 20분까지 오라니까 왜 이렇게 늦니? 언제쯤 올까?”
선생님의 한숨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 말씀 하실 거면 동료직원한테 먼저 하시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옆반 선생님도 같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이가 없었다. 금방 도착한다고 퉁명스러운 어투로 대답한 후 횡단보도를 건넜고,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버스에 올라탔다.
나는 차멀미를 심하게 하는 편이다. 내가 찾은 최고의 특효약은 자일리톨이다. 지각을 할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나는 자일리톨 구매를 까먹지 않았다. 통합 답사라는 설렘이 선생님의 불공정한 지각 독촉 전화 때문에 살짝 흐려지려고 했다. 가방에서 자일리톨을 생각보다 일찍 꺼내 입안에 넣은 이유는 이 좋은 기분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간절함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입 안이 알알하다가 상쾌해진다. 그 순간 비가 그치고 맑은 햇빛이 달리는 창 밖으로 쏟아졌다. 날씨가 좋아지니 버스 안의 친구들도 덩달아 기분이 한껏 달아올랐다. 우리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 각자의 카메라를 꺼내 들어 서로를 찍어주고 카메라를 바꿔가며 깔깔거리며 셔터를 눌러댔다.
버스가 멈추고 우리는 어딘가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고려궁지'라는 푯말이 보였다. 통합 답사를 가기 전 학교에서 미리 짠 조대로 모였다. 내가 속한 조는 지독히도 내성적인 남자 하나(이하 내향인), 지독히도 계속 말을 내뱉는 (분명 한국사람인데 계속 영어를 지껄여 내며, 거기에 간간히 누가 시키지도 않는 노래를 계속해대는) 여자 하나(이하 시끌이), 그리고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가장 지독한 (전 글에서 이미 등장한) 또라이 나와한 조가 되었다. 조 편성은 랜덤이었다. 일명 뽑기. 학생들이 한 명씩 조가 적힌 종이를 뽑는 방식이었다. 내 손으로 뽑아서 누구를 원망할 수는 없지만, 조원을 확인하고 나서는 내 손을 뽑아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첫 번째로 들린 곳은 용흥궁이었다. 용흥궁은 조선의 25대 왕인 철종이 살던 곳이었다. 갑자기 설레기 시작했다. 통합 답사를 갈 무렵 봤던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철종이었기 때문이다. 철종 역을 맡은 사람은 이원범이었다. (논란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비가 와서인지 용흥궁은 초라하고 쓸쓸한 느낌만 남아있었다.
우리 조는 용흥궁에서 고려궁지로 떠났다. 고려궁지에 도착하니 역사 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역사 선생님은 우릴 앉히더니 고려궁지에 대한 설명을 하셨다. 고려궁지는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도읍을 개경에서 강화로 옮겨 38년간 사용되던 고려 궁궐터이다. 강화의 고려 궁궐은 1270년 송도로 환도할 때에 몽골의 압력으로 모두 허물어졌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고려 궁궐터에는 강화의 지방 행정관서와 궁궐 건물이 자리를 잡았다. 강화의 궁궐은 행궁과 장녕전, 만녕전, 외규장각 등이 있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불타 없어졌다. 지금은 강화유수가 업무를 보던 동헌과 유수부의 경력(직분)이 업무를 보던 이방청 등 조선시대 유적만 남아있었다. 동헌 내부에 있던 인형이 눈을 부라리는 게 무서워 쓱 보고 다시는 보지 않았다. 고려궁지도 휑했다. 사람들도 우리밖에 없었다.
고려궁지를 한 바퀴 도는 동안 또라이와 시끌이는 계속 투닥거리고 내향인과 나는 그 둘을 말리다 지쳐 방관했다. 하지만 심도직물 공장 굴뚝 앞에서부터 역할이 바뀌었다. 나와 또라이가 투닥거리고 시끌이와 내향인은 방관하였다. 우리는 한 바퀴 다 돌아본 후 밥을 먹기 위해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갔다. 나와 또라이가 투닥거리며 걷다 보니 친구들과 간격이 벌어져 어느새 둘만 걷고 있었다. 또라이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야 떨어진 김에 인터뷰 하나만 하자.”
“인터뷰? 뭔 인터뷰?”
“너 내 머리핀 왜 자꾸 만지냐?”
내가 또라이의 머리핀을 계속 만졌나 보다. 일단 남자애가 머리에 핀을 꽂은 것이 신기했고, 게다가 문어모양 핀이었다.
“귀여워서”
“내가 좀 귀엽긴 하지.”
“네? 누가 그런답니까, 당신 귀엽다고? 당황스럽네..;;”
나는 실소를 터트렸다. 또라이가 미친 듯이 뛰었다. 또라이를 따라가 뛰었다. 버스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선생님들을 지나쳐 버스 안으로 들어와 가방에 있던 민트 초콜릿을 꺼내 입에 넣었다. 민트 초콜릿이 자일리톨처럼 입을 상쾌하게 했고 이어 달달함이 느껴졌다. 내 초콜릿을 본 친구가 한 개만 달라고 부탁을 해 고민을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친구들에게 간식을 나눠주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위치를 파악하고 친구에게 초콜릿 하나를 몰래 나눠주었다. 친구는 안 걸리면 된다고 한입에 먹었지만 다른 친구가 선생님께 일러바쳤다. 선생님께 불려 나갔다.
“강레고!! 너 나와. 너 집 가고 싶어?? 주지 말라했는데 왜 주는 거야? 너 진짜... 하...”
“죄송합니다..”
집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집에 가고 싶다고 하면 더 혼낼게 분명했다. 억울했다 나만 애들에게 나눠준 게 아니라 다른 애들도 나눠줬기 때문이었다. '알지도 못하면서 혼자 왜 오버야?'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속으로 삼켰다. 나는 선생님을 불렀다. 삼킨 억울함이 입 밖으로 쏟아졌다.
"선생님 저만 준거 아닌데요 H도 저한테 과자 줬고요, S도 저한테 캐러멜 줬고요, Y는 S한테 마이쮸 줬고 P는 Y한테 젤리 줬는데요..."
"야야 걔들은 몰랐겠지. 그리고 걔네가 준다고 너까지 줘야겠냐? 하여간 말은 지지리도 안 들어요"
나는 선생님께 더 혼났다. 선생님은 더 혼내시지 않고 밥부터 먹으라고 돌려보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딴 데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고기는 안 먹고 나는 김치만 꾸역꾸역 먹었다. 다 먹고 잔반 처리를 하는데 날 혼내신 선생님이 서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데 그 선생님이 한마디 했다.
“너 왜 이렇게 조금 먹냐?”
이제 하다 하다 밥 먹는 걸로 뭐라 하는 건가? 그냥 웃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교산교회였다. 기독교학교를 티 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사진을 찍고 30분 정도 서서 강의를 들었다. 교산교회는 1893년 존스 선교사가 지은 교회이다. 강화도에 기독교를 전파시키기 위한 첫 발걸음이 교산교회라 한다. 날 혼내신 선생님이 날 불렀다. 왜지? 심장이 팔딱팔딱 뛰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사진을 찍어주셨다. 아, 그래 사진.. 하며 나는 어색한 브이를 했다. 경치는 보지 못하고 선생님 눈치만 봤다. 교산교회는 내 기억에 없다.
다음 장소는 평화전망대였다. 강화 평화전망대는 전망하기 힘든 이북의 독특한 문화 생태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고 비교할 수 있도록 준공되었다.
1층에는 북한의 물건을 팔기도 하지만 보면 남한 것만 9할이다. 평화전망대는 고요했다. 평화전망대에서 본 북한의 모습은 평화로웠다. 우리나라와 별 다를 것 없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편이 아렸다. 같은 모습을 한 한민족이 이리 가까이 보이는데도 넘나들수 없다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레고야 우리 밖에 나갈래?”
친구가 내 손을 잡고 바깥으로 나갔다. 내 기분을 풀어주려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날 혼내신 선생님이 계셨다.
“야 가자”
내가 친구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친구도 그 선생님이 불편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뒤돌아 원래 있던 곳으로 가려던 찰나
“너네 여기 서봐라”
“네..?”
“여기 북한 잘 보여.”
“ㄴ.. 네??”
“서봐 사진 찍어줄게.”
“아, 넵.”
그렇게 선생님은 우리의 사진을 찍어주시곤 안으로 들어가셨다. 뭐지 싶었지만 멋진 사진 한 장을 건졌다. 선생님은 츤데레인가.. 아쉽게도 전망대 밖의 망원경에는 북한이 육안으로 보는 것만큼 잘 보이지 않았다. 전망대 앞에 튀어나온 부분 때문인지 자리를 잘못 잡았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전망대를 돌아보다가 광장으로 보이는 곳에 갔다. 우리 애들이 모여 있었다. 무리를 이탈해있었다. 우리 애들은 그곳에서 조별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또라이가 나를 찾았다. 또라이는 내 멱살(진짜다)을 잡고 조가 모여 있는 곳에 데려갔다. 내향적인 애가 내 위치를 잡아주더니 가만히 도망가지 말고 서있으라고 했다. 내향적인 애는 나를 찍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또라이가 나를 밀치더니 포즈를 잡기 시작했다. 또라이가 사진을 찍는데 친구 H가 갑자기 내 팔짱을 끼더니 또라이 옆에 세워, 또라이와 같이 사진을 찍게 하였다. 나와 또라이는 인상을 썼다.
"아 뭐하냐?"
나는 H에게 정색하고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러자 H가 또라이를 좋아해서 그러냐, 사랑이냐며 별 시답잖은 말을 했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얘가 갑자기 나타나 팔짱을 낀 것도 기분이 안 좋았고, 이 친하지도 않은 친구가 또라이와 나를 엮는다는 게 기분을 더 나쁘게 했다. H의 무례한 행동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얘와 처음으로 부딪힌 건 7학년 때였다. 평소처럼 나는 친구들과 사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내 겨드랑이 뒤에서 손이 불쑥 튀어나오니 나를 꽉 껴안았다. H인 줄은 알았다. 평소에 친구들에게 스킨십을 많이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든 말든 무시하고 친구들과 계속 이야기를 하려던 그때, 갑자기 H가 팔에 힘을 꽉 주며 있는 힘껏 가슴을 압박했다. 숨이 안 쉬어졌다. 나는 컼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H는 깔깔 웃으며 내려다봤다. 미친 줄 알았다. 하임리히법을 멀쩡한 사람한테 한 거다. 이번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건드리지도 말고 눈에 띄지도 말라고 H에게 단단히 경고했다.
나도, H도 한동안 서로를 피했다. 의도적으로 나는 H를 의식하지 않았지만, H가 쉬는 시간마다 다른 반으로 가는 것은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H는 시무룩해져서 미안하다고 먼저 사과를 했다. 마음이 약해져 H를 용서해주었다. 지금 또 이런 일이 일어나니 그때 용서해 주지 말걸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H에게 한 소리를 하려던 그때, 선생님이 이제 모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반쯤 열렸던 입을 꾹 닫고 버스에 올라탔다. 자리 앉아 잠시 눈을 감고 방금 일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내가 존중받기 위해서는 상대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항상 용서해주고 웃어줘서 그런지 나를 가볍게 보는지 H는 자꾸 내 신경을 건드린다. 말한다고 과연 H가 나아질까? 우연히 어른들이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선택은 두 가지였다. H를 받아들이는 것, 아니면 H와 이제 다시는 말도 섞지 않고 거리를 두며 지내는 것. 머리가 복잡해지고, 감정이 추슬러지지 않았지만, 버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달렸다.
피곤했다. 자일리톨이 없었다면 아마 난 견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자일리톨을 입에 넣었다. 한결 나아졌다. 몸도 마음도. 창밖의 날씨도 내 마음처럼 흐렸다 개였다 하며 오락가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