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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gO 레고 Oct 28. 2022

급식

오늘 할 얘기는 모든 학교에 있을. 학생들에게 제일 중요한 급식 얘기다. 우리 학교는 급식을 먹을 때 12학년 먼저, 그 아래 학년은 정해진 순서에 따른다. 다른 학교도 그렇겠지만 본인이 먹을 음식은 본인이 직접 퍼간다. 가끔 인기 없는 반찬은 선생님이 퍼주시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도망가는 편이라 먹고 싶은 반찬만 받았다.  물론 도망가다가 잡히면 혼나긴 했다. 오래 혼나는 건 아니지만 급식 선생님이 싫어하는 학생 중 하나로 찍힌다. 일단 찍히면 해당 학생이 또 급식을 안 먹거나 반찬을 많이 안 받을 때 선생님은 더한 벌칙을 준다. 예를 들면, 급식의 대안으로 학생들이 이용했던 매점 출입금지가 있다. 나는 한 번도 찍혀 본 적이 없다. 다만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 보면  찍히면 끔찍하다고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7학년 1학기 처음 급식을 먹었을 때에는 맛있다고 느꼈다. 코로나로 인해 일주일에 세 번꼴로 등교를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급식의 질을 볼 때마다 '미쳤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자사고와 맞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보카도 연어덮밥, 닭 한 마리가 다 들어가 있는 닭백숙, 통통한 알이 들어가 있는 알 초밥. 학교를 급식 때문에 간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맛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격주로 등교를 할때 나는 언니보다 먼저 등교를 시작했다. 내가 언니에게 급식이 맛있다고 했을 때 언니는 "넌 ㅇㅇ초등학교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퍼먹고 왔니?" 라며 나의 형편없는 미각을 비난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다음날 급식을 먹고 온 언니는 한순간에 이렇게 바뀔 리가 없다며 놀람과 억울함을 동시에 비쳤다. 하지만 이런 급식도 오래가지 못했다. 2학기 초반부터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자 이유였던 급식이 초라하게 바뀌었다. 


럭셔리했던 아보카도 연어덮밥은 당근이 더 많이 들어간 낙지덮밥으로. 닭 한 마리가 통으로 들어가 있는 닭백숙은 두꺼운 튀김옷이 입혀진 치킨너겟으로. 통통한 알이 들어가 있는 알 초밥은 통통한 꼬마김밥으로 바뀌었다. 반찬 조합도 지나치게 신선했다. 로제 파스타가 나오는 날 미숫가루가 나온다거나, 가자미 데리야끼가 나온 날에 티라미슈가 나왔다. 한 번도 보도 듣지도 못한 조합은 김피탕이(김치, 피자, 파스타) 생각날 정도였다. 김피탕은 맛이라도 있지 학교 급식은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맛이 없었다. 다른 반찬이 맛이 없을 때는 김치라도 먹어야 하는데 김치도 맛이 없었다. 매일 꼬박꼬박 나오는 쇳가루 맛이 나는 김치는 꼴 보기도 싫었다.  


제일 최악은 가지 치즈구이였다. 가지 치즈구이는 가지를 잘라 안에 교자를 넣은 후 모차렐라 치즈를 그 위에 뿌려 녹여먹는 음식이라고 한다. 가지는 나름 고급 식재료이고, 가지는 피부와 장에 좋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가지를 싫어한다. 그럼에도 새로운 음식이라는 사실에 설렜다. 급식시간이 기다려졌다. 급식시간이 되자 나는 바로 화장실에 뛰어가 손을 씻었다. 그 누구보다 먼저 밥을 먹기 위해 계단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순서가 되자 나는 바로 소명 홀로 달려갔다. 


오늘은 맛없는 냄새가 덜한걸 보니 뭔가 특별한 게 있겠지? 하는 설레는 마음이 가득 찼다. 급식 상태를 보려 하니 가지 치즈 구이가 잘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식판이나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뭔가 불안했다. 내 차례가 왔다. 이건 가지 치즈 구이가 아닌 가지 치즈 볶음이었다. 이런 걸 음식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정신 차리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다시 한번 가지 치즈구이를 보니 마치 내가 실험용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젓가락을 들고 가지 치즈구이를 집어 올렸다. 지진 진도 7.1 정도로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떨리는 손을 붙잡고 냄새를 먼저 맡아봤다. 가지 특유의 걸레 냄새와 치즈의 구수한 냄새가 섞여 났다. 가지 치즈구이를 입에 넣어 씹자마자 뱉었다. 하필 뱉을 때 국에 떨어뜨렸다. 나름 인정해주는 김칫국이었는데 그것도 버리게 생겼다. 가지 치즈구이의 맛은 정말 처참했다. 치즈의 물컹함과 가지의 물컹함이 정말 조화롭지 않았다. 치즈를 씹을 때 고무 씹는 소리가 났다. 어떻게 이런 요리를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이런 급식이지만 다 맛없는 건 아니었다. 우리 학교는 매일 샐러드가 나왔는데 그 샐러드가 맛있었다. 샐러드는 생채소와 드레싱을 버무려 먹는 음식이다. 식후에 샐러드를 먹는 것은 좋은 습관이다. 샐러드에는 섬유질이 풍부한데, 다량의 섬유질이 체내 소화기관을 잘 돌아가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 학교는 자몽 소스, 키위 소스, 발사믹, 사우전드 아일랜드 드레싱 등 매일 다른 종류의 드레싱이 나왔다.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재료도 달랐다. 연어, 식빵, 닭, 견과류 등 매일 다른 맛의 샐러드를 맛볼 수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안 곁들인 샐러드에 발사믹 드레싱을 먹는 걸 좋아했다. 물론 처음에는 발사믹 소스를 싫어했었다. 학교에 샐러드가 나오는 것도 별로였다. 하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발사믹 드레싱의 매력이 느껴졌다. 처음 먹어본 사람은 싫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발사믹 드레싱의 부담스럽지 않고 깔끔한 맛이 참 좋다. 샐러드는 내가 학교를 갔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매일, 오늘은 무슨 샐러드가 나올까 하는 설렘이 있었다. 샐러드가 안 나온 날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샐러드가 없으니 밥을 먹어도 먹은 느낌이 안 났다. 


티라미수도 참 맛있었다. 급식 선생님들이 직접 만든 게 아니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티라미수는 이탈리아 디저트로 치즈케이크의 일종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케이크라고는 티라미수밖에 안 나왔다. 티라미수를 한입에 넣으면 코코아 파우더가 목젖을 쳤다. 기침이 나오지만 기침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면 그다음에 치즈크림이 느껴졌다. 치즈크림이 부드럽게 입을 감싸고 마지막에 커피를 머금은 빵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치즈크림이 살짝의 느끼함을 내고 커피가 그 느끼함을 깔끔하게 잡아줘 과하지 않고 조화로웠다. 그런 깔끔함 때문인지 티라미수를 먹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학교에서 티라미수가 나오는 날이면 항상 기뻤다. 아무리 짜증 나고 힘든 일이 있어도, 급식에 아무리 맛없는 음식이 나온다 해도, 티라미수가 나오는 날에는 잠시나마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티라미수는 이탈리아어로 '나를 기분 좋게 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세상에 티라미수 같은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티라미수 같은 존재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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