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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gO 레고 Oct 28. 2022

좋은소문

내가 다니던 학교는 좋은소문이라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좋은 소명 문화만들기를 줄여서 만든 이름이었다. 그 프로젝트는 선후배 친해지기 프로젝트라고 불렸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냥 신입생 많이 오세요, 프로젝트 같았다. 좋은 소문에서 했던 활동들은 신입생 유치 홍보 자료로 많이 활용되었다. 좋은 소문에 대해 설명하시는 선생님의 말 끝마다 '이런 걸 해야 신입생들이 더 많이 와'라는 말은 끊이지 않았다. 좋은 소문은 선택이 아닌 의무였다. 중등 전학생이 참여했고, 조장을 포함한 여덞명 씩 총 13조의 조로 편성되었다. 좋은 소문 활동은 주로 말씀 묵상이었다. 말씀묵상은 성경을 읽고 느낀것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지루했고 재미도 없었다. 괜히 시간만 낭비한다는 느낌이었지만, 그나마 나름 의미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활동은 몇 가지있었다. 










좋은 소문 조 단위로 체육단위를 하는 날이었다. 맑은 하늘 아래에 싱그럽게 웃고있는 학생들이 물통을 들고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며 농구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농구장 옆 벤치에 짐을 내려놓고 좋은 소문 조별로 서서 교장 선생님 훈화말씀을 들었다. 언제나 그랬듯 재미없고 지루한 말이 흘러나왔다. 더운 땡볕 아래에서 훈화말씀을 듣다보니 살짝 어지러웠다. 뜨거운 햇빛때문에 어지러운지, 교장선생님 훈화말씀 때문에 어지러운지 알수가 없었다. 바닥을 보니 길쭉한 송충이 두마리가 지나가고있었다. 조용히 '웁스' 소리를 내며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옆자리에 선배가 송충이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들은 학생들이 그쪽을 쳐다보았고 그 선배는 선생님께 경고를 받았다. 하늘을 보니 착륙하는 커다란 비행기가 지나갔다. 뜨겁게 달궈진 정수리를 한번 만져보곤 조용히 '비가 왔으면 좋겠다' 라고 중얼거렸다. 


조별 대항 줄넘기 시간이었다. 두 명은 줄을 돌려야 하는데, 내가 자원했다. 줄을 넘는게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차라리 넘는것 보다는 돌리는 게 더 낫겠다 생각해서였다. 본 게임에 앞서 연습할 시간이 주어졌다. 같이 줄을 돌릴 선배가 먼저 한쪽 끝을 잡고 날 기다렸다. 나는 초등학교 때 줄을 돌려보았기 때문에 줄을 잡는 손에 자신감이 묻어있었다. 이제 우리 조 아이들이 잘 뛰어 주기만 하면 되었다. 선배와 호흡을 맞춰 힘차게 돌리기 시작했다. 두 번 정도 돌고나서 줄은 허망하게 멈췄다. 우리 조 선생님은 괜찮다며 다시 한 번 해 보자고 우리를 응원했다. 몇 번의 연습 끝에 드디어 본게임이 다가왔다. 


탁, 탁, 탁 소리를 내며 줄넘기가 돌아갔다. 이에 맞춰 선생님들은 하나, 둘 숫자를 셌다. 셋. 넷. 다섯. 숫자가 커지면 커질수록 손에 쥐가 나기 시작했다. 아. 안돼. 내가 민폐가 될순 없다. 정신을 놓고 줄을 돌렸다. 어느정도 지나자 육십 일, 육십 이, 하는 소리가 났다. 아 큰일났다. 우리팀이 너무 잘한다. 점점 코가 높아졌다. '이러다가 안끝나는거 아니야?' 하는 순간 어떤 후배가 줄을 밟았다. 72개였다. 조장 선배가 우리를 도닥이며 '괜찮아. 괜찮아. 나쁘지 않아.' 라고 해주었다. 그러자 모두가 목소리로 '아쉽다. 다음에 잘하자!'고 서로를 응원했다. 나는 그런 우리가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소리내어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아 하늘을 보니 참 파랗다며 멍을 때리고 있을때 다음 종목이 시작되었다. 공 차며 달리기였다. 팀에서 대표로 세명이 뛰게 하였다. 조장 선배가 우리에게 누가 나갈거냐고 물어보았다. 선배가 먼저 후배들을 쳐다보았다. 후배들이 눈치싸움을 하더니 안경을 쓴 단발머리 후배가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선배가 싱긋 웃더니 우리학년을 쳐다보았다. 우리학년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핑계를 대며 물러났다. 모두가 안한다고 하자 다시 눈치를 보더니, 눈을 살포시 감고 주먹을 내밀었다. 가위바위보를 하자는 의미였다. 


"깔끔하게 가위바위보다."


"가위"


"바위"


"보"


눈을 살짝 떠보니 결과는 처참했다. 친구들이 내 손을 보고비웃었다. 나는 믿을수 없다는듯이 내 손을 쳐다보았다. 친구가 내 어깨를 잡더니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그리고선 미소를 지어보냈다. 뛰는건 자신있았다. 50미터 달리기로 2등급이 나왔을 정도로 잘 뛰었다. 공 차는것도 자신이 있었다. 구기종목이라면 거의 잘했기때문에 괜찮았다. 하지만 너무 귀찮았다. (밥 먹기 귀찮으면 밥도 안먹는다.) 뛰기도 귀찮고 공 차기도 귀찮은데 뛰면서 공을 차라니 미친짓이었다. 머리를 쥐어뜯고있을때 체육선생님이 이번 종목에 참여하는 사람은 빨리 나오라고 방송을 했다. 나는 조장선배와 후배의 손에 이끌려 나갔다. 우리는 한줄로 줄을 섰다. 


 첫번째는 선배. 두번째는 후배. 마지막은 나였다. 짝다리를 짚고 옆을 보니 다른 학생들이 몸을 풀고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고 하늘을 봤다.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살짝 껴있었다. 다시 앞을 봤다. 곧이어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맨 앞에있던 선배가 공을 차며 빠르게 앞으로 나갔다. 주위에 사람들이 큰 소리로 응원을 하고있었다. 


"아 정신없어."


귀를 살짝 만졌다. 다음순서인 후배가 뛰고있었다. 나는 후배의 뛰는 폼을 보고 혀를 끌끌 찼다. 후배는 공도 잘 못찼지만 뛰기도 잘 못했다. 후배가 반쯤 돌자 다른팀은 다음선수가 뛰고있었다. '아 이거 지겠는데?' 싶은 순간, 다른 팀들은 끝나있었다. 승부가 바뀔일도 없는데 뛰는게 의미가 있나 싶었다. 후배가 힘들게 들어왔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으며 공을 찼다. 공이 원하는 쪽으로 가주리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다른사람에 비해 잘 가긴 했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고정되어있었고 모두가 응원했다. 너무 쪽팔렸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코너를 돌았다. 코너를 도니 저 멀리 도착선이 있었다. 나는 그대로 공을 뻥 차고 뛰어들어왔다. 들어오니 체육쌤과 주변 학생들이 '너 대박이다'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머리를 한번 넘긴 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우리팀이 있는곳으로 나왔다. 


우리팀 자리 바닥에 앉으니 또라이와 친구들이 와서 '야 너 좀 쩔더라?' 하더니 꺄르륵 웃으며 지나쳤다. 이게 뭐지 하는 생각에 또리이 일행을 멍하니 쳐다보니 우리팀 사람들이 '괜찮다. 잘했어. 멋있었어'라며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팀이 졌는대도 다들 내게 칭찬하며 함께 웃는 모습에 나 또한 풋 하며 웃었다.그렇게 체육대회는 끝났다.




 






보슬비가 내리는 이른 아침 나는 학교를 갔다. 아빠가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 내려주어 부지런하게 걸었다. 평소답지 않게 사복을 입고. 초콜렛이 가득 든 가벼운 가방을 들었다. 반달로 눈을 휘고 걸으니 눈이 슬슬 아파왔다. 언니가 슬쩍 보더니 왜 그리 웃냐고 물어봤다. 오늘은 등산가는 날이었다. 등산을 좋아하느냐 물어볼수 있겠지만 난 등산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산 자체를 싫어한다. 산에는 벌레가 많고, 축축한 느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산을 오르는게 싫다. 그럼에도 내가 웃는 이유는 비가 온다면 등산이 취소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나는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뛰었다. 뛰다보니 학교가 보이기 시작했다. 학교 오르막길에 도착하니 선생님 두분이 경광봉을 들고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140도로 인사하고 오르막길을 올랐다. 뒤따라오던 언니가 목 뒷덜미를 잡더니 머리끈을 건네주었다. 나는 고맙다고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나서 반으로 뛰어올라왔다. 반에 오니 친구들이 꺄르륵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나는 워크북을 챙겨 소명홀로 내려갔다. 


소명홀 의자에 앉아 후배와 얘기를 나눴다. 후배는 등산스틱을 들고왔다고 자랑했다. 나는 멋있다고 엄지를 올려보였다. 그렇게 얘기하다보니 오랜만에 학교에 나온 S가 보였다. 등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온건지 세달만에 모습을 보인 S를 보니 반가워 나는 후배에게 인사를 하고 S에게 뛰어갔다. 나는 S와 손뼉을 치며 오랜만이라고 인사했다. S는 양궁시간에 친해졌다. 키가 비슷해 내 옆자리였기에 많은 대화를 나눴던 친구였다. S는 아프다는 핑계로 나오지 않다가 등산하는 날이 되어서야 왔다. S와 지난시간에 대해 얘기하다보니 체육선생님이 마이크를 들었다. 보슬비가 그쳐 등산을 한다고 방긋 웃으며 얘기했다. 내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선생님은 코스와 등산 순서, 등을 공지해주었다. 광교산 체육공원 코스였다. 나는 눈이 더 빠르게 흔들렸다. S가 레고야 라고 이름을 부르며 툭 쳤다. 나는 매가리없이 툭 쓰러졌다. 


정신차려보니 나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니 선생님들이 물 두개와 모기스프레이를 뿌려주었다. 나는 물을 가방에 넣고 모기스프레이를 두번, 세번 뿌렸다. 모기에게 피빨리지 않겠다는 내 의지였다. 나는 이쯤 되었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선배들한테 모기스프레이를 뿌려주었다. 손에 아무것도 안들고 스프레이나 뿌려주고있으니 선생님이 물 두개를 더 주었다. 나는 그 물까지 받아 가방에 넣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 타니 후배가 조잘조잘 말을 했다. 귀가 살짝 먹먹했다. 후배가 더 시끄러워질때즈음 우리는 체육공원에 도착했다. 나는 후배의 입을 막고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리니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우리는 체육공원 주차장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나는 체육공원 주차장 주차블럭에 위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한동안 멍때리고 있으니 후배가 날 잡아 끌었다. 


정신을 차리고 조금 걷다보니 무슨 산이 나왔다. '우리가 이 산을 오른다고?' 하는 생각으로 오르다보니 밖으로 나오는 길이 있었다. 그 산을 나오니 예쁜 어느 학교와 엄청나게 큰 오르막길이 나왔다. 다들 눈치껏 알수 있었다. '아, 저 위까지 올라가야 진짜 시작이구나.' 다른 학생들의 얼굴을 보니 열정이 가득 차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곤 오르막길을 올랐다. 반쯤 올랐나 싶을때 뒤를 돌아보았다. 


"어? 뭐지?"


반의 반도 오르지 못했다. 다시 앞을 보고 이제는 거의 다 왔나 싶을때 뒤를 돌아보니 그제서야 반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고 올랐다. 중간중간 자꾸 멈추니 선배가 날 밀어주었다. 나는 헐떡이며 산 입구에 도착했다. 나름 운동(그때 당시에 검도를 다니고 있었다.)을 하는 애라고 등산이라면 조금 자신 있었던 내가, 체육선생님의 기대를 받은 내가, 오르막길 하나 올랐다고 숨이 넘어가 죽으려고 했다. 선생님이 인원체크를 하더니 곧바로 산을 올라갔다. 나는 잠시도 쉬지 못한채로 산을 올랐다. 초반에는 계단이었다. 걷는 속도가 느리니 선배가 뒤에서 살짝 밀어주었다. 5분정도 걸었을까. 나는 좀비같은 상태가 되었다. 선생님이 우리의 상태를 보시더니 잠시 쉬자고 하였다. 나는 남들 몰래 마스크를 코 까지 내리고 숨을 쉬었다. 다행히 운동을 해서 그런지 숨쉬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금방 괜찮아졌다. 다시 출발한다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다시 걸었다. 10분쯤 더 걸으니 길이 넓어졌다. 나는 그 길 한쪽에 기대 다른 팀원들이 가기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걸을떄 뒤에서 누군가 내 팔을 잡았다.


D와 S였다. 둘은 씩 웃으며 내게 팔짱을 꼈다. 우리는 서로 잡아주고 의지하며 차근차근 올랐다. 갑자기 S가 나 먼저 가볼게! 하며 제빠르게 올라갔다. 나는 D를 잡고 산을 올랐다. D의 컨디션이 점점 안좋아지는게 느껴졌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D의 모습이 짠했다. 우리는 얘기를 하며 부지런히 걸었다. 그러다보니 첫번째 쉼터가 나왔다 거기에 모두가 쉬고있었다. 두레별 인원체크를 하고 우린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한번 뒤로 나왔다. 천천히 걷다보니 모두가 내 앞에 있었다. D 빼고 말이다. D가 옆으로 오더니 내게 팔짱을 꼈다. D와 나는 단 둘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꽤 오랜시간을 걸었다. 산이 높아질때까지.  '우리 둘은 길을 잃든 말든 뭐 어때.' 하며 걸었다. 단 둘이 꺄르륵 웃으며 걷다보니 저 위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방금 우리 이름 들리지 않았어?"


"안들린것 같은데?"


"아 그런가?"


D는 못들었다던 그 소리가 조금 신경쓰였다. 그래도 우리는 부지런히 걸었다. 5분쯤 걸으니 그 소리가 점점 커졌다. 


"레고야! D야!"


저 멀리서 맘선생님이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다. 우리는 장난기가 발동해 뒤를 돌아 하산하는척을 했다. 맘쌤이 그런 모습을 보았는지 달려와 우릴 잡았다. 우린 산에 소리가 울릴정도로 웃었다. 그러곤 다시 뒤돌아 산을 올랐다. 난 아침에 챙긴 물통을 꺼내 물을 마셨다. 맘쌤이 내 가방에 든 물병들을 보시더니 놀라셨다. 맘쌤은 혼자서 들기 힘들지 않았냐고 재차 물어보곤 내 가방을 들어주었다. 가방이 없으니 덜 힘들었다. 나는 친구와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너무 빨라서인지 금방 지쳐 나는 천천히 가자고 맘쌤께 말했다. 그러자 맘쌤이 내 등을 밀어주면서 우리를 응원해줬다. 


"열정! 열정! 열정!"


우리는 맘쌤의 응원소리를 듣고 꺄르륵 웃었다. 그러자 맘쌤이 목덜미를 살짝 긁으며 부끄러워했다. 맘쌤의 용기가 담긴 응원덕분이었는지 다른 선생님들이 계신 쉼터에 금방 도착할수 있었다. 먼저 있던 선생님이 더 올라가겠냐고 물어봤다. 난 더 올라가지 않겠다고 거절하고 다른 학생 옆에 앉았다. 그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며 앉아있다보니 선생님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위에 조금만 더 올라가면 고양이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고양이 얘기가 나오자마자 자리를 정리하고 올라갈 준비를 마쳤다. 선생님들이 우릴 이끌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길은 전의 길보다 험난했다. 바위를 건너서 가는 길이 많았기때문이었다. 선생님들은 우리 모두의 손을 잡아주고 등을 밀어주었다. 나는 선생님들이 응원해준다고 생각했다. 더 힘을 내서 걸으니 금방 고양이가 있는곳에 도착했다. 


고양이가 세마리가 있었다. 광교산에서 사는 고양이라고 했다. 토실토실한걸 보니 등산객들이 밥을 주는듯 싶었다. 올라갈까 말까 고민을 하던차에 친구들이 내려왔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었다. 또라이가 날 보더니 방향을 틀어 내 반대쪽으로 걸었다. 나는 얼굴을 살짝 구기고 꼭대기로 올라가는 길쪽으로 걸었다. 선생님들이 꼭대기까지 가자고 권했기 때문이었다. 진짜 싫었지만 그래도 다른 팀에 섞여 내려가는건 아닌것 같아 올라갔다. 선생님 중에 한분이 다시 내 등을 밀어주었다. 더이상 민폐끼치고싶지 않아 열심히 걸었다. 15분에서 20분정도 걸으니 금방 꼭대기에 도착했다. 꼭대기에 도착하니 풍경이 너무 예뻤다. 작게 보이는 건물들. 그 사이에 있는 작은 우리 학교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숨을 고르니 배가 고팠다. 나는 가방을 열어 초콜렛을 입에 넣었다. 미소가 자동으로 지어졌다. 꼭대기에서 사진도 찍고 휴식을 취한뒤에서야 우리는 하산했다. 하산할땐 P와 까칠이와 같이 하산했다. D와 이야기하며 걸어서인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홀가분했다. 근데 뭔가 이상했다. 길이 이 길이 아닌것 같았다. 


"ㅇ야 우리 올라올때도 이 길이었어?"


"몰라? 쟤는 길을 아는건지.."


맨 앞을 보니 H였다. 나는 살짝 인상을 쓰고 앞을 뒤를 돌아봤다. 선생님들은 뒤에 후배들을 보고있었다. 까칠이가 H를 불러 "이 길이 아닌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H가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버럭 화를 냈다. 까칠이가 푹 한숨을 쉰 뒤 알겠다고 달랬다. 나는 익숙하게 달래는 까칠이를 보고 픽 웃었다. 그러곤 까칠이에게 '익숙한가봐? 잘달래네' 라고 툭 던졌다. 까칠이는 내 말을 듣고 예쁘게 웃어보였다. 까칠이가 해사하게 웃자 H가 더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남이 무슨말을 하든 신경을 잘 안쓰는 내가 듣기에도 인상이 찌푸려지는 말이었다. H의 목소리가 커지니 뒤에서 맘쌤이 달려왔다. 맘쌤이 H의 투정을 다 들어주기 시작했다. 까칠이는 피식 웃으며 계속해서 걸었다. 다시 산을 올라가 맞는 방항으로 내려왔다. D가 갑자기 내 팔을 잡더니 젤리를 몰래 쥐어줬다. 나는 젤리를 한입에 넣고 안 먹은척 다시 걸었다. 아침에 비가 와서인지 내리막길이 힘들었다. 줄을 잡고 조심히 내려가고있는 그때 D가 내 앞에서 넘어졌다. 


아침부터 몸 상태가 좋지 못했던 D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D의 손을 잡고 일으켜줬다. 그러곤 꼭 안아 도닥여주었다. 뒤늦게 여선생님들이 뛰어왔다. 선생님들은 D바지를 털어주고 부축해 옆에있던 쉼터로 갔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D를 봤다 선생님이 먼저 가있으라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나는 눈을 찔끔 감고 계속해서 걸었다. 계속 내리막길이니 내 앞 뒤로 많이 미끄러졌다. 그럴때마다 우린 잡고 잡아주며 서로를 의지했다. 그러다보니 산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 봤던 풍경이 보였다, 나는 활짝 웃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중얼중얼 소리가 들렸다. 앞을 보니 H가 있었다. 나는 H의 말을 라디오 삼아 내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쉬지않고 계속 말하는 H의 목소리가 질리고 말았다. 맘쌤이 H에게 눈치를 주었다.


"우와. H는 말하는걸 좋아하는구나! 쉬지않고 말하네."


그러자 H가 신이나서 더 말하기 시작했다. 귀에서 따듯한 액체가 나오는 느낌이었다. 쫑알쫑알 거리는 H의 목소리를 더이상 듣고싶지 않았다. H에게 한 소리를 하려던 그때 맘쌤이 H에게 10분만 조용히 하자고 권했다. 그러자 H가 3분정도 조용히 해주었다. 하지만 그 뒤에는 10분이 지났다며 다시 쫑알쫑알 얘기를 시작했다. 나는 빠른걸음으로 H와 멀어졌다. 더 이상 듣는다면 H에게 화를 낼것 같았다. 빠른걸음으로 걸으니 어느새 산 입구이자 출구에 도착해있었다. 나는 활짝 웃으며 뒤에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그러자 하나, 둘씩 입구로 나왔다. 그늘에 주저앉아 하늘을 봤다. 맑고 뜨거운 하늘이었다. 나는 아차싶어 주위를 돌아봤다. D가 손을 흔들며 내려왔다. 나는 그제서야 마음을 놓을수 있었다. 오늘은 서로에 대해 몰랐던 우리가 서로를 잡고 잡아 이끌어주는. 서로를 의지했던 소중한 하루였다. 색다르지만 나쁘지 않았던 추억에 나는 해사하게 웃었다.


아침에 노래는 빼먹지 않고 듣던 내가 그날 이후로 노래를 듣지 않게 되었다. H로 인한 트라우마인지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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