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 달을 맞이하기 위해 큰 달집도 따로 지어놨지. 원래 정월대보름이 되면 동네 어르신들이 당산에 제를 올리고 집집을 돌며 지신밟기를 했어. 요즘에는 지신밟기를 하지 않지만 대신 농악패가 관공서를 돌며 한해 안녕과 복을 기원하기도 하지. 지신밟기패가 한바탕 풍물놀이를 하면 높으신 분들이 나와 격려의 의미로 봉투하나씩 꺼내 놓기도 해. 요즘에는 농촌에도 풍물패를 찾아보기 힘들어. 곧 이런 모습들을 볼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것만 알아둬. 정월은 한 해로 보자면 첫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이기도 하지만 계절적으로는 전형적인 비수기야. 농사짓는 사람들로서는 이때를 빼고는 한바탕 신나게 놀아볼 날도 없어. 그래서 지신을 밟는다는 핑계로 흔히 얘기하는 파티를 한번 벌인다고 보면 돼. 그 옛날에 음악이라면 꽹과리, 징, 북 이런 게 다가 아니겠어. 시끌시끌 발도 구르고 풋쳐 핸섭도 하는 거야. 어때 이해되지?
그런데 이렇게 한바탕 집집마다 돌고 나서도 어쩐지 좀 아쉬운 면이 있잖아, 흥이 한번 돋궈지면 아무도 못 말리잖아. 그래서 이 패들이 강가나 개울가로 가서 그날의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거야.
그게 뭐냐면 바로 달집 태우기야. 이런 날 조명이 빠져서야 되겠어? 불꽃이 필요하잖아. 옛날엔 전기가 없었으니까 어떻게 하겠어? 불을 붙이는 거지. 역시 파티는 달밤이 제맛이거든.
뭘로 불을 붙였을까?
집집마다 지신밟기를 하며 돌 때 짚이나 솔잎을 모아 와. 각자 태우고 싶을 걸 가지고 나오는 거지. 때론 아예 작정하고 나무 한 짐을 해가지고 모여들기도 했어. 아무래도 불은 크게 피울수록 더 멋지잖아. 처음엔 그냥 막 쌓아놓고 불을 붙였대. 그런데 그건 좀 심심하니까 누가 모양을 한번 만들어 본 거야. 집모양도 만들고, 또 달모양도 만들고..... 원래 좋은 건 따라 하는 거잖아. 자꾸자꾸 퍼져나갔지. 그래도자세히 보면 지방들마다 달집들이 모양이 조금씩 달라. 각자의 개성을 살린거지.
최근에는 이런 세시풍습들이 많이 없어지고 영남지방에만 일부 남아있는데, 이번에 우리도 좀 제대로 놀아보자고겁나 큰 달집을 한번 만들어 봤어.
어때? 꽤 크지?
가운데 중심목은 10m 정도 되는 나무기둥을 세우고 그 옆은 대나무를 둘렀어. 왜냐면 파티에 폭죽이 빠질 수 없잖아? 대나무가 타면서 팡팡 터지는 거야. 그러고 보면 우리 조상님들이 꽤 핫하지 않아? 대나무 터지는 소리는 악귀들을 쫒는데, 신도 나고 귀신도 쫓고, 일석이조인 거야.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 같지만 저게 그냥삐죽선 멋대가리 없는 서양의 그것이 아니야. 저기 사다리에 올라간 아저씨 보이지? 짚새끼줄로 대나무들을 고정하는 거야. 조금 있으면 저기에 소원지들이 주렁주렁 달릴 거야.
소원지가 뭐냐고?
너를 올해 합격시키고, 입사시키고, 결혼시키고, 아들 딸 낳게 하고, 집도 사게 하고, 병도 낫게 하고, 복권에 당첨되게 하고, 주식 대박 나게 하고, 해외여행가게 하고, 또 또...... 하여간 그런 것들이야. 어때 신나지?
그 안을 살펴볼까?
왼쪽에 보이는 게 달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야. 어른들은 고개만 조금 숙이면 들어갈 정도고, 아이들은 그냥 고개 빳빳이 들고 들어서도 될 정도지. 달집 안에는 사실 작은 달집 하나가 또 있어. 미니미라고 보면 돼. 오른쪽에 보이는 저 팔레트 위에는 도자기 500점 정도를 올려놓을 거야. 달집이 얼마나 오래 타는지 알아? 놀라지 말어. 5시간 정도 탈 거야. 불멍하고 싶은 사람들은 여기로 오면 돼. 여기가 어디냐면 양양 설악해변 후진항 일대야.
· 시 간 : '23. 2. 4(토) 18:00 ~
· 장 소 : 양양 설악해변 후진항 일대
늦은 밤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은 저기서 구워진 도자기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어쨌든 도전해 보라구.
달집에 들어서면 바람소리가 들려. 아래 사진 보여? 마치 대나무 숲에 들어온 기분이지. 동쪽으로 첫 달이 떠오르면 제일 먼저 달을 본 사람이 이 달집에 불을 붙일 거야.
저기 아래 방패연 보여?궁금하지?
보통 제를 지낼 때 뒤에 병풍을 세우지. 하지만 달집을 태우기 전에 지내는 동제(마을제례)에는 병풍을 쓰지 않아. 대신 아이와 어른들이 날리던 연들을 모아 병풍으로 세우는 거야. 정월대보름 행사는 대부분 액막이 행사이기 때문에 힘들고 아팠던 기억들은 모두 날려 보내야 하는 거야. 연을 날리듯 멀리멀리. 너에게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들이 있었다면 이 참에 모두 날려버려. 만약 댓글로 부탁한다면 내가 대신 날려줄 수도 있어. 너희들을 위해 기도해 줄게
하지만 이런 나도 사실 걱정거리가 하나 있어. 불을 다루는 행사니까 아무래도 안전사고가 제일 신경 쓰여. 별 탈 없이 잘 진행됐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