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 한 번은 친구와 요란한 논쟁을 치른 적 있다. 녀석은 평소답지 않게 갑자기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란 논지를 들고 나왔는데, 오히려 난 그 반대가 아니냐며 긴 논쟁이 시작됐다. 영국과 프랑스 간 백년전쟁만큼이나 어떻게 시작됐는지도 모르게 양보 없는 설전이 오고 갔다. 피가 튀겼다. 20년이 다 돼 가는 일인데도 이렇게 기억나는 걸 보면 꽤 진지한 얘기였음이 틀림없다. 난 팔팔한 청춘 새끼가 환경이나 탓하고 있다고 그 유약과 허무를 맹렬히 힐난했다. 그때 나를 바라보던 녀석의 초점 없는 눈빛이 기억난다. '그런 얘기가 아니야, 한심한 놈아' 녀석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나이를 먹고 이런저런 상황들을 겪다 보니 그 녀석이 말하려던 요지가 뭔지 알 것 같다. 인터넷만 쳐보면 나오는 그런저런 학군이나 부자 동네, 맹모삼천지교 따위의 환경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 녀석이 말하던 것은 차라리 정서적 환경에 가까웠다. '이 새끼! 좀 쉽게 얘기할 것이지.... '
이번 할아버지의 행적을 뒤지며 그런 생각을 했다. 하나의 단서로 그다음 단서들이 찾아지고 이렇게 연이어 따라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정말 하나의 악보 같다는 생각, 그야말로 리드미컬했다. 문서를 뒤지고, 기관을 방문하고, 한자를 해석하는 과정들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심지어 콧노래가 나왔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일과 관련해 나누는 아버지와의 대화마저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저녁이 되면 수시로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진행상황을 보고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정말 많은 얘기들을 쏟아냈다. 평소엔 듣지 못했던 아버지의 어린 시절, 청년 시절이 무작위로 쏟아져 나왔다. 너무 많은 얘기들을 꺼내놓으시는 통에 이건 녹취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사진 한장 남지 못한 할아버지와 그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아버지의 생의 기록들이 덧없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나는 쏟아지는 언어들을 붙잡아 매고 싶었으나 한편으로 아버지도 나도 신이 나서 대화가 끊어지질 않았다. 그런 밤이면 맑음·순수·자긍·고양·순결·곧음 같은 것들이 아버지와 나를 감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정서적 순화라는 건가. 그리고 나는 그때 녀석이 얘기했던 저 오래전 '환경'을 다시 한번 떠 올렸다. 이것이었나. 말하려던게
아버지와의 단란한 통화가 끝나면 난 어김없이 휴대폰 배터리에게도 충만한 기운을 보충해 줬다. '너도 고생 많았어.' 이건 방금 전 말미에 아버지가 내게 건넨 인사이기도 한데. 배터리가 반짝반짝 야식을 빨아먹는 동안 나는 직계존속을 들뜨게 한 방금 전 나의 공적에 대해 대단히 흐뭇해했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나를 더욱 미화시키고 싶었다. 아들로서 손자로서,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아버지에 대해 뭔가 중요한 역할과 사명을 다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밀려왔다. 내친김에 나는 한껏 고양된 도취감속에 작은 집과 큰 집, 그러니까 작은 아버지와 큰형들, 누나들, 조카들까지 모두 초대하는 상상을 해봤다. 한데 모아놓고 '우리 가문이 독립 유공자의 집안이란 말씀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당당하게 살어. 돈 좀 없으면 어때. 자존만큼 중요한 게 없지. 앞으로 우리 집 대문들엔 독립유공자 명패가 달릴 거야. 그게 뭐 대수냐고. 아니 무슨 말씀을 그리 섭하게 하셔요. 없는 것보다야 낫지. 말이야 바른말이지 우리 집안에 뭐 내밀 명함이란 게 있었어요. 그 흔한..., 아니 대체 남들 다 가지고 있는 족보는 어따 팔아먹은 거예요. 누가 말씀 좀 해보세요. 나는 잠시 쉬었다 공치사를 이어갈 것이다. '바쁜 와중에도 제가 있는 시간 없는 시간 얼마나 쪼갰게요. 겁나 뛰어다녔어요. 그거 알아주셔야 돼요. 이게 뭐 하루아침에 그냥 뚝딱 된 일인 줄 아세요. 저나 되니까 그나마 이렇게라도 된 거예요. 저 말고 누가 이런 걸 신경 쓰겠어요. 저 좋자고 한일 아니에요. 이게 다 우리 집안 잘 돼 보자고 솔선수범한 거예요. 그러니까 앞으로 형도 술 좀 그만 먹고, 누나도 제발 궁상 그만 떨고, 명절이면 다 같이 얼굴도 좀 보고.... 네, 알겠죠!' 하고 일갈하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장손인 큰 형은 오늘 같은 날 아니면 또 언제 한잔 먹냐며 얼커해지겠지. 나는 모른 척 눈감아 줄 거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무슨 설레발을 우주끝까지....' 하여간 밑도 끝도 없는 이놈의 망상이란. 사실 이런 공치사는 실없는 감상에 불과하다. 현실에선 얼마나 피곤한 짓인가. 당장 온 집안식구 모아 놓자고 전화 돌릴 것만 생각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디까지나 이건 아버지와 나와의 상호작용일 뿐이다. '나만 진심' 인 세상에서 '아버지와 나만 진심' 으로 조금 확장되었을 뿐이다. '당신들도 진심이어야 해' 는 일단 나중으로 미뤄두자. 중간 과정이 많아지면 배가 산으로 간다. 아직은 둘만의 진심이 부담 없어 좋다. 나는 늘 엄격하게 분장된 업무 환경에만 익숙하다 난생처음으로 완전한 동화와 이해로 묶인 셰어 하우스에 월세 든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도 평생 농사나 지으시다 화이트 칼라식 보고와 결재가 그리 싫진 않은 모양이다. 우리 둘은 가문의 사직을 세우는 일에 전적으로 몰두했다. 그것이 친구 말대로 환경이든, 긍지든, 영화 킹스맨에 나오는 일종의 'Manners' 든 상관없었다. 무언가를 바로 세우는 듯한, 그리고 처음부터 새로 칠하는 듯한 이 기분에 아버지와 나는 완전히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