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무릎을 세우고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올려, 그리고 마침내 달리게 하기까지에는 분명 적잖은 자기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 에너지는 과연 쏟을 만한 에너지인가?
이것은 최근 나의 관심사 중의 하나이다
나의 경우엔 그런 에너지를 발휘할 필요성을 살면서 별로 느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일상에, 좀 더 정확하게는 다른 이의 스케줄에 끼어드는 것을 터부시 해왔다. 물론 설명이 필요치 않은 개인적인 라이프스타일이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나는 살면서 익혀야 할 몇 가지 감각 중 이 일종의 정무적 감각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이것은 아주 재미있는 지점인데 이는 내가 지녀왔던 가치관에 - 굳이 지켜야겠다고 생각한 어떤 신념 같은 것은 아니지만 - 균열을 일으키는 어떤 미묘한 변화가 최근에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가만히 촉각을 세워보면 이것은 내면의 변화가 아니라 환경적 변화임을 곧 알아차릴 수 있다. 나는 팀장으로 승진한 지 이제 채 1년이 조금 못되었는데 바로 이 역할의 변화가 그간의 가치관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팀장이 되었다고 해봐야 함께 일하고 있는 직원은 한 명뿐이다. 원래는 두 명이었는데 상반기 인사로 한 명이 줄었다. 하지만 팀원의 숫자와 본질은 상관이 없다. 이전 실무자로 일할 때와 팀장으로 일할 때의 업무방식은 확실히 다르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나는 지시라는 것을 해야만 한다.
지시는 엄밀히 말하면 '일의 도모'이다.
일의 도모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 있는가? 도모란 일을 일으키는 것이다. 직감하시겠지만 이 일의 도모는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다. 필연적으로 투입되는 노력과 에너지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 이르면 이제 여러분은 직감적으로 이 '도모'에 대해 기질적으로, 또 성격적으로 생리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동의할 것이다. 보통 이 '도모'에 투입되는 노력이나 에너지는 한 사람의 그것만이 아닌 경우가 많다. 모아진 총량으로써의 노력과 에너지인 경우 그것을 의도하는 주관자가 필요하다. 그간 나는 이 "도모"를 향해 물을 흘려보내는 데에만 익숙했지 이 지류들을 모아 총량으로서의 웅덩이를 만들어야겠다는 의도는 지녀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 와서 그러한 의도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을 직위로서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나는 실존적으로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라고 생각하여 왔다. 더욱이 이 운명 앞에 사람은 누구나 순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왔다. 하지만 간과한 게 있었으니, 세상엔 다른 기질과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순응하는 대신 끊임없이 무언가를 도모한다.
그들에게는 '도모'에 쏟는 노력과 에너지가 가치 있다.
흔히 이야기하는 리더형 인간과 참모형 인간은 여기서 구분되는 것이 아닐까?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여러 부류의 지류를 모아내는 일은 얼마나 많은 인내와 노력이 숨어 있는가? 그것은 강압적이든 온건적이든 결국 사람을 어르고 달래는 과정이다. 어르고 달래는 일에는 적잖은 자기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 귀찮음과 수고로움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만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때로 리더십은 이기적이어야 한다. 리더십이 배려라는 명분 하에 부하직원들의 눈치를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면 어떠한 일도 진행할 수 없다. 나는 이번 이벤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직원들의 사기진작이라는 목적 하에 그 어떠한 양심적 의문, 가령 바쁜 직원들의 업무에 지장을 주지는 않나? 혹은 괜한 오지랖으로 직원들에게 피곤함만 더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추호의 의문도 가지지 않은 부서장의 단순 명쾌함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러한 의문을 가지고 좌고우면 했다면 이 행사는 진행되던 와중에 무산됐을 가능성이 크다. 나였다면 진즉에 때려치자는 소리가 열 번은 더 나왔을 것이다. 너무 복잡하고 예민한 양심은 정말 리더십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