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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오이 Jun 21. 2022

귀차니즘을 이기는 리더십

크리스마스이브를 앞두고, 이브에는 젊은 직원들이 약속들이 많을 테니까 이브 전날 부서 행사를 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미리 계획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팀장들끼리 하는 회식 자리에서 과장님의 제안하에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 팀장들끼리 10만 원씩 각출하여 각종 선물들을 사기로 의기투합했다. 몇몇 팀장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송금하는 와중에 마이너스 계좌를 보여주며 서로 한바탕 웃었다. 다들 한잔씩 걸친 터라 기분들이 좋았고, 연말연시 코로나로 전체 부서 회식도 못하는 처지에 단합을 위한 이런 이벤트도 나쁘지 않다고들 생각했다. 하여간 이런 제안을 거부감 없이 유쾌하게 던지는 과장님(여자분)의 리더십도 알아주어야 한다




당일 주무부서인 우리 팀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일찍 점심을 먹고 부지런히 이벤트 준비를 시작했다.

막내가 사다리를 그렸다. 우리 직원은 총 16명인데 본 게임에 앞서 순서를 정하는 사다리이다.

개구리 알 먹기 게임이라고 아시는지? 16개의 공을 4명이 한 조가 되어 열심히 개구리를 누르면 개구리가 공을 차지해 오는 게임이다. 공에는 1~16까지의 번호를 매겨넣었고, 그 번호마다 각각 선물 한 개씩, 총 16개의 선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게임에서 많은 공을 차지해오더라도 오직 한 개의 번호(선물)만 선택할 수 있다. 

그렇게 한 개씩 공이 줄어가며 마지막 4조는 총 4개의 공으로 게임을 하고 각각 하나씩의 선물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분위기는 삽시간에 무르익

다 큰 어른들이 그깟 게임 하나에 뭘 그리 열을 올리는지, 각각 선물들이 뽑아질 때마다 아쉬움과 탄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별도로 포장되지 않은 카드 봉투 하나를 골랐는데, 상품권이나 주유권이겠거니 했는데 현금 5만 원이 들어있었다

웃! 역시 뭐니 뭐니 해도 현금이 최고지~~

크고 작은 선물들이 모두 나눠지자 다들 흐뭇해한다.

특별히 일 년 동안 부서 직원들을 위해 제일 많이 봉사한 직원을 투표로 뽑는 행사도 가졌다.  별것 아닌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직원들이 진지하게 참여해주어서 과장님이 시상할 땐 사뭇 감동적인 분위기도 연출되었다.

만약 이것이 공식적인 축제나 행사였다면 그야말로 기획에서 실행까지 굉장히 성공적인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웃자고 시작했는데 여러 아이디어가 비판 없이 수용되며 속도감 있게 추진된 크리스마스 이벤트였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몇몇은 다소 고달프고 귀찮기도 했겠지만, 결과로 보자면 그들 또한 즐겁고 훈훈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이것이 과장이 지닌 특별한 리더적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다양한 귀차니즘을 돌파하는 일은 얼마나 어렵고 고된 일인가?

그들의 무릎을 세우고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올려, 그리고 마침내 달리게 하기까지에는 분명 적잖은 자기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 에너지는 과연 쏟을 만한 에너지인가? 


이것은 최근 나의 관심사 중의 하나이다

나의 경우엔 그런 에너지를 발휘할 필요성을 살면서 별로 느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일상에, 좀 더 정확하게는 다른 이의 스케줄에 끼어드는 것을 터부시 해왔다. 물론 설명이 필요치 않은 개인적인 라이프스타일이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나는 살면서 익혀야 할 몇 가지 감각 중 이 일종의 정무적 감각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이것은 아주 재미있는 지점인데 이는 내가 지녀왔던 가치관에 - 굳이 지켜야겠다고 생각한 어떤 신념 같은 것은 아니지만 - 균열을 일으키는 어떤 미묘한 변화가 최근에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가만히 촉각을 세워보면 이것은 내면의 변화가 아니라 환경적 변화임을 곧 알아차릴 수 있다. 나는 팀장으로 승진한 지 이제 채 1년이 조금 못되었는데 바로 이 역할의 변화가 그간의 가치관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팀장이 되었다고 해봐야 함께 일하고 있는 직원은 한 명뿐이다. 원래는 두 명이었는데 상반기 인사로 한 명이 줄었다. 하지만 팀원의 숫자와 본질은 상관이 없다. 이전 실무자로 일할 때와 팀장으로 일할 때의 업무방식은 확실히 다르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나는 지시라는 것을 해야만 한다. 


지시는 엄밀히 말하면 '일의 도모'이다.


일의 도모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 있는가? 도모란 일을 일으키는 것이다. 직감하시겠지만 이 일의 도모는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다. 필연적으로 투입되는 노력과 에너지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 이르면 이제 여러분은 직감적으로 이 '도모'에 대해 기질적으로, 또 성격적으로 생리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동의할 것이다. 보통 이 '도모'에 투입되는 노력이나 에너지는 한 사람의 그것만이 아닌 경우가 많다. 모아진 총량으로써의 노력과 에너지인 경우 그것을 의도하는 주관자가 필요하다. 그간 나는 이 "도모"를 향해 물을 흘려보내는 데에만 익숙했지 이 지류들을 모아 총량으로서의 웅덩이를 만들어야겠다는 의도는 지녀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 와서 그러한 의도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을 직위로서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나는 실존적으로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라고 생각하여 왔다. 더욱이 이 운명 앞에 사람은 누구나 순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왔다. 하지만 간과한 게 있었으니, 세상엔 다른 기질과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순응하는 대신 끊임없이 무언가를 도모한다. 


그들에게는 '도모'에 쏟는 노력과 에너지가 가치 있다. 


흔히 이야기하는 리더형 인간과 참모형 인간은 여기서 구분되는 것이 아닐까?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여러 부류의 지류를 모아내는 일은 얼마나 많은 인내와 노력이 숨어 있는가? 그것은 강압적이든 온건적이든 결국 사람을 어르고 달래는 과정이다. 어르고 달래는 일에는 적잖은 자기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 귀찮음과 수고로움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만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때로 리더십은 이기적이어야 한다. 리더십이 배려라는 명분 하에 부하직원들의 눈치를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면 어떠한 일도 진행할 수 없다. 나는 이번 이벤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직원들의 사기진작이라는 목적 하에 그 어떠한 양심적 의문, 가령 바쁜 직원들의 업무에 지장을 주지는 않나? 혹은 괜한 오지랖으로 직원들에게 피곤함만 더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추호의 의문도 가지지 않은 부서장의 단순 명쾌함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러한 의문을 가지고 좌고우면 했다면 이 행사는 진행되던 와중에 무산됐을 가능성이 크다. 나였다면 진즉에 때려치자는 소리가 열 번은 더 나왔을 것이다. 너무 복잡하고 예민한 양심은 정말 리더십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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