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주 재미있는 지점이 찾아온다.
내 아이가 특별하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다운그레이드 되는 지점, 바로 그 지점이 타협하는 지점이다.
나의 아이는 말이 조금 늦게 트였다.
처음엔 걱정이 많았으나, 한번 트이기 시작하더니 흔한 얘기로 딕션(diction)이 너무 좋아 이대로 크면 성우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감이 잔뜩 들었다. 특히 눈여겨보았던 것은 엄마가 책을 자주 읽어주곤 했는데, 채 글을 깨우치지도 못한 녀석이 - 한 4살쯤 되었었나? - 엄마가 읽어주는 그 짧은 내용을 어떻게 암기를 하고선 주절주절 책 읽는 흉내를 내곤 했던 것이다. 페이지가 딱딱 맞게 책장이 넘어가는데 그땐 정말 '영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모든 부모들이 다 그렇다. 확률로야 영재가 나올 확률이 100분의 1이라 하더라도 처음엔 다 그 1에 나의 아이가 포함될 수 있다는....
그리고 여지없이 그 지점이 깨어지는 순간이 온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경우엔 아주 이상한 곳에서 그것이 찾아왔다. 지금도 그날이 또렷이 기억난다.
아이는 어느 날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악보를 살펴야 하는 관계로 그날은 계이름 자리를 짚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는 영 감을 잡지 못했다.
정확히는 오선지의 공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도레미파를 못 읽는 것을 떠나서 오선지의 공간에 차례로 동그라미를 그려 넣지 못했다.
"선, 그다음은 공간, 그리고 다시 선, 그리고 다시 공간이야.... 쉽지?"
하고 설명했으나 아이는 울먹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처음으로 아이에게 화를 냈다. 처음에는 아이를 집중하게 하고픈 다분히 의도적인 화였으나, 반복된 화에도 아이가 이해를 하지 못하자, 나는 그만 진심으로 짜증 어린 화를 내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나는 '우리 아이가 영재는 아니구나'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순간의 아쉬움은 뭐랄까?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어떤 가능성을 떠나보내는 그런 아쉬움이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곧잘 그 아쉬움을 달래지 못해, 그리고 나의 결론이 성급한 판단이길 기대하면서 다양한 순간마다 아이를 심사대 위에 몰래 올려보곤 했으나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새 아이는 훌쩍 커버렸다.
울먹이며 올려다보던 그 아이의 키는 어느덧 내 목 언저리까지 위협하며 지금은 화장대 앞에서 엄마 화장품을 몰래 찍어 바르고 있다. 나는 그냥 웃음이 난다.
내가 그때 아이에게 기대했던 작은 새들은 모두 날아가 버리고, 앙금처럼 가지에 남아 흔들리고 있는 것은 오직 그날의 나의 화뿐이다. 만약 아이가 그날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면, 이제는 전세가 역전되어 거꾸로 아이가 나를 평가하는 날이 곧 다가올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해야지.
"아빠가 네게 기대했던 것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앞으로 네가 아빠에게 기대하는 것들 모두, 다 자연스러운 것들이니까 우리는 어느 선에선 타협해야 한다고, 그날의 아빠는 용서해 줘야 한다고" ^^
왜냐하면 아빠도 사실은 그리 특별한 사람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