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내내 비가 내렸기 때문입니다. 작년에도 이맘때쯤 비가 내렸는데 시기를 놓쳐 벼를 베지 못하신 분들은 이삭에 싹이 나서 벼수매를 하지 못하셨습니다.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었죠.
올 해는 이러한 트라우마로 인해 일찍 벼를 베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벼 수매장에는 대기줄이 길게 이어졌죠. 800kg짜리 벼 포대도 함께 쭈그려 앉았습니다.
벼를 베고 오후 5시 30분쯤 농협수매장에 갔었는데 밤 11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이런 경우가 한 4년 전쯤 전에도 한번 있었는데 올해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아! 11시 각이구나'하는 느낌이 팍 왔습니다.
수매장이 뭐냐고요?
농부들이 추수한 벼 - 쌀이 도정되기 전 상태, 혹시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까요?^^ - 는 국가에서 매입을 해줍니다. 정부 비축미라는 명목으로 농사짓는 분들의 수고를 덜어주는 것이지요. 최근에는 쌀이 남아돌아 어려움이 많습니다. 최소한의 가격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수매장은 바로 그 벼를 모아 양(무게)을 측정하고 수분상태 등 벼의 품질을 측정해서 최종적으로 등급을 매기고 수매 가격을 정하는 장소입니다. 사진이 별로 없네요. 아래 같은 풍경입니다.
늘 수매장에 나갈 때마다 수험생이 된 기분입니다.
제가 지은 농사는 아니지만 특등은 아니어도 1등급 아래 등급을 맞으면 기분이 영 좋지 않습니다. 그것은 품질에 대한 평가인데 등급이 낮으면 어쩐지 거기에 수반된 땀과 수고마저 절하되는 느낌입니다. 아마도 그 더러운 기분을 마주하기 힘들어 아버지는 저를 대신 보내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야 낫보다는 펜을 쥐고 사는 사람이니까 그러한 상처로부터 좀 더 쿨한 멘탈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그런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올해는 저기 보이는 포대 4개 전량 수매했는데 글쎄 돈 삼백이 되지 않았습니다. 두 포대는 조금 작은 사이즈여서 한 2,700kg 정도의 총무게를 화면에 찍었는데 저의 한 달 월급이 채 되지 않은 것입니다.
사실 전표를 들고나면 웃음이 나옵니다.
저기 숫자가 많아 보여도 저희 집이 짓는 농사는 그저 그런 소규모입니다. 많이 싣고 오시는 분들은 저 포대가 20개가 넘는 분들도 계십니다. 한 아저씨는 계속해서 쏟아놓은 포대들을 보고 놀라워하는 저에게
"농사 많이 짓는 놈들은 천치여!" 하고 썩은 웃음을 담배연기와 함께 날려 보냈습니다.
이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고백하자면 좀 더 젊었던 아주 몇 해 전에는 등급 심사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굽신굽신 머리를 조아려 보기도 했습니다. 일손이 부족해 저의 집 수매를 마치고 벼를 베주셨던 다른 아저씨네 수매도 도와드렸는데, 글쎄 등급이 조금 더 낮게 나온 것입니다.
한 들판에 펼쳐진 논에서 한 집은 좋게, 다른 집은 조금 낮게, 그것도 콤바인 주인이 되시는 이 아저씨의 등급이 조금 더 낮게 나왔다는 사실이 주인집을 이겨먹은 전셋집 사정 같아서 기를 쓰고 등급을 올려달라고 떼를 썼던 것입니다.^^
그 날일은 아버지께도 말씀을 안 드렸습니다만 아저씨가 다음 날에도 못다 벤 벼를 베고 수매를 나가셨다가 등급 심사 직원에게 "아! 어제 그 강 씨 시구만요. 자기 집 벼도 아닌데 등급 올려달라고 하도 떼를 쓰는 사람이 있어서 어제는 사정을 조금 봐드렸었습니다"라고 했다네요. 이후로 두고두고 고마워하십니다.
벼를 베는 마음들이 대개 이렇습니다.
그 옛날 수매등급이 맘에 들지 않아서 자신의 벼가마에 불을 지르던 그런 혈기들은 이젠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신 연신 담배를 태우시거나 두손 곱게 모으고 수능성적 기다리 듯 등급 심사를 기다릴 뿐입니다. 뻘쭘하니 서있기도 뭣해서 믹스 커피라도 한잔씩 건네면 그렇게 반가워 하실 수 없습니다.
"벼를 말려 건수매를 하면 조금 더 가격을 받을 수 있을 텐데요?" 라고 아는척이라도 하면 이제는 허리도 다리도 힘이 없어 널고 말릴 기력도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요즘은 대부분 벼를 베는 그날로 다들 물벼 수매를 합니다. 쌀을 찧어놓아도 가져가는 자식들이 없으니 굳이 창고에 쌀 포대를 쌓아놀 필요도 없어졌다고 합니다. 고향집 창고에 들어서면 넉넉하니 풍겨오던 그 곡식 냄새들도 언제부턴가 저온저장고 돌아가는 소리에 자리를 빼앗겼더군요.
낱알 대신 기계부품이 더 많아진 농촌이 되었습니다.
어제 오늘 차창으로 빈 논들이 많이보입니다.
한때가득했던 논물과 올챙이들, 여름의 개구리 소리와 가끔 오던백로들도다 떠나고, 그날 아버지와 베었던 것들은 벼였는지 계절이었는지.... 더 베이는 것들이 없도록 올 가을에는 모두가 밥 한공기라도 더 먹었으면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