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되었네
사랑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사람들마다 의견이 다르다.
시간이 지나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사랑이라는 말도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정리되지 않고 다시 용서를 하게 되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다.
결론적으로 모두 '운명'에 대해 말하고 있는듯하다.
사람들이 꼽는 '운명적인 사랑'은 대체로 감수해야 하고, 지구 저편에서도 달려와야 하고, 몇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사랑이어야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쓰이는 소재도 이와 같다.
그런데 나는 운명적인 사랑이 반드시 화려하고 웅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같이 밥을 먹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평범한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사랑'이 될 수 있다.
반드시 큰 울림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강가에 작은 조약돌을 던지면 물가에는 작은 울림이 생길 뿐이다.
그런데 혹시 돌을 던지고 강가의 바닥을 본 적이 있는가?
바닥에는 꽤 오랫동안 울림이 퍼지고 있다.
아주 잔잔해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모르지만,
모래가 뒤섞이고 심지어 물가를 따라 흘러가기도 한다.
이런 것이다.
처음부터 큰 폭풍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잔잔하고, 소중하게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사랑.
많이 좋아해서 늘 데이트의 헤어짐이 아쉬웠던 사람이 있었다.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 것이 쉽지 않아 집 앞 놀이터에 앉아 몇 시간을 대화했던 사람이 있었다.
몇 번의 인사를 나누고, 그럼에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서로의 품에서 사랑을 속삭였다.
그렇게 해야만 우린 겨우 떨어질 수 있었다.
그와의 데이트는 내내 오랫동안 잔잔한 울림이 남아 만나지 않는 날에도 가슴을 간질였다.
언젠가 그와 야경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한겨울이었는데 날씨가 많이 춥지 않아 두꺼운 담요를 같이 덮고 벤치에 앉아 야경을 봤다.
담요가 따뜻하고 푹신한데 그날따라 피곤했던 모양인지 깜빡 잠이 들었다.
그러다 사람들의 인기척에, 두런두런하는 말소리에 자연스럽게 깼다.
얼마나 잤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래 잠들었던 듯했다.
나는 그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고 그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머리카락을 정리해주고 있었다.
잘 잤어? 그가 포옹을 하며 말했다.
그의 따뜻한 눈빛,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던 손길, 포옹.
사랑이었다.
수려한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포장된 선물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특별한 행동이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시큰거렸다.
지금까지 그 어떤 사랑보다도 마음이 아팠다.
원래 진짜 사랑은 오히려 받을 때 마음이 아픈 법이다.
부모님이 우리한테 뭔가를 해주실 때, 밥 먹으라는 사소한 말들이 나중에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오는 것처럼.
원래 진짜 사랑은 가슴이 아팠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달콤함이 남는 줄 알았는데 혹은 씁쓸함과 상처가 가라앉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는데.
하면 할수록 아픈 사랑도 있었다.
더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서, 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노력하고 내내 미안해지는 사랑이 있었다.
내가 바라는 것보다 해주고 싶은 게 늘어나는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때마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그런 사랑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소한 행동, 평범한 일상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랑이 가장 특별하고 운명적이라 생각한다.
마치 결혼생활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게 더 힘든 것처럼 말이다.
비싼 레스토랑에 가고 드라이브를 하는 것은 많아야 일 년에 몇 번이지만,
평범한 일상은 매일이다.
평범하고 기쁘고 슬픈 감정들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랑.
새벽의 여명처럼 함께 빚어내고 아름답게 저무는 일몰처럼 평범한 하루를 그려내는 사랑.
아무나 하기 어렵고, 아무나 지켜내기 어려워서 더욱 값진 사랑.
있는 반찬들에 밥을 비벼 먹어도 함께 해서 행복하고 소중한 것.
상대의 사소한 행동을 바라보고 이해해주는 것.
바지에 묻은 흙을 털어줄 수 있는 사랑.
관찰하고 가만가만 바라봐주는 마음.
가장 소박한 사랑이,
가장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법이었다.
마치 잠깐 내리다 그치는 소나기보다
하루 종일 내리는 이슬비가 더러운 공기를 더 맑게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