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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Oct 13. 2017

착각과 진심 사이

마음의 거리

도와드려요?

그는 내게 정품 한글 2016을 보냈다.


당신은 원래 모두에게 이렇게 친절한가요?

아니면 내게만 특별히 잘해주는 건가요?


내가 컴퓨터에 대해 물어볼 때면, 혹은 어떤 질문에 대해서든 늘 친절하게 답했던 그였다.

하지만 섣불리 그가 내게 마음이 있다고 판단하기엔 조심스러웠다.

원래 그가 따뜻한 사람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같은 동아리였던 그는 모임이 끝나면 거의 매번 사람들을 집까지 데려다줬다.

다음 날 출근이라 피곤할 법도 한데 친절하게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묻고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의 따스함, 어떤 상황에서도 화를 내지 않을 것 같던 온기는 점점 더 그의 품을 갈망하게 했다.


나는 그를 좋아했다


그런데 나중에 동아리를 나오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알게 된 사실로는 그도 나를 좋아했단다.

나는 내 나름대로 그에게 표현을 했는데 그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어쩌면 친한 관계였고, 단체에 소속되어있었기에 나 역시 더 표현하는 것은 조심스러움이 있었다.

개인적 만남이라면 고백 한 번 하고 끝내면 되지만,

그게 아니었다.

잘못된 선택 한 번으로 단체생활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인간적인 호의와 이성적 관심의 차이.

무엇이 우리를 헷갈리게 한 걸까.

무엇이 우리를 주변에서만 맴돌게 만든 걸까.


나는 그에게 영화를 보거나 밥을 같이 먹자고 권유할 때 개인 톡으로 하지 않았다.

혹여나 그가 부담스러워하진 않을까 단체톡으로 유도했다.

그는 원래 착한 사람일 뿐이라고 단념했다.

원래는 한 번 지르고 보는 성격인데 이런 성격도 정말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유해지나 보았다.

단체톡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며 영화를 보자 했을 때 그는 두 번 정도 거절했다.

물론 사정이 있었다.

선약이 있었고, 가족모임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 이후 다시 약속을 제안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가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가 내게 따뜻한 말을 할 때도, 컴퓨터 프로그램 까는 것을 도와줄 때도.

그는 원래 친절한 사람이라고, 사람들을 데려다주는 것만 봐도 알지 않냐며 주입하려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는 원래 사귀기 전에 데이트 약속 잡는 걸 어색해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저 단체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다 호감이 생기는 사랑만 해봤고 그런 사랑을 선호했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사랑은 훨씬 더 자연스럽게 물들어간다고 했다.

너와 내가 알게 되고 얽히는 과정이 마치 물에 물감이 섞이듯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나는 그가 그런 방식을 추구하는지 몰랐으니 그의 마음을 알 리 없었다.

당연히 누구라도 내가 영화를 보자 했는데 시간이 안돼서 못 보겠다는 말만 들으면, 나처럼 생각할 수 있다.

아니 '누구라도'의 100% 전제는 조금 위험한 것 같고, 한 70% 정도?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내가 여는 번개마다 모두 참여했었다.

단체톡에서 '오늘 치맥 ㄱㄱ'의 주제로 벙을 열면 몇 명의 참가자 사이에 그의 이름이 보였다.

그때는 특별하지 않게 생각했던 것이 나중에 그의 입으로 전해 들으니 비로소 마음이 느껴졌다.

불편하지 않게, 어색하지 않게 그러나 자연스럽게.


하지만 나는 그 과정이 너무 답답했다.

정확한 기약을 알 수 없었기에 마음이 불편해 모임을 나왔다.

그에 대한 마음은 머리로 잊으려 한다 해서 잊히는 게 아니었다.

사랑은 시작하는 것보다 끝내는 게 더 어렵더라.

모임을 나온다 해서 마음이 끝난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그가 생각났다.

아니 하루의 몇 순간을 제외한 나머지 순간에 그가 채워졌다.

순간마다 그가 있었고 나는 몇 번이고 전화기를 들었다 겨우 마음을 차분하게 다져야 했다


사랑이 어려운 것은 시작과 과정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지만 마무리도 그 둘 못지않게 어렵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저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커서,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애틋한 마음으로 바라만 봐야 했을지 모른다.

그도 소중하지만 그가 소속되어있는 그 공간도 소중했기 때문에.

또 그에게도 그 공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내 잘못으로 그에게 소중한 공간을 잃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조금만 덜 서로의 마음을 신경 썼다면, 될 일이었다.

그가 소중한 공간을 잃어도 난 내 사랑이 더 중요했다면.

혹은 그가 모두에게 다 친절하지만 내게 더 특별한 것 같다고 괜한 소망을 만들었다면.

그래서 그에게 좋아한다고 말했다면, 우린 아마 이어지지 않았을까.

나중에 그의 마음도 나와 같았음을 알았을 땐 이미 내 마음이 정리된 뒤였다.


나는 매일같이 끓어오르던 그에 대한 마음을 수련하듯 억지로 덜어냈다.

너무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역시 사랑은 타이밍이었던가.

왜 모임에 있을 때는 아무도 귀띔을 하지 않았으며

우린 서로를 재기만 했는지.

타이밍이 지난 후에는 삶도, 사랑도 모두 아픈 추억이 되고 만다.



착각과 엇갈림 사이.

누군가의 진심을 착각하는 것만큼 가슴 아픈 일이 없다.


다른 착각이야 사실을 잘못 알았다는 정도로만 생각하면 편하다.

그런데 마음에 대한 착각은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서서히 타오르기 시작한 마음이 훅 분다 해서 바로 차갑게 식을 수 있겠는가.

하다못해 라면을 끓인 냄비도 한동안은 따뜻하다.


상대와의 착각이었음을 인정한 채로 홀로 뜨거운 마음이 차갑게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과정이 얼마나 외롭고 서러운지.


그 사람의 마음이 친절인지, 나에게만 주는 사랑인지 확실히 알 수만 있다면.


한편으론 사랑을 줬음에도 상대는 그저 친절일 뿐이라고 착각해

오히려 마음이 움츠러들 수도 있겠다.

그와 나처럼.


사랑의 타이밍.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사실은 친절이었을 때.

그저 친절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좋아했을 때.


대체 사람의 마음은 왜 이렇게 복잡할까


그래서 지난 몇 개월 간 착각과 진심을 구분하는 방법을 생각해봤다.

착각과 진심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이 차분해야 한다.

쉽게 판단하고 쉽게 행동했다가 평생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급할수록, 궁금할수록 더 돌아가야 한다.

만약 그의 호의가 친절인지 진심인지 궁금하면,

나도 그에 대한 적당한 보답을 해보면 된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깔아준 그에게 고맙다는 말만 할 수도 있지만, 만약 그가 당신의 마음을 확신하지 못한 상태라면 오히려 그가 착각할 수도 있다.

'아 이 여자는 내게 관심이 없구나.' 하고.

그러니 나는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런데 데이트 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하면 마음이 쓰라릴 테니

처음엔 가볍게 기프티콘 정도로 해본다.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거나 그가 좋아하는 과자 정도로 가볍게 호의를 전달한다.

이때 그가 고맙다고만 말하고 연락이든 그 이후 호의들이 끊어진다면 정. 말. 단. 순. 호. 의. 였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가 진심이었다면, 당신이 준 먹이를 냅다 물 것이다.

어떻게든 연락도 이어가려 하고, 시간이 지나면 데이트 신청도 하게 된다.


혹은 처음엔 호의일 뿐이었지만 당신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받아 진심으로 변했을 확률도 없진 않다.

어쨌든 중요한 건 당신이 보답을 했을 때 이어가려 하면 그 시점, 그 남자는 당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이어가는 연락에도 의문을 품으면 절대 안 된다.

혹여 남자의 연락이 드문드문하더라도 일단은 기다려보자.

충분히 친해지고 난 뒤에야 데이트 신청을 하는 경우도 많으니 말이다.

연애는 케바케다.

절대적인 법칙은 없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사례만 존재할 뿐.


언젠가 대학교 교양과목에서 알게 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던 선배와 친하게 지낸 적이 있었다.

그는 취미가 쿠키를 굽는 것이었고, 그에 맞게 교양과목 조모임을 할 때면 잔뜩 구운 쿠키를 가져와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그러다 언젠가 그가 내 생일 즈음에서 뭘 먹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당시 과제 시즌으로 학교에 거의 살다시피 해서 바깥 음식을 많이 사 먹었던 터라 집밥 중 가장 자주 해 먹곤 했던 김치볶음밥이 그리웠다.

그래서 그에게 피자치즈를 잔뜩 뿌린 김치볶음밥이 생각난다고 했다.

그에게 해달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본래 우리는 누군가의 생일이 되면, 오늘 뭐 할 거야? 뭐 하고 싶은 건 없어? 묻지 않나?

그냥 생일이니까.

생일에 뭐 하고 싶은지, 뭘 할지 궁금해서.


근데 그가 그날따라 나의 스케줄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다.

수업 끝나고 바로 집에 가는지 조모임은 없는지.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데 익숙한 그가 복도에 서있었다.

한 손에 쇼핑백을 들고.

생일 축하한단다.

쇼핑백 안에는 내가 말했던 치즈가 잔뜩 올려져 있는 김치볶음밥과 베이컨 말이가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주고 싶었단다.

생일인데 챙겨주는 사람도 없을까 봐 준 거니 오해하지 말라며 틱틱댔다.

처음 나는 그의 쇼핑백을 보고 그가 나에게 혹시 마음이 있나? 생각했다가 그의 말을 듣고 그럼 그렇지, 단지 요리를 좋아할 뿐이고 친절할 뿐이라고 마음을 바꿨다.


치즈가 식기 전에 먹어야 한다며 그와 동아리방으로 갔다.

그리고 가운데에 두고 같이 떠서 먹는데 그토록 그리워했던 아삭하고 매콤한 볶음밥이 입안 가득 퍼져 정말 행복했다.

아무리 비싼 음식도 먹고 싶지 않을 때 먹으면 소용없다.

단 천 원짜리 컵라면일지라도 정말 먹고 싶을 때 먹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 앞에서 밥 한톨 남기지 않고 모조리 비웠다.


그런 내게 나중에 또 만들어주냐고 물었다.


"좋아요 선배님은 요리하는 거 좋아하시니까요!"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해주는 것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 요리하는 거 좋아해.

근데 아무한테나 만들어주진 않아.

만들고 뒷정리하는 것만 해도 얼마나 귀찮은데."


근데 그가 생각지도 않은 말을 했다.

갑자기 동아리실이 더웠다.


"아 그래요? 저는 원래 생일인 사람들 잘 챙겨주는 건 줄 알았어요. 좋아하는 요리도 할 겸......."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재료가 많아서, 심심해서 도움을 준 게 아니었다.


사실 밥을 만들어줬다는 것만 보고 단숨에 진심이라고 판단하기엔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저 정도는 친구 간에도 충분히 해줄 수 있기 때문에.

그런데 어쨌든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이니 어떤 사람은 내 생각과 다를 수도 있고, 마찬가지로 표현법도 다를 수 있다.

또 그 표현법을 읽지 못했다가 금세 멀어질 수도 있는 게 사랑이다.

그러니 우리는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늘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받아 들어야만 한다.

혹시 알까.

쉽게 판단했다가 정말 좋은 사람을 놓치게 될지.

일단은 가볍게 있는 그대로 그의 호의를 받아들이고 나중 일은 찬찬히 생각해보자.



어쨌든 호의는 관심이든 인간적인 것이든 소중하게 여겨야 마땅하다.

단순히 재료가 많아서 해줬다 한들 자기를 위해서만 쓸 수도 있는 건데 나를 위해 사용한 것이다.

나를 위해 시간을 들이고 재료를 다듬었다.

나에게 연락을 했다.

프로그램을 깔아주고 아무리 피곤하고 힘든 날도 내가 여는 번개만큼은 참여했다.


호의에서 사랑이 될 수도 있는 게 마음이다.

또 사랑이 단순한 관계로 변하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한 번에 판단하기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호의, 관심을 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아직 우리의 삶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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