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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Oct 13. 2017

'미안해'가 주는 묵직한 따스함

미안해와 미안해 사이 3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육중한 것이 내 다리를 세게 박았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나는 엎어졌고 계란은 바닥에 떨어져 몽땅 깨져버렸다.

깨져버린 알들 사이로 노른자가 흘러내렸다.


나는 화가 나서 뒤를 돌아봤다.

내 뒤에는 전동식 휠체어를 탄 할머니가 계셨다.

그리고 거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할머니 가방이 떨어져 있었다.

할머니는 눈이 잘 보이지 않으신지 주변을 주섬주섬 더듬으며 가방을 찾으셨다.

나는 그 모습에 화가 났던 게 금세 수그러졌다.


"할머니 이거 찾으시는 거예요?"

가방을 주워 할머니의 무릎에 올려드렸다.


"고마워요. 아 내가 눈이 침침해서 지팡이를 짚으면서 다녔더니 여간 운전이 쉬운 게 아니네.

많이 다쳤어요? 미안해요. 내가 밖에 나오면 안 되는데 손주 녀석이 좋아하는 붕어빵 사러 왔다가 이모양이 됐네."


밤새 내렸던 눈이 녹으면서 도로가 미끄러웠던 작년 11월 말.


손주를 생각하며 붕어빵을 사러 왔다가 도로가 미끄러워 운전이 쉽지 않아 당황했을

그녀의 마음이 마음을 울렸다.


어렸을 적 할머니 집에 갈 때면 할머니는 서랍에서 봉투를 꺼내 주시곤 했다.

봉투 안에는 꼬깃꼬깃 힘들게 모으셨을 돈이 들어있었다.

괜찮다고 해도 받으라며 주머니에 밀어주셨던 그 온기와 시골집의 냄새.

내가 일을 시작하면 반드시 돌려드리겠다고 다짐했던 과거의 기억이 생각나 가슴이 찡했다.


딸내미 좋은 거 먹인다며 퇴근 후에 먹을 것을 한 아름 사 오셨던 어머니.

그럼에도 정작 본인은 드시지 않아 왜 안 드시냐 하니 입맛이 없다 하셨던 어머니.

알고 보니 어머니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는 음식이었다.

그럼에도 딸이 좋아하니까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음식을 사셨을 어머니의 마음과 어딘가 닮아있었다.  


퇴근 후 잠시도 앉지 못하고 10시간이 넘도록 사골을 고으시던 어머니의 모습과

얼어있는 도로를 겨우 짚어가며 붕어빵을 사셨을 할머니의 모습이 겹쳐졌다.


"저 괜찮아요. 저기 할머니 집이 어디예요? 저도 그쪽 방향 가는 길인데 모셔드릴게요. 어젯밤 눈이 내려서 도로가 미끄러워요. 혼자 가시면 위험하실 것 같아요."


할머니는 연신 괜찮다고 하셨지만 계속 마음에 남아 뒤에 서서 휠체어를 밀었다.

그녀는 5분 거리의 주택에 살고 있었다.


"할머니 위험하니까 당분간은 혼자 나오시면 안 돼요. 아셨죠?"


내 말에 할머니는 허허. 웃음만 지으셨다.


주택 앞에 도착해서 할머니를 부축해 집 앞까지 모셔드렸다.


"저 이제 가볼게요. 푹 쉬세요."


"저기 잠깐만요."


인사를 하고 가려하자 할머니는 내 손목을 잡으셨다.


"미안해요. 이래저래 고맙고 신세도 많이 졌는데 저기. 이거라도......."


할머니는 가방에 있던 붕어빵 봉지를 통째로 건네며 말하셨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붕어빵이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할머니. 들어가서 얼른 손주랑 맛있게 드세요."


"줄게 이거밖에 없는데 이거라도 줘야 그래도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 우리 집에서 같이 먹고라도 가요 응? 우리 집이 좁아서 불편하려나. 이거라도 받아줘요."


손주를 주기 위해 그 험한 길을 가서 사 온 붕어빵을 서슴없이 내게 내미셨다.


"저 그럼 하나만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할머니."


나는 봉지 안에서 붕어빵 하나를 꺼냈다.


"이거 다 가져가지 않고.."


"그건 손주 주세요. 할머니 날도 추운데 따뜻하게 붕어빵 드시면서 쉬세요."


그녀는 잘 보이지 않는 침침한 눈에도 내가 골목에서 사라질 때까지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앉아계셨다.

가만히 서서 내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계셨다.

붕어빵을 한입 베어 무는데 팥의 온기가 입 안에 가득 찼다.

순간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와 일하고 계실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부모 마음은 다 이런 걸까.

나는 결국 입 안 가득 팥을 오물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먼저 들어가시라는 말에도 내가 가면 들어가신다던 할머니의 말이,

눈이 침침해도 손주를 위해 먼 길을 나섰던 그녀의 마음이

견딜 수 없이 아팠다.



어떤 것들은 특별한 말이 없이도 모든 게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에게 종아리를 맞고 잠이 든 날 새벽녘 몰래 들어온 엄마가 연고를 발라줄 때.

딸을 때렸다는 사실에 마음 아파 잠을 이루지 못하다 결국 연고를 들고 와 덕지덕지 발라줄 때.

미안하다는 한 마디에 가슴이 콩닥거려 잠에서 깼지만 자는 척했던 때가 있었다.


어떤 것들은 길게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마음을 찡하게 울렸다.


어떤 것들은 별 설명을 하지 않았음에도

너무도 그 마음을 잘 알겠어서 오히려 모른 척하고 싶어 질 때가 있다.

쑥스럽고 수줍어서.


그리고 미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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