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연 Oct 17. 2017

나의 생각이 전부가 아닐 때

너의 생각이 내 입장에선 보이지 않을 때

 허벅지 안쪽에 있는 상처를 확인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선 채로 상처를 확인했고, 변기에 앉은 적도 없었지만 물을 내리고 나가야 했다.

오로지 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나 라도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칸은 들어가기 싫을 테니까.

이렇게 나에 대해 잘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들이 문득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누구에게나 각자만의 삶과 상황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판단하려 든다.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오해를 받아 쓰라릴 때가 있다.

일일이 보여주고 설명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오해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조금 복잡하게 살아가는 것이 삶에 대한 예의인 걸까, 의문이 들었다.


한 뼘 가볍게.

보편적인 상황에서 먼저 생각해보고, 나의 개인적인 생각보다 보편적인 생각에 맞추는 게 어떻게 보면 덜 피곤할지 모른다.

보편적으로 물을 내리지 않은 칸은 변기가 막힌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닐지라도 입장을 바꿔 상황을 받아들이고, 맞춰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의 오지랖과 보편적인 시각에 대해서는 수용하되,

나는 타인의 행동에 대한 오지랖을 덜어내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하지?'

내 입장에서 의문을 갖기보다는 그 사람에겐 그 사람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길에서 어떤 사람이 나를 세게 치고 걸어갔다고 가정해보자.

사과도 없이 그냥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날 수도 있겠다.

그럴 땐 내 입장에서 '왜 저 사람은 사과도 하지 않고 그냥 가지?' 판단하기보다는

어딘가 아파서 급하게 가는 길이라거나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고 먼저 헤아려보자.


정말 그럴 수도 있다.

모든 상황이 보편적인 법칙에 따르는 것은 아니다.

때론 예기치 못한 상황도 존재한다.

화를 냈다가 상대가 시각장애인인 것을 알면 오히려 미안해진다.

그러므로 화는 상황에 대한 이해와 판단이 모두 끝낸 뒤에 조곤조곤한 말로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


상황을 모를 땐 화가 나지만

상황을 알면 무던히 이해가 되는 것들이 많다.


길을 걷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의 표정이 좋지 않다고 해서

그것이 나를 향한 짜증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 사람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판단하는 습관을 지닌다면

삶이 보다 가벼워진다.


자기 개인적인 일을 생각하다 근심할 수 있는데 오히려 내 표정을 보고 다른 누가 오해할까봐 웃으며 걸어다니는 게 더 억지스럽다.

또 생각에 잠기다보면 설령 맞은편에서 지인인 당신이 오더라도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다.

그 상황에서 당신은 '왜 그냥 지나치지? 분명 본 것 같았는데  나한테 화난 것 있나?' 지레짐작을 하고 관계에 거리를 두기 보다는 상대의 마음을 기다릴 수 있어야한다. 확실한 상황이 아닐 땐 언제나 기다림이 필요하다. 상대가 확실히 당신에 대해 싫다고 했거나 그런 행동을 한 게 아니라면 마음을 비우고 추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보는 것이다.
 만약 상대의 반응이 애매하면 정말 화가 난 것일 수 있으니 그때 물어보면 된다. 혹시 기분 안 좋은 일 있는지 물어봐도 되냐고.

 그 전까지는 어떤 추측도 해롭다.

그러니 어떤 상황일지라도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편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정말 큰 일을 당한 사람은 눈을 뜨고 있어도 앞의 사물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한다.

흔히 남녀관계 문제에서 예를 들면 오해를 하는 것보다 오해를 할만한 상황을 만드는 게 문제가 된다. 수위가 높은 문자를 주고 받는다거나 와이셔츠에 립스틱자국, 화장품 팩트가 묻어있다거나 하는 상황들 말이다. 그런데 오해할 상황이 아님에도 기다리기보다  먼저  판단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한 번 잘못된 판단을 하면 어떤 진실된 해명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판단은 판단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지만

어떤 판단은 많은 부연을 첨가해도 오히려 복잡해지는 경우가 있다.


몇 년을 알아도 잘 모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하루 만에 모든 걸 알아버린 듯 친근한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듯이.


우리가 맞다고 생각하며 행동해온 것들도

사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일 때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