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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Jul 05. 2016

당신을 설레게 하는 것들

우리는 조금 더 설렐 필요가 있다


나는 봄냄새가 좋았고,

비가 그친 뒤 시원하게 부는 가을바람이 좋았다.


밥을 먹고 나서 적당히 불러오는 포만감이 좋았고,

초콜릿을 얼려먹는 걸 좋아했다.


사탕을 깨물어먹곤 했고,

창문을 열어 바람 쐬는 걸 좋아했다.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었고,

특히 내리막길을 쉬지 않고 내려갈 때 짜릿했다.


비가 오는 날 집에서 파전을 부쳐먹기를 좋아했고,

보고 싶은 영화를 다운받아 보곤 했다.


아무 목적 없이 가만가만 걸어 다니기를 좋아했고,

길가에 있는 세 잎 클로버들 사이에서 네 잎 클로버 찾는 걸 좋아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면 설레는 마음으로 창밖에 내리는 눈을 바라봤고,

크리스마스 당일엔 선물을 찾아보곤 했다.


11월이 되면, 언제 첫눈이 내릴까 기대됐고,

보슬보슬 창밖에 첫눈이 내릴 때면 어린 소녀는 한동안 눈을 맞고 다녔다.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눈싸움하는 걸 좋아했고,

그러다 지치면 다 같이 모여 눈사람을 만들었다.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장소를 찾아

오로지 내 발자국들로 나만의 길을 만들곤 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임에도

어떻게든 연락이 닿았고,

그렇게 만났기에 그 시간들이 더 소중했다.


학교가 끝나고 근처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튀김을 먹었고,

시험 전 날엔 같이 공부를 하자며 우르르 친구 집에 갔다가 수다만 떨기도 했다.


그러고도 시험이 끝나면 노래방에 가서 스트레스를 풀었고,

어둑어둑 해질 즈음 벤치에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눈물을 흘리기도, 웃기도 했다.


시간이 참 안 간다고 생각했던 시절,

비가 내리는 날 우산이 없어도 무서울 게 없었던 그때.


거리에 흩날리는 단풍을 보면서도 쉴 새 없이 웃을 수 있었고,

매일 비슷한 급식에 학교생활을 하면서도 함께여서 즐거웠던 그 시절이.


오늘따라 그립습니다.


학원이 끝나면 다 같이 놀이터로 가서 술래잡기를 했고,

누가 높이 올라가나 그네 시합을 했다.


때론 소꿉놀이를 했고,

교환일기를 쓰며 서로 간의 비밀을 키워나가기도 했다.


그땐 그랬다.

놀이터에서도 재밌게 놀 수 있었고,

천 원짜리 공책만으로도 우정을 키울 수 있었다.

그저 함께여서 행복했고, 즐거웠다.


앞머리가 빨리 떡지는 바람에 늦게 일어난 날은 앞머리만 감기도 했고,

그러다 하교시간이 되면 서로의 정수리 냄새를 맡으며 깔깔댔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은 거창한 게 아니었다.

과자 하나를 나눠먹어도 행복했고,

그것만으로도 배불러지는 것 같았다.


우산 하나를 서너 명이 나눠 쓰다가

누군가는 앞이 잘 안 보이고,

다들 조금씩 젖었지만,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작은 우산을 나눠 쓰면서도 불평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고,

커터칼로 서로의 연필을 직접 깎아주며 서로를 조각가라고 불렀던

그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땐 왜 그렇게 행복했을까?

무엇이 우릴 즐겁게 한 걸까?


성인이 된 지금은 그때의 마음을 잊고사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작은 것에도 설레고, 감동받았던 그때와는 달리

점점

웬만한 것들엔 아무런 감흥이 없어진 지금.


지금은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한 걱정만으로도 벅차

더 이상 소소한 여유를 즐길 수 없는 게

안타깝다.


매일 조금씩 지쳐가는 우리에게

소중한 추억들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를 생각하며 향수에 젖고, 그때 그 친구들을 만나

밥 한 끼 하고, 옛이야기를 나누는 순간만큼은 그 누구보다 행복하니까.

그렇게 지치고 힘든 일상을 견뎌낼 수 있게 해준다.



그럼에도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도 충분히 설레고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성인이 되어 전보다 현실을 알아버렸고,

그래서 작은 일들에 감흥이 없어졌지만.

그만큼 감성도 줄어들었지만,

조금만 더 시야를 넓히면 된다.


전처럼 길가의 풀꽃들을 유심히 들여다보거나

퇴근 후 30분씩 자전거를 타보는 것도 좋다.


작은 것들을 무심하게 지나쳤던 지난날들을 뒤로하고,

다시 유심히 들여다보면 된다.

그 안에는 의외로 많은 것들이 숨어져 있고,

그것을 찾아보며 어느새 신기해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명심해야 할 것은

지금 내 옆,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잊지 말자.

소중해하고 고마움을 표현해야 한다.

충분히 많은 사랑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 이 순간 역시 과거가 된다는 걸 잊지 말자.

언젠가 지나간다면, 후회 남지 않게끔.

우리 지금부터 더 설레고, 더 행복해하며

그렇게 잘 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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