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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Jul 27. 2016

사랑은 코드를 맞춰가는 과정이다

너와 나 사이의 거리, 그리고 온도


가끔 묘한 생각이 든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 중,

나와 가장 잘 맞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것을 알게 된다면,

숱한 만남과 이별을 관둘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사랑을 하고,

또 헤어지기도 한다.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에 지쳐갈 즈음

차라리 상대와의 첫 만남에 앞으로의 일들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앞으로 몇%의 궁합을 가질지 알 수 있다면,

괜히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상처를 입을 일은 없을 것이다.


애초 태어날 때부터 운명의 짝을 정해주고,

평생 그 사람만 바라보며 살게 된다면

상대의 변심과 바람과 같은 상처 없이 누구나 평화로운 사랑을 하겠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첫 만남에 서로 호감을 갖고,

꾸준히 연락하다 어느 순간 고백을 받고

교제를 한다.


초반엔 아름답기만 하던 감정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축축 늘어져

'너'와 '나' 사이의 거리에 습한 기운만 가득 채워 넣는다.


그러다 문득 과거의 아름다웠던 기억들이 떠오르고,

우리 다시 잘 지내보자고 약속하지만.

금세.


사랑은 이렇듯 처음부터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잘 맞다가도 흐트러지고, 흐트러지다가 다시 잘 맞기도 하는 법.

잘 맞는 부분이 있듯 그렇지 않은 부분 역시 존재한다.


그래서 사랑은 코드를 맞춰가는 과정이다. 


a와는 용납됐던 행동이 b와는 안 될 수도 있고,

a는 이해해줬던 것들이 b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일 수도 있다.

나와 맞는 코드를 지닌 사람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다른 코드를 가진 '너'와 '나'를

조금씩 맞춰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누군가는 시간을 내서 잠깐이라도 만나기를 원하고

또 누군가는 어차피 잠깐 볼 거 힘들게 준비할 것 없이 푹 쉬고

시간 여유가 많을 때 제대로 데이트하기를 원한다.


전자든 후자든

사람의 성향이 다를 뿐

상대에 대한 마음 크기가 다르다고 할 수는 없다.



첫 연애 때는 상대방의 코드에 맞췄었다.

출장에 갔다가 밤 10시가 넘어서 올라온 그가

30분이라도 보자며, 카페에 오라고 했을 때

나는 내 상황은 생각하지도 않은 채 승낙했다.


어느새 화장을 하고 있었고, 옷을 입고 향수를 뿌렸다.


그러다 몇 개월이 지나고,

그날도 그는 출장에 갔다가 저녁 즈음 도착할 예정이었다.

나는 이번에도 만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쉬자는 그의 말.

실망이 컸다.

같은 상황인데 언제는 쉬고, 언제는 만나자는 그의 말들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문득 나만의 코드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삶, 나의 시간을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로 뒀다.

출장에 갔다가 그가 잠깐 보자고 해도

내가 내켜지지 않으면, 오늘 말고 다음에 보자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끌려다니는 연애가 아닌 중심이 잡힌 균형 있는 연애를 할 수 있었다.  


내일 만나자는 그의 말에 내일보다는 금요일이 더 좋을 것 같다고 했고,

이틀 연속 보면 내 시간이 없으니까 하루의 텀은 두자고 했다.


우리가 관계를 맺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자의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

오랜 연애를 위해선 상대로 인해 자기를 잃어선 안돼.

나는 나고, 너는 너야.

각자의 개체가 만나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렇다 해도 저 생각은 변하지 않아.

너를 위해 나를 모두 잃어버린다면, 설령 헤어졌을 때 어떻겠어?

관계가 끝난 것만으로도 슬픈데, 그 관계 동안 자기의 모습들을 모두 잃었다면.

아무것도 성취한 게 없다면 얼마나 허무할까?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것도 배우고, 해보고 싶었던 것도 해보자.

대신 서로에게 믿음을 주게끔.

내가 말했다.


헬프



그렇게 나는 조금씩 연애를 하며 잃었던 내 모습을 찾아갔고

속박되기보다는 자유로워 한결 행복했다.

더 많은 걸 누릴 수 있었고,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 속에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연애를 한다 해서 둘 사이의 추억만 갖는다면, 설령 연애가 끝나 돌이켜보면 참 무료할 것이다.

연애하는 동안 특별히 무언가를 배워본 것도, 경험한 것도 없다면.

단순히 그 사람만을 위해 그 시간을 살아왔다면

조금은 허무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코드를 갖게 되었고, 나와는 다른 코드를 가진 그와 잘 버무려져 보다 더 아름다운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면 올인하고자 한다.

모든 것을 쏟으려 하고,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상대에게 맞춰간다.

하지만 그런 연애는 오래가지 못한다.

사람은 언젠가는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생각했을 때 결국 나에게 남아있는 건 없고

나의 모든 건 상대의 것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다면

그때의 자신이 그리워질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함께 할 때 가장 나답게 해주는 사람과 연애하는 것이 좋다고.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연애는 상대의 모습을 보존해주는 것.

바꾸려 하지 않고, 결점마저 사랑해주는 것.   


사랑은 서로의 코드를 맞춰가는 것임을 명심하라.

내 모든 것을 버려가며 사랑에 올인할 경우

추후 헤어지게 되면,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명심하라.


헤어지더라도 후회 없도록.

나의 삶에 집중하고,

상대의 삶을 보듬어

그렇게 조금씩 서로에게 물들어가기를.


빨간색 물감과 파란색 물감이 섞여

자연스럽게 보라색 물감으로 젖어갈 때

그것을 우린 사랑이라고 부른다.


빨간색이 파란색이 되는 것도,

파란색이 빨간색이 되는 것도 아닌

적당히 나의 색과 상대의 색이 섞여 어우러지는 과정.


그것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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