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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Feb 02. 2017

관계의 끄트머리에서

너와 나의 이별


이해한다고 했다.

그가 연락이 잘 안 돼도, 친구들과 노느라 핸드폰을 잘 못 봐도 이해한다고 했다.


데이트 당일 늦잠을 자서 약속 시간을 미뤄야 할 때도,

갑자기 불같이 화내며 집에 간다 했을 때마저 그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래, 놀 수도 있지 청춘인데.

얼마나 바쁘면 그랬을까?

얼마나 피곤하면 평소와는 다르게 늦잠을 잤을까?

어떤 게 그를 화나게 한 걸까?


그의 행동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받아들이려 했다.

그를 사랑했기에

그는 사랑스러웠기에 저런 이유들로 헤어지기엔 마음이 아팠다.


때론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에게서 온 카톡 하나에도 설레는 날 볼 때면

'그래, 아직은 아니야.' 하고 마음을 눌러야 했다.


이해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인데 그럴 수도 있지.

오히려 완벽하면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의 행동들에 하나하나 그럴듯한 이유를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 둘 그럴듯한 이유를 생각해낼수록

지치고, 외로워졌다.


어느새 그에 대한 마음은 사랑보다 이해심이 더 커져버렸고,

헤어지라는 주위 사람들의 말에 알게 모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즈음,

약속 전 날 무리한 탓에 감기몸살에 걸리게 되었다.

결국 나는 약속했던 시간보다 불과 30분 전에 일어나게 되었다.

첫 늦잠이었다.


나는 놀라 그에게 카톡을 보냈다.


'미안해. 어제 무리했더니 감기몸살이 왔나 봐. 아직 안 나왔지? 30분만 늦게 볼 수 있을까?'


지금껏 세 번 정도 늦잠을 잤던 그였기에 한 번 정도는 나를 이해해주리라 생각했었다.


'아 뭐야. 그냥 보지 말자. 어차피 감기면 쉬는 게 좋잖아. 다음에 봐.'


아니었다.

나는 관계를 위해 그를 이해하고, 그를 포용해왔는데

그건 '관계'를 위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에게서 나의 존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든 걸지도 몰랐다.

그의 말에는 사랑이 없었다.


나의 몸에 대한 걱정도 없이, 약속 시간을 미룬다는 얘기에 퉁명스럽게 말했고

나는 감기 기운까지 겹쳐 처음으로 그에게 화를 냈다.


'오빤, 한 번도 나를 이해 못하는 거야? 단 한 번도? 나는 계속 오빨 이해해왔었어.

그렇게 하면, 우리 관계가 오래도록 지속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봐. 물론 내가 늦게 일어난 건 잘못한 거지.

근데 오빠 아직 집이라며. 30분만 늦게 나와도 되는 거잖아.'


'아프다며. 만나서 뭐해? 아플 땐 쉬는 게 맞는 거야. 너 질린다.'


서러웠다.

나는 그에게 헤어지자고 이야기했다.

사귀는 내내 그의 행동들을 이해해왔던 나를 고작 '질린다'라고 표현한 것만큼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쉽게 알겠다고 했고,

나는 며칠 내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다시 그가 생각났고, 헤어졌던 당시 그가 뱉었던 말들이 금세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그가 내게 잘해줬던 행동들이 하나 둘 생각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래, 그때 늦게 일어난 내가 잘못한 건데, 괜히 감기에 걸려서 예민하게 받아들인 게 아닐까?

그는 나를 정말 생각해서 쉬라고 한 걸 수도 있잖아, 그래 추우니까 감기가 더 심해질 수도 있고.

다시 예전처럼

헤어졌던 당시 그가 뱉었던 말에 대해 '이유'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와 다시 만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지나왔던 세월이 있었다.

참 힘들고 외롭고, 고달팠던 시간들.


연락이 잘 되지 않았고, 화가 많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그의 모습들을 끄집어

그가 나에게 외투를 벗어줬을 때, 감기에 걸린 나를 위해 모과차를 만들어 집 앞까지 와줬을 때,

갈비찜을 좋아한다는 날 위해 직접 만든 갈비찜을 선물해줬을 때 등

그의 따뜻하고 자상했던 시간들 위에 덮어

잊으려 노력했다.


그가 나를 사랑했다고 느낀 순간들을 일일이 끄집어

동시에 그가 나에게 소홀했던 순간들을 기억했다.


그렇게 사랑했던 순간들 위에

소홀했던 시간을 덮었다.


그가 내게 줬던 편지들을 찢고,

직접 짰다며 선물해준 목도리를 잘라 버렸다.


그의 마지막을 좋게 추억할수록 더 아플 것 같았기에

헤어지기 위해선 이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좋은 사람인데, 나에게 잘해줬는데 헤어진다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테니까.  


그렇게 그를 잊었다.

다시 되돌아가기엔 너무 아픈 사랑이었기에.

과거엔 잘해줬지만 시간이 갈수록 변해버린 그의 모습에 또다시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았다.



힘들고 아팠던 시간들이 지나 이제 그를 떠올려도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친구들에게도 웃으며 그와의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었고, 어느새 마음이 가뿐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잘 지내? 내가 미안했어.'


나는 이제 아무렇지 않아졌기에

미안했다는 그의 말에 공감이 되지 않았다.


'응 잘 지내지.'


'너 같은 여자 다신 만나지 못할 거야. 내가 정말 미안했어. 아프게 해서 정말 미안해.'


갑자기 머리가 뎅한 기분이 들었다.


그와 헤어지고 나는 그의 안 좋은 점들만 회상하며,

이래서 그와 다시 만나면 안 된다고 그를 밀어내려 애썼었다.


조금씩 올라오는 그와의 좋았던 기억에도 나에게 상처 줬던 기억들을 애써 끄집어내며,

잊으려 했다.

다시 만나기엔 자신이 없었다.

나도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걸 잘 알기에

더는 상처받지 않는 연애를 하고 싶었다.


'넌 참 좋은 여자였어. 너와 연애하면서 항상 행복했어.'


내가

헤어진 시간 동안

아파하며 힘들게 그를 잊으려 했다면,

그는 오히려 나의 좋은 점들을 추억하려 했다.


미안했다.


오랫동안 감정을 공유해왔던 사람에 대해

안 좋은 기억들만 간직하려 했음에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그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순간 이별이 흐지부지 될까 봐,

전처럼 되돌아갈까 봐, 참아야 했다.


나에 대해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동시에 과거 그와의 행복했던 시간이 떠올라 가슴이 찌릿찌릿 아팠다.


하지만, 그와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는 그가 나를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는 것마저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지.

'좋은 여자'로 추억하고 있는 지금 마무리하는 게 나에게도 그에게도

좋은 감정들을 남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알았으니까 연락하지 마. 카톡 차단할게.'


결국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뱉어야 했다.


이별은 참 아팠다.

생각보다 더디고, 묵직했다.


누군가 그랬던가.

헤어짐은 사랑했던 만큼

아프다고.


다 잊었다 생각했는데 미안하다는 그의 말 한마디에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내가 보낸 카톡에

그는 '정말 미안해'라고 보냈고, 나는 그걸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미안해, 나도 미안해, 나도 많이 미안해, 그리고

사랑했어.


너를 너무 사랑해서

기대하는 게 많았고, 그래서 서운했지만

너무 사랑했기에 그저 이해하려 했었어.

너와의 관계를 끝내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런데 나는 무수히 이해했던 너의 행동을

나의 한 번에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릴 줄은 몰랐어.

너의 연락엔 진심이 없어 보였고, 거기서 나는 무너져버렸던 거야.


아무도 없는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속으로 몇 번이고 그에게 말했다.


너도 참 좋은 사람이야, 너 같은 남자 다시 만날 순 없겠지?

너를 만나서 참 행복했어.


많이 좋아한 만큼

이별도 아름답게 하고 싶었던 나였다.


언제나
이 연애의 끝은 뭘까? 생각하곤 했다.

그와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참 아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별을 하더라도 너와는 웃으며 헤어지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참 미안했다.


너를 사랑한 만큼 미안한 게 많았다.


너에게 나는 어떻게 기억되어 있을까?

어떤 의미로 남겨져있을까?


나는 다시 너를 따뜻했던 의미로 남기려 한다.

부드러운 말들로 나를 설레게 하곤 했던 너를,

손짓 하나하나에도 조심스러워하며,

언젠가 깁스를 했던 나를 업어 매일 병원에 데려다줬던 너를

이별의 마지막 순간에 기억하고자 한다.


너는 나에게 참 아름다운 의미였어.


너는 언제나 나에게 진실된 사람이었어.


사랑을 가르쳐줘서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고맙고, 사랑했던 사람이여 이제 안녕.


이별을 앞둔 당신에게,

혹은 이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당신에게,

이별에 아픈 당신에게.


그 사람을 잊으려 억지로 안 좋은 기억들을 떠올리지 마세요.

좋았던 기억을 추억하며,

참 아름답고 향기로운 사람이 내게 머물렀음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이별을 맞이하세요.


사람과 사람의 첫 만남처럼

그 사람과 사람이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도 설레어야 합니다.


시작보다 중요한 '마무리'

그 날의 감정, 그 날의 체온.


이별의 마지막 순간에

당신의 향기를 간직하려 합니다.



마지막 순간에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던 건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그랬단 걸

그댄 알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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