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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Dec 02. 2016

지금 눈이 내린다고 말해주던 사람

언제나, 어디서든. 



 "지금 밖에 눈이 내려요."


눈이 얼핏 쌓인 사진과 함께 카톡이 왔다. 


나는 너의 연락을 확인하고, 바로 베란다로 나가 내리는 눈을 바라봤다. 

제법 굵은 눈들이 거리를 채웠다. 

나는 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눈의 감촉을 느꼈다. 

그래야 너에게 내 느낌을 생생히 전달할 수 있을테니.


눈송이가 하나 둘 손바닥 위에 내려앉았고, 동시에 녹아내렸다. 

손끝에는 적당한 물기가 생겼고 조금 빨개졌다. 

나는 그렇게 한 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다 이내 베란다 문을 닫았다. 


아직 손 끝에는 차가운 감촉이 남아있었다. 


"저도 방금 베란다에서 확인했어요. 첫눈인데 많이 내리네요."


그는 웃음 이모티콘을 두 어 개 보내곤 언제 한 번 카페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자고 했다. 


나는 그 말에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정확한 날짜를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언제 한 번'이라는 애매모호한 단어로 포장했음에도 

그와 마주 보고 앉아 차를 마신다는 생각에 도저히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는 별 의미 없이 뱉은 말일지 모르지만, 

그저 친한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해주고, 안부를 묻고 싶었던 건지 모르지만. 


나는 눈이 온다는 그의 말에 조금이나마 공감하고 싶어서 부리나케 베란다로 뛰어갔고,

언제 한 번 차를 마시자는 말에 어느새 함께 차를 마시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따뜻한 물로 오랫동안 씻고 나왔는데도 아직도 손에서 눈송이가 하나 둘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감촉이 나쁘지 않았다. 


순간 포슬포슬한 눈송이 사이로 너의 얼굴이 비쳤다. 

환하게 웃고 있는 너의 얼굴이 눈송이를 타고 내려와 내 손 위에 머물렀다. 


나는 다시 베란다로 나가 창밖으로 손을 길게 뻗었다. 


하지만 아무리 길게 뻗어도, 아무리 손을 쥐어도 눈송이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금방 녹아내릴 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한동안 잡히지 않는 눈송이를 그리워했다. 

손에 쥘 수 없고, 손에 쥐려고 다가가면 어느새 달아나버리는 눈송이가 마치 너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편하게 대해야만 유지되는 관계.

내 감정을 꾹꾹 누르고 바라봐야만 마주 볼 수 있는 관계.

설령 '내일이나 모레' 같이 밥 먹을래요?라고 다가가면 

움츠러드는 건 아닐지, 도망가버리는 건 아닐지.

조심스러워져 말을 아끼게 되는 관계. 


안절부절못하다 어느새 멈추고 마는 눈송이처럼

그렇게 너와도 아무렇지 않은 관계가 될 것 같은 두려운 마음에 

베란다를 서성이며 내리는 눈을 바라봤다. 



'지금 눈이 내려요.'


'지금 사랑이 내려요.'


'눈으로는 보이는데 분명 날 설레게 하는데 손을 뻗으면 녹아버리죠.'


'사랑과 눈은 참 닮은 게 많네요. 그리고 당신도 마찬가지로.'


'내리는 눈처럼 아름답고, 멈추면 아쉽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궁금하고 그리워지지만 

막상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혹여나 더럽혀지진 않을까, 사라지진 않을까. 항상 조심스러워지는 사람.'


'당신의 아무렇지 않은 연락에도 한 없이 기뻐하는 저는 당신이라는 동심 속에 살고 있는 어린아이인가 봐요.'



'지금 밖에 눈이 내려요. 내 사랑이 쌓여가요.' 


손이 아직 얼얼한 게 눈이 녹아내렸던 느낌이 남아있는 듯했다. 


녹아버려도 한동안 그때의 감촉이 남아있는 눈처럼 너 역시 스쳐가도,

아무렇지 않은 듯 마음을 다잡아도 


보고 싶고 그리운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있었다. 


손끝이 얼얼해지고, 조금 빨개지면서 

가슴이 다시 두근대기 시작했다. 


"그래요. 언제 한 번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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