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어디서든.
"지금 밖에 눈이 내려요."
눈이 얼핏 쌓인 사진과 함께 카톡이 왔다.
나는 너의 연락을 확인하고, 바로 베란다로 나가 내리는 눈을 바라봤다.
제법 굵은 눈들이 거리를 채웠다.
나는 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 눈의 감촉을 느꼈다.
그래야 너에게 내 느낌을 생생히 전달할 수 있을테니.
눈송이가 하나 둘 손바닥 위에 내려앉았고, 동시에 녹아내렸다.
손끝에는 적당한 물기가 생겼고 조금 빨개졌다.
나는 그렇게 한 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다 이내 베란다 문을 닫았다.
아직 손 끝에는 차가운 감촉이 남아있었다.
"저도 방금 베란다에서 확인했어요. 첫눈인데 많이 내리네요."
그는 웃음 이모티콘을 두 어 개 보내곤 언제 한 번 카페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자고 했다.
나는 그 말에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정확한 날짜를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언제 한 번'이라는 애매모호한 단어로 포장했음에도
그와 마주 보고 앉아 차를 마신다는 생각에 도저히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는 별 의미 없이 뱉은 말일지 모르지만,
그저 친한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해주고, 안부를 묻고 싶었던 건지 모르지만.
나는 눈이 온다는 그의 말에 조금이나마 공감하고 싶어서 부리나케 베란다로 뛰어갔고,
언제 한 번 차를 마시자는 말에 어느새 함께 차를 마시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따뜻한 물로 오랫동안 씻고 나왔는데도 아직도 손에서 눈송이가 하나 둘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감촉이 나쁘지 않았다.
순간 포슬포슬한 눈송이 사이로 너의 얼굴이 비쳤다.
환하게 웃고 있는 너의 얼굴이 눈송이를 타고 내려와 내 손 위에 머물렀다.
나는 다시 베란다로 나가 창밖으로 손을 길게 뻗었다.
하지만 아무리 길게 뻗어도, 아무리 손을 쥐어도 눈송이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금방 녹아내릴 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한동안 잡히지 않는 눈송이를 그리워했다.
손에 쥘 수 없고, 손에 쥐려고 다가가면 어느새 달아나버리는 눈송이가 마치 너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편하게 대해야만 유지되는 관계.
내 감정을 꾹꾹 누르고 바라봐야만 마주 볼 수 있는 관계.
설령 '내일이나 모레' 같이 밥 먹을래요?라고 다가가면
움츠러드는 건 아닐지, 도망가버리는 건 아닐지.
조심스러워져 말을 아끼게 되는 관계.
안절부절못하다 어느새 멈추고 마는 눈송이처럼
그렇게 너와도 아무렇지 않은 관계가 될 것 같은 두려운 마음에
베란다를 서성이며 내리는 눈을 바라봤다.
'지금 눈이 내려요.'
'지금 사랑이 내려요.'
'눈으로는 보이는데 분명 날 설레게 하는데 손을 뻗으면 녹아버리죠.'
'사랑과 눈은 참 닮은 게 많네요. 그리고 당신도 마찬가지로.'
'내리는 눈처럼 아름답고, 멈추면 아쉽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궁금하고 그리워지지만
막상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혹여나 더럽혀지진 않을까, 사라지진 않을까. 항상 조심스러워지는 사람.'
'당신의 아무렇지 않은 연락에도 한 없이 기뻐하는 저는 당신이라는 동심 속에 살고 있는 어린아이인가 봐요.'
'지금 밖에 눈이 내려요. 내 사랑이 쌓여가요.'
손이 아직 얼얼한 게 눈이 녹아내렸던 느낌이 남아있는 듯했다.
녹아버려도 한동안 그때의 감촉이 남아있는 눈처럼 너 역시 스쳐가도,
아무렇지 않은 듯 마음을 다잡아도
보고 싶고 그리운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있었다.
손끝이 얼얼해지고, 조금 빨개지면서
가슴이 다시 두근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