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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May 05. 2016

그건 사랑이었을까?

영화 '더리더'와 진정한 사랑에 관한 고찰

(더리더 줄거리)


'더리더'라는 영화가 있다.

23살에서 24살이 되는 시점에 나는 집에서 볼 만한 영화를 검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웹 포탈 상에서의 평점이 9에 근접한 영화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더리더'였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갈수록 진중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본래 나는 한 번 본 영화는 대체로 다시 보지 않는데, 더리더는 예외였다.

몇 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략 4번, 다시 봤다.

그만큼 나에게는 여운이 깊게 남아 살면서 본 영화 1위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10대였던 마이클과 30대의 한나는 서로에게 빠져 사랑을 하게 된다.

한나는 집안 사정상 학교를 다니지 못해 글씨를 몰랐다.

그래도 책을 읽고 싶은 마음에 매번 마이클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그들에겐 책을 읽어주고 사랑을 나누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러던 중 한나는 전차 도우미 일을 하다가 성실함을 인정받아 사무직으로 승진한다.

하지만 글씨를 몰라 사무직 일을 할 수 없으므로 다른 직장을 찾아 홀연히 떠난다.

물론 마이클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이클은 한동안 한나의 빈자리에 힘들어하고, 어느덧 시간은 흘러 마이클은 법대생이 되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단체로 법정을 참관하러 갔다가 피고인 신분의 한나를 발견하게 된다.

한나는 마이클을 만나기 전, 유태인 수용소인 아우슈비츠에서 일했었다.

한나의 죄목은 여자 포로들을 가둔 교회에서 불이 났을 때 교회 문을 열어서 포로들을 살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지 않고 방치하여 모두 사망하게 했다는 것이다.   

법정에서 한나의 태도는 할 말을 다 하고, 당당하며, 굉장히 솔직했다.


이런 그녀의 태도는 다른 피고인들로부터 반감을 샀고, 그들은 한나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기로 한다.

피고인들은 한나가 모든 보고서를 작성했고, 자신들은 그저 한나가 지시하는 데로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처음에 한나는 반박했다.

하지만 판사가 보고서 필적과 한나의 필적을 대조해보자는 제안을 하자 잠시 머뭇거리다가 인정했다.

자신이 보고서를 썼음을. 모든 것은 자신의 죄임을. 그리고 그녀는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한나는 글씨를 모르므로 실제론 한나가 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한나는 마이클에게조차 자신이 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숨겨왔지만, 마이클은 한나가 문맹임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므로 마이클이 법정에서 한나는 글을 모른다고 증언을 한다면, 한나의 죄는 없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이클은 가만히 있었다.

앉은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이번 편에는 한나의 수감 이후 상황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다.



마이클은 한나가 무기징역을 선고받자 눈물을 흘리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그토록 지키려고 했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그것을 지켜줄 만큼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마이클은 변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과거 자신이 살던 집에 가서 어린 시절 한나에게 읽어주었던 책을 보며 추억에 잠긴다.


그렇게 많은 책들을 일일이 녹음하여 녹음한 테이프와 카세트 플레이어를 감옥으로 보낸다.


한나에게 보내줄 책 내용을 녹음 하는 마이클







점자로 순서를 표시한다



테이프를 순서대로 포장하는 마이클



한나는 테이프 속에서의 마이클 목소리를 들으며 과거 추억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한나는 변하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갇혀 방 안에서만 지내던 한나가 감옥 내의 다른 사람들과도 대화를 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등 소통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마이클이 보내준 테이프를 들으며, 도서관에서 빌린 책으로 글공부를 한다.


 


그리고 결국 글을 깨우쳐 마이클에게 편지를 보낸다.




마이클이 녹음테이프를 보내면, 한나는 답장을 보내는 식으로 서로 소통하게 된다.

한나가 나이가 많아 출소를 할 때가 되자 교도소 직원은 마이클에게 연락하여 한나를 데려가라고 한다.

한나는 가족도 친구도 없이 연락하는 사람이라고는 마이 클 뿐이라며 출소 후 살 집과 직장을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마이클은 한나가 살 집을 꾸며놓고, 출소 일주일 전 한나를 만나러 간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났고, 당시의 상황에 대한 죄책감과 거리감으로 인해 전처럼 한나를 대하지는 못한다.

한나는 수감생활 동안 마이클의 테이프와 책을 보며 사랑을 키워왔지만, 사무적인 이야기만 하는 마이클에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출소 하루 전 자살하고 만다.

어쩌면 수감 생활 중 한나에겐 모든 것이었던 마이클.

갇혀있던 한나를 움직이고 변하게 만들었던 마이클이 현실에선 전과 같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마이클은 그 이후로도 한나의 유서 내용에 따라 한나가 모은 돈을 유태인 희생자에게 전달해준다.

그리고 자신의 딸을 한나의 묘비에 데려가 한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게 직접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마이클의 일생은 항상 한나로 가득 차 있었다.


이건 사랑이었을까?


나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법정 참관을 했을 당시, 마이클은 오랜만에 만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다시 재회하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을 내려놓고, 상대가 선택한 길을 묵묵히 응원한다.

받아들이기 힘들더라도 그것이 상대가 행복한 길이라면, 또 상대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처음에는 아무 욕심 없이 그저 좋다고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점점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늘어나고, 욕심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상대가 이렇게 변했으면 하고 요구사항 또한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세상에 바꿀 수 있는 건 오로지 자신뿐이다.

누군가에게 변했으면 좋겠다는 잣대를 들이대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한 사람이 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습관과 오랜 시간들을 모두 버리는 것이니까.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그 사람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 아닌 그 자체를 바라보고, 껴안는 것이다.



그렇게 마이클은 진정한 사랑을 한 셈이다.  

한나의 선택을 존중하고, 한나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눈물을 쏟아야 했다.

비록 자신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슬플지언정 그녀의 삶을 위해 감내한 것이다.

상대의 자존심을 지켜준다는 것, 정말 멋지지 않은가?


우리는 연인뿐만 아니라 사람 관계에서 서로의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실수에 대해 지적하지 않고, 상대의 게으름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

"네가 잘못해서 일이 이렇게 된 거야."

이런 대화를 하기보다는 그가 그렇게 행동해야 했던 이유와 상황에 대해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것이 싫다면, 그러한 습관을 가지지 않은 다른 사람을 만나면 될 일이다.

굳이 서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행동을 지적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

세상에 결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내가 선택한 사람이고 기왕 사랑하기로 했다면, 그의 삶들을 하나씩 어루만져주자.


나는 마이클의 사랑법에 대해 감동했다.

글을 못 읽는 한나를 위해 책 내용을 녹음해서 보내고, 테이프에도 숫자 대신 점을 찍어 순서를 표시했다.

차라리 책을 보내주면 훨씬 수월한 일인데 상대가 책을 읽지 못하니 시간과 노력을 쏟아 마음을 전달한 것이다.

정말 감동적이지 않은가?

사람들은 일반적인 표현보다 이렇게 자신을 배려하는 특별한 표현에 특히 감동한다.  


이렇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상대방에 따라 달라야 한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 상대의 취미와 살아온 방식들에 집중하여 어떤 방법이 더 효과적일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된 사람에게는 고향을 느낄 수 있도록 그 지역의 음식을 직접 만들어준다거나 그의 추억을 상기시킬 수 있는 물건을 선물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추억이 없는 사람에게는 자전거 뒤를 잡아준다거나 든든한 버팀목과 같은 존재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다.


영화 '청설'에서는 일반인인 두 남녀가 수화로 대화를 하는데 나에게는 그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남자는 도시락 가게의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어느 날 수영장으로 도시락 배달을 하러 가는데 한 여자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 여자가 다른 사람과 수화를 하고 있어서 남자는 그녀가 청각장애인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일반인이었고, 그녀의 언니가 청각장애인 수영선수여서 감독과 수화로 대화를 했던 것이다.

남자는 여자에게 수화로 말을 걸고, 여자 역시 남자가 수화를 하니 남자가 청각장애인이라고 착각한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위해 수화를 하고, 사소한 행동을 하더라도 상대의 기분을 먼저 생각한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수화로 대화를 하는데 서로가 일반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상대방의 배려에 사랑이 더 깊어지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렇게 사랑이란 마치 상대의 상황과 조건에 나를 맞춰가는 긴 여정인 것이다.   


나 역시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사람에게만 맞는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할 것이다.

그 또한 나의 삶을 사랑하며, 표현하기를.  


더리더에서의 마이클처럼, 상대의 자존심을 위해 나의 답답함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간지럽히듯 불어오는 봄바람처럼 가만가만, 사랑을 속삭이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그 역시 나의 있는 그대로를 바라봐주고 자신의 꾸밈없는 모습을 들려주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사소한 행동이나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진심이 느껴지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사랑은 내가 그로 하여금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마이클과 한나의 사랑이 끝까지 이뤄지지 않은 것이 더 완성도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사랑이란 본래 이렇게 아쉽고, 그리운 감정들이 남아있을 때 더 풍만해지는 법이다.

완성된 사랑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단점과 사랑의 상처, 아픔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평생에 걸쳐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아름다운 그림만을 그리게 된다.

아직 물들지 않았으므로.

재회하였다면, 과거의 추억과는 달리 실망할 일들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실 추억을 아름답게 간직하기 위해선 거리를 두는 것이 현명하다.

누군가 그랬던가. 첫사랑은 만나선 안 된다고.


우리는 이번 편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눈물을 흘려야 했던 한 소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때론 이해하기 힘든 상대의 삶들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것.

나와 다른 생각, 다른 삶을 살아온 상대의 관습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나 역시 물들어가는 것.

이렇게 소년의 방식은 진정한 사랑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신의 곁에 있는 그 사람도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먼저 표현해보세요.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당신이 곁에 있어서 항상 든든하다고.

언제나 당신 곁에 있을 테니, 당신 역시 나의 곁에서 버팀목이 되어달라고 속삭여보세요.

당신의 사랑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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