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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Feb 26. 2017

언제나 사랑을 하고 싶었다

지나온 시간 어귀마다


 난 언제나 사랑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동시에 도피하고 싶기도 했다.


감정에 지쳐서, 견딜 수 없이 힘들어서,

상처를 받아서, 가슴이 공허해져서,

관계가 오래 지속될까 불안해져서.


하지만 막상 혼자가 되었을 땐

또다시 누군가가 그리워졌다.


나의 기분을 남김없이 털어놓을 상대가 있었으면 했고,

콩깍지에 씌어 다른 사람들은 인정해주지 않는 것들을 서로 인정해주며,

서로 기댄 채 언제든 이야기를 쏟아낼 수 있는 사람이 그리웠다.


내가 어떤 말을 하든 묵묵히 들어주는 사람.

그의 감각들을 나에게 의존하고,

나 역시 내 감각을 온전히 의존할 수 있는 편한 사람이었으면 했다.


그런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했고,

나 역시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런 관계를 가질 수 있다면,

아무리 눅눅한 시간 속에 있어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소중한 관계가 존재한다면,

삶의 매 순간마다

더 깊이 공감하고, 사랑하며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무수히 많은 인연들과 스쳐가고

혹은 아프게 떨어지더라도

다시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지나온 인연을 가슴에 묻으며

관계 속에서 살아가려 했었다.


관계 안에서 살며

내가 얻은 것은

삶과 사랑과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법을 알게 된 것.

그리고 관계를 지키는 방법을 배운 것.


소중한 것은 소중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하며,

그만큼 소중하게 지킬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나 역시

소중한 사람으로

동화되기에.



살면서

이성 간의 사랑뿐 아니라

폭넓은 의미의 다양한 사람 관계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언제나 내 곁엔

금방 스쳐가고 또는 깊게 머물렀던 무수히 많은 인연이 있었다.


그 와중에는

참 소중하고 감사한 사람들도 있었다.


자신의 소중한 이야기를 꺼내 보여주고,

소중한 시간들을 공유하며,

나에게 참 '소중한 사람'이라며 이야기해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사람,

마음으로 그리워하며 소식조차 알 수 없는 사람.


뒤돌아보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그 자리마다 따뜻한 꽃이 피어있었다.


만나고 이내 다시 헤어지고 마는 인연들이 너무 쓰라려

차라리 만남 자체를 하지 않겠다 다짐하다가도


만남이 주는 설렘을 잊지 못해

또다시 사람을 바라보는 아이러니.


난 언제나 진실된 관계를 맺고 싶었다.


누군가의 친구로서, 누군가의 연인으로서, 누군가의 자식으로서, 누군가의 형제로서,

누군가의 조카로서, 누군가의 언니로서, 누군가의 동생으로서, 누군가의 지인으로서

늘 진실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기억했을 때

언뜻언뜻 좋은 냄새가 흘러나오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 나를 떠올렸을 때

옅은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딱 그 정도.

그 정도의 사람이 되려 했다.


그렇게 과거의 기억을 추억하고,

지금은 잘 지내는지 궁금해지는 사람.


문득, 문득

흘러가는 시간의 어귀에

오랫동안 마음을 간질이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지금은 만나지 않더라도,

소식을 알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가끔 내 생각이 날 때면

잔잔한 그리움으로 나를 생각하고

내가 잘 지내는지 내 소식이 궁금해져

한동안 나와의 기억을 다시 생각해볼 정도의 영향력을

지나온 사람들의 마음마다 피어내고 싶었다.


눈 앞에 보이지 않아도

그렇게 마음과 마음으로 안부를 묻고,

서로를 다독이며 함께 살아가고 싶었다.


우연히 떠오른 기억에

눈물이 한 방울 툭 터져

가슴이 아파 한동안 얼얼해져도

쉽사리 잊으려 하지 않고

다시 차곡차곡 소중하게 기억들을 보관하고 싶은 사람.


지나온 추억과 시간들이 소중해

뒷모습마저도 향긋한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고,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서

그런 사람으로 남겨지고 싶었다.

지금도, 향후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런 사람으로 남겨지기 위해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천천히 무르익는 차와 같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궁금해지고 옅은 향이 오래도록 남아

사람을 차분하게 해주는 사람.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고,

보듬어주고 싶은 사람.


함께 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작고, 아름다웠던 시간들을 마음속에

다시 한번 새겨낼 수 있는 사람.


새하얀 눈이 내릴 때

그 눈과 얽힌 가장 아름다운 기억들도 함께 내리곤 한다.

어릴 때 가족들과 눈사람을 만들었던 기억,

친구들과 눈싸움을 했던 기억,

연인과 눈밭에서 뒹굴었던 기억.

이렇게 아름다운 기억들이 모여 내리는 눈송이마다

그때의 장면들을 덧입은 채 아름답게 흩날린다.


마찬가지로 나에게 사람들도 그런 존재다.

맛있는 밥을 먹을 때 함께 밥을 먹으며 서로 사진을 찍어줬던 기억이 떠오르고

놀이기구를 탈 때면 바이킹 맨 뒷자리에서 서로의 손을 잡은 채 하늘 높이 올렸던 어렸을 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길을 걸을 때면 옆에서 도란도란 많은 이야기를 나눠 걷는 길이 심심하지 않았던 학창 시절의 기억들이,

하늘을 바라볼 때면 체육시간에 다 같이 운동장 바닥에 누워서 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던 초등학생 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오늘 하루도 보고 싶고, 그리운 감정들을 안고 살아가게 한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고,

그리운 기억이 많아

참 따뜻하고 든든해지는 시간 어귀에서

어렴풋이 반가운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인다.


아련하고, 정말 소중한 기억들.

지금 몸집의 반도 채 되지 않았던 어린아이들이 모여

재잘재잘 떠들었던 그때가 오늘도 그리워진다.


당신들에게 나도 그런 존재일까요?


함께했던 추억이 스칠 때면,

동시에 나의 존재가 그리워지고 궁금해지곤 하는지.

비가 내리는 날,

함께 파전을 먹으며 안부를 묻고 싶은 존재인지.


그렇게 어느새 과거의 서운하고, 속상했던 기억들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소중하고 보고 싶고 그리운 기억들이 남아

당신을 그저 아름답고 좋은 존재로 추억하게 되었다.


관계는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것이라 실수도 많고, 아쉬움도 많다.

시간이 지난 지금, 뒤를 돌아보니

지금의 나는 그렇게 스쳐왔던 무수한 관계들로 이뤄져 있었다.


보드게임을 좋아했던 그 사람 덕분에 나 역시 보드게임을 즐기게 되었고

기분이 울적할 때 휘파람을 불곤 한다는 그를 따라 하다 나 역시 휘파람을 즐겨 불게 되었다.

매운 음식을 좋아했던 친구들과 한때는 닭발을 자주 먹었으며,

닭발을 먹을 때 콩나물을 넣어 섞어 먹곤 했던 한 친구의 습관으로 인해

지금은 나 혼자 닭발을 먹어도 콩나물을 꼭 챙기는 편이다.


지금의 나의 어떤 습관과 취향들 중 일부는

과거의 인연들로부터 얻어지고 배웠던 것들이었다.


그렇게 무심코 어떤 행동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새어 나오는 그리움에

먹먹해져 버린 가슴을 안고

너를 그리워하다 천천히 너의 말들을 따라 해 본다.


라면 먹을 때 파를 넣어 먹는 나를 보며,

지금은 자주 볼 수 없는 학창 시절의 친구가 그리워지고

함께 파를 넣은 라면을 나눠먹었던 추억이 떠올라

작게 보고 싶다고 읊조려본다.

그렇게 하면, 그때의 너에게 닿을 수 있을 것 같아.

우리의 추억이 영원히 유지될 것 같아,

조심스럽게 너의 이름을 떠올려본다.  



연애를 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나를 보며,

진짜 내 모습을 알게 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말과 생각에 신기해하다

어느새 신기해하던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 흡수되고

그 사람 역시 나에게 흡수되는 걸 보며

관계란 참 소중한 거구나,

언제나 내 곁에 깊이 존재하는 거구나.

마음으로 느끼게 된다.



생각해보면,

난 언제나 사람들이 보고 싶었다.


나와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그 사람이,

나에게 은은한 표정을 지었던 그 사람이.


가끔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사무쳐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한다.



지나온 시간 어귀마다

사랑이 있었다.


지나온 시간 어귀마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다.


지나온 시간 어귀마다

그렇게 당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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