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연 Jan 28. 2017

사랑한다면, 기억하게 된다.

그 사람이 내게 스며들고 나 역시 그에게 스며드는 시간  


사랑하면, 기억하게 된다.


억지로 기억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내게 했던 말들과 그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

내게 스며들게 된다.


 상대가 좋아하는 음식은 뭔지, 상대가 싫어하는 건 뭔지,

상대가 화가 났을 땐 어떤 행동을 하는지, 상대가 잠드는 시간은 언젠지,

버킷리스트는 뭔지.


그 사람을 좋아할수록 그 사람에 대해 궁금한 것들이 많아진다.

아침엔 몇 시에 일어나는지, 아침밥은 먹는지, 주말엔 주로 뭘 하는지, 운동은 뭘 좋아하는지 등.


그 사람에게서 들은 것들은 그만큼 소중해서

소중하게 간직하게 된다.


"밥 먹고 뭐할까?"


하는 그녀의 물음에


"너 볼링 좋아한다며, 볼링 할래? 아니면 다트 하면 기분 좋아진다며, 다트 해도 되고."


그는 이렇게 답했고, 그녀는 자기가 흘려서 말한 것들도 기억해주는 그의 진심에 감동을 받았다.


그렇게 둘은 호감을 갖고 만나게 되었다.

그러다 그녀는 우연히 그의 핸드폰을 보게 되었다.


핸드폰 메모장에는 그녀가 이야기했던 것들이 꼼꼼히 정리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녀가 이야기 한 적 없는 그녀의 특성들도 적혀있었다.


ㅇㅇ이가 좋아하는 것 - 다트, 볼링, 해물, 고기, 민트 초코, 아이스초코, 핫초코, 고구마라떼 (생크림 추가)

ㅇㅇ이가 화났을 때 주로 하는 것 - 칵테일 한 잔 마시기 혹은 영화 감상


그녀는 그가 자신이 말한 것을 하나하나 기억하려 했음에 감동을 받았다.

카페에 갈 때면,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그녀의 행동을 관찰했던 그.

가만가만한 시선으로 그녀에 대한 것을 꼼꼼하게 정리하고,

그녀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던 그였다.


사랑이구나.


그녀는 생각했다.

사랑이었다.

흘려 이야기한 그녀의 말들에 집중하고, 기억하려 했고

섬세하게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로 이뤄진 데이트 코스를 짰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에 관한 것들을 새기게 된다.

그 사람의 관심사에 따라 내 행동 패턴을 움직이고,

오로지 그 사람만을 위해 생활방식을 수정한다.


밥을 먹고 와서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순대가 먹고 싶다는 그녀를 위해 아무렇지 않게 같이 먹어주는 것.


순댓국을 먹을 때 내장은 먹지 않는 그녀를 위해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주문 시 순댓국 하나에는 내장을 빼 달라고 이야기하는 것.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의 세세한 것들까지도 기억하게 된다.

그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싶어 져 여러 번 그가 했던 말을 되새기고,

메모하며 어느새 나 역시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게 된다.


좋아한다는 건

이렇게 누군가에게 물들어간다는 의미다.


나는 관심이 없던 것들도 그가 좋아해서 같이 하다 보니

나 역시 그 활동을 좋아하게 되는 것.


나는 먹어보지 않았던 음식도 그의 추천으로 함께 먹다 보니

나 또한 그 맛을 찾게 되는 것.


그 사람의 관심사를 기억하다 보니 어느새 동화되어 가는 것.

어느새 닮아버린 서로를 바라보며 또 한 번 사랑이 깊어지는 것.


사랑의 첫출발은 그 사람에 대해 알고, 기억하는 것.


언젠가 부부관계를 솔루션 해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관계 개선이 필요한 부부가 상담을 통해 각자 개선해야 할 부분이 뭔지 파악하여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칼국수 집에서 칼국수를 나눠 먹는 장면이 나왔다.

가운데 큰 냄비에 칼국수가 들어있었고, 각자 접시에 담아 먹는 식이었다.


그런데 아저씨가 아주머니에게 상의도 없이 칼국수에 다데기를 풀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일 평생 자기에게 상의 한 번 한 적이 없다며,

자기는 국물이 깔끔한 걸 좋아한다고 그렇게 얘기해도 항상 자기 멋대로 다데기를 푼다고 하소연했다.


아주머니가 국물에 다데기 푸는 걸 싫어한다고 계속 이야기했음에도

아저씨는 아무렇지 않게 다데기를 풀어오셨던 것이다.


결국 아주머니의 눈물로 그날 방송분이 마무리되었다.

아저씨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아무리 상대에게 관심이 없다한들

같이 밥을 먹는 상대의 취향을 묻고, 맞춰가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예의다.


상대도 다데기 푸는 것을 좋아한다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개인 접시에 풀어도 될 것을

상의도 없이 냄비에 풀면서 상대의 취향을 묵살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해왔음에 아주머니는 상처를 깊게 받으셨다.


프로가 끝나고 나는 한참 동안 가만히 앉아 골똘히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늘 본 프로그램 내용을 새기고,

아주머니의 심정을 기억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무리 내가 관심 없는 사람과 밥을 먹더라도

최소한 그 사람의 취향 정도는 물어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상대의 물 잔이 비어있는지 틈틈이 확인하여 물을 채워주고,

주문을 하기 전에는 먹지 못하는 음식이 있는지 먼저 물어보고,

배가 많이 고픈지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은 있는지 알아보며

밥 한 끼를 먹더라도 그 사람의 취향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구와 밥을 먹더라도 말이다.


심지어 처음 만난 사람과 밥을 먹더라도

그 사람의 취향에 관심을 갖고, 예의를 갖춰

적어도 '다음에 또 밥을 먹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하겠다.


상대가 나에 대해 진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항상 함께 있는 이의 입장에 서서 기억하려 하겠다.


누군가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을 때

참 감사한 마음이 든다.


언젠가 내가 흘려서 했던 말들을 기억해

아무렇지 않게 툭툭 너 이런 거 좋아하지 않냐며 행동으로 보여줄 때

그 순간부터 나 역시 그 사람에게 진심을 보여주고 싶어 진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그리고 너는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서로의 취향을 잘 알고 물들어가는 그런 관계를 맺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당신의 주변 사람들과 물들어가고, 기억하는 진실된 관계를 맺길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것이든 시간이 지나면 그리움이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