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되었던 시간
"한참 좋을 때네. 떨어져 있기 싫고 그렇지?"
누군가 내게 말했다.
"아직 얼마 안 되서 그렇게 좋은 지는 모르겠어요."
"에이 오히려 얼마 안됐을때가 더 좋은 거 아냐?"
그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
보고 싶고, 연락하고 싶어지지 않냐며.
그 사람 생각에 설레서 잠도 설치지 않냐며.
자기는 연애 초기엔 으레 그래왔었다고.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그가 보고 싶은지,
그의 연락이 기다려지는지,
그의 얼굴이 떠오르는지를 말이다.
그런데 생각나지 않았다.
그가 보고싶지 않았고, 그의 연락이 오지 않아도 딱히 기다려지지 않았다.
오면 오는 거고, 안 오면 바쁜 거겠지, 하는 느슨한 태도로 그를 바라봤다.
생각해보면 나는 사랑에 빠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었다.
내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에 두려워했고, 한 번에 타오르는 사랑을 했다가
언젠가 불씨만 남아버리게 되면 남아있는 상처가 너무 아플 것 같다는 생각에
늘 조심스럽고 신중한 태도로 사랑을 했다.
보고 싶어서 눈물이 흐르지도 않았다.
설레지도, 애절하지도 않았지만
그저 그가 풍기는 내음이 좋았고, 그가 머물렀던 시선이 따뜻하고 고마웠다.
참 차분하고 평온한 만남이었다.
쉽게 타오르는 사랑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언젠가는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상하게도 사랑을 할 때의 아름다운 감정보다
사랑 후에 남겨질 상처와 고달픔에 신경쓰였다.
추후의 상처와 고달픔이 보이지 않을 만큼 사랑했던 사람은 없었던 걸까.
천천히 그를 알아가고 그가 진실된 사람임이 확실할 때
그제야 조금씩 마음을 열어야 했던 나의 조심스러움에
사랑을 해도 고달프고, 늘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로 공허하곤 했다.
아, 그건 사랑이었구나.
혹은 그건 사랑이 아니었구나.
그렇게 비로소 사랑이 끝난 뒤에야 그 사랑이 가져다 준 의미가 뭐였는지 알 수 있었고,
뒤늦게 곪아버린 마음의 상처에 눈물이 터져나왔다.
그 사람에 대해 알면 알수록
아니다 싶은 것들이 보여 조금씩 밀어내었지만
생각해보면 아직 청춘이기에 무모한 사랑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의 끌림에 뜨거운 사랑을 하고,
오랫동안 그리워하는 사람이 한 명 쯤 있다면
참 괜찮은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바라봐야, 천천히 바라봐야 진중한 사랑이 되는 법이지만
생애 단 한 번 쯤은 기억에 남을 만한 사랑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해도
그저 좋으니까, 끌리니까.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