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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연 Mar 12. 2017

나는 당신이 회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 시간들이 배려였는지, 사랑이었는지. 


나는 당신이 회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첫 만남, 당신은 나에게 뭘 좋아하냐고 물었고 

나는 회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자 당신은 당신도 회를 좋아한다며, 먹으러 가자고 했다.


실제로 당신은 크게 쌈을 싸서 먹고, 

초장도 찍지 않은 회도 집어 먹었기에 

나는 정말 당신이 회를 좋아하는 줄만 알았다.


그 이후로도 당신은 내게 번번이 회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회를 포장해서 한강에 돗자리 깔고 먹자 했었고,

내가 힘들어 보일 때면, 맛있는 회를 먹으러 가자고 했었다.

그렇게 내 기분을 풀어줬고, 내 감정을 위해 노력했다.


나는 당신도 회를 좋아해서 먹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언젠가 당신 친구들을 만나 포장마차에 갔을 때 

그게 사실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당신 친구들은 나에게 보통 만나면 뭘 먹냐며, 친구가 못 먹는 게 몇 개 있잖아요, 했고.


나는 주로 회나 고기를 먹는다고, 당신이 회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자 다들 놀라며 당신은 해산물을 먹지 못한다고, 해산물 알레르기가 있다고 했다.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어제도 같이 회를 먹었다고 하자 그들은 당신의 등 피부를 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해산물 날 것을 먹으면, 바로 등에 두드러기가 번진다고 했다. 


순간 지금껏 그와 회를 먹었던 시간들이 파노라마로 흩어졌다. 

동시에 당신이 내게 주었던 것들이 '사랑'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 나는 그에게 솔직하게 물었다. 


친구들이 오빠 해산물 알레르기 있다던데.


그러자 당신은 당황하며, 제일 좋아하는 게 해산물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등에 손을 댔다.


여름이라 얇은 옷을 입고 있어서인지 옷 위로도 그의 두드러기들이 느껴졌다.


왜 말 안 했어.


나지막이 묻자 그는 

네가 좋아하는 거라면 함께 하고 싶었어, 하며 손을 잡았다.


데이트 내내 그는 자기주장을 펼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그저 내가 하자고 하면, 내가 좋아한다고 하면 묵묵히 따랐다.

나는 그가 우유부단하거나 주장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저 내가 좋아서 나와 하는 거라면 뭐든 좋았던 거라고, 

자기가 먼저 뭔가를 하자고 하면 내가 하기 싫어도 배려하는 상황이 생길까 봐

절대 먼저 얘기하지 않고 듣기만 했던 거라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알아가며 

내 시간을 기억하고 싶었다고. 


그의 말 위로 사랑이 쏟아졌고, 

나는 나의 무심함에 속상해졌다.


티셔츠 위에 손을 올려보기만 해도 알았을 것을, 

나는 사랑을 받기만 할 줄 알았구나.

많이 미안해졌다. 

그리고 그 마음을 담아 그를 포옹했다. 


그날 밤, 

밤하늘에 별 하나가 반짝였다.


어쩌면, 어두운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건 고작 작은 별 하나 일지도 모른다.


내 삶에 들어와 힘든 것도 묵묵히 견뎌주며, 

내 시간을 빛내준 당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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