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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랍비 Sep 01. 2024

특수의 비법 레시피-1

홀리 몰리 과카몰리

요즘 아내와 나는 ‘과카몰리(Guacamole)’에 빠져있다.

과카몰리란 으깬 아보카도에 토마토, 양파, 레몬즙, 소금, 후추를 넣어 만드는 멕시코 소스인데, 부드럽고 고소하며 산뜻하여 짭짤한 나초와 함께 먹으면 가히 천상의 맛이다.

특히나 아내는 음식에 빠지면 그 욕구가 충족될 때까지 계속 한 가지 음식만 파는데, 오죽 빠졌으면 한때 과카몰리를 담는 그릇에 ‘홀리 몰리 과카몰리(Holy moly Guacamole)’라고 적어 놓기도 했다.

*과카몰리: 스페인어로 읽는 법이나 표기법으로는 ‘과카몰레’가 맞으나 미국으로 넘어가면서부터 과카몰리도 인정한다.
*홀리몰리 과카몰리: MZ세대 신조어에 취약한 나는 이 말을 아내가 만든 말인 줄 알았으나 이는 MZ세대가 사용하는 ‘헐 대박’ 또는 ‘헐 미쳤다’ 정도의 뜻을 가진 신조어다. 


이렇게 우리 내외는 과카몰리를 좋아하지만, 사실 이것을 처음 안 것은 얼마 안 됐다.

내가 임용에 합격하고 같은 학교로 발령받은 동료 교사가 있다.

보건교사 Y와 사서교사 D인데, 이 두 사람의 캐릭터가 워낙 독특하고 서로 수용 범위도 넓은지라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고 있다.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은 발령동기다 보니 서로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의지하며 가끔은 서로의 집에 초대하기도 했다.

당시 나도 두 사람을 내가 자취하던 투룸과 원룸 사이의 애매한 ‘1.5룸’에 초대했었는데, 그때 보건교사 Y가 만들어준 음식이 바로 과카몰리다.

과카몰리를 예찬하던 Y는 남의 집에서 처음 요리하는지 그 결과물을 아주 대차게 말아먹었다.


“아니, 저번에 했을 때는 정말 맛있었는데. 이상하네. 미안.”

“아냐. 그럴 수도 있지.”

“맞아. 괜찮아. 충분히 맛있어.”


나와 D는 Y를 위로했지만 끝내 그는 속상한 마음으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Y는 나에게 한없이 새콤하게 망한 과카몰리 한 통을 선물로 줬다.

나는 속으로 이게 맞는 건지 생각해 봤지만, 어쨌든 우리 집에서 만들었고 나름 먹을만하니 대충 넘겼다.

그렇게 두 사람이 돌아간 후 인터넷에 과카몰리 만드는 방법을 검색하여 보니, 우리가 만들었던 과카몰리와 다른 점을 올린 블로그가 보였다.


바로 그 다른 점은 ‘맛소금’이다.


‘그래. 이거다!’


나는 당장 마트에 가서 맛소금을 사 과카몰리에 뿌렸고, 후추도 더 박박 넣었다.

그러고는 대기업의 그 찬란하고 위대한 업적에 그만 무릎 꿇고 말았다.


이거였다. 이 맛이다! 보건교사 Y는 이 맛을 추구했던 거다.


당시 내 집에는 맛소금이 없었는데, 이유인즉슨 나름대로 양식 조리 기능사 자격증 공부를 했던 사람으로서의 자긍심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나는 자긍심 따윈 버렸다.

그저 맛소금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숭배심만 넘쳐흘렀다.

그날 이후 맛소금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한 것 같다.


“날 추앙해요.”


그날부터 집에 항상 맛소금을 들여놓던 나는, 세상에 다신 없을 시크한 표정으로 맛소금 한 줌을 뿌리며 이렇게 대답한다.


“어, 나 너 지금 추앙하는 거야.”




<특수의 과카몰리 비법 레시피>


-재료: 아보카도 2개, 토마토 1개, 양파 반 개, 레몬이나 라임(없다면 시판 레몬즙), ‘맛’ 소금, 후추(통후추나 순 후추) 

1. 아보카도는 까맣게 잘 익어서 만져봤을 때, 살짝 과육이 물렁한 것을 고른다.

2. 아보카도를 반으로 갈라 손잡이 쪽 칼끝으로 씨앗을 제거하고 숟가락으로 껍질을 벗긴다.

3. 아보카도를 대충 잘라 볼에 넣고 잘 으깬다.

4. 토마토는 잘라서 씨를 제거한 후 다진다.

5. 양파도 잘게 다진다.

(너무 잘게 다지면 식감이 없으니 취향껏 다진다)

6. 맛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다.

(통후추와 순 후추 모두 넣는 걸 추천한다)

7. 레몬즙이나 라임즙으로 산미를 취향껏 가미한다.

(개인적으로 라임을 더 선호하는 편이며, 아보카도 두 개당 라임 반 개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8. 빵이나 나초에 발라 먹는다. 


대기업은 믿음이다.

<전 동료 교사 P에게 대접한 치차론, 과카몰리와 찍어먹으면 정말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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