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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랍비 Aug 31. 2024

특수한 기상소리

아침잠 없는 잠 예찬론자의 특수한 헛소리

인간에게 잠이란 크나큰 선물이다.

잠을 잠으로 인해 삶의 동력을 얻고 적절한 활기를 누린다.

또한 어떤 이들은 잠을 자다가 번뜩이는 생각을 고안하기도 하며,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만 꿈을 조종하거나 꿈을 통해 미래를 예지하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는 그 꿈을 자각몽, 혹은 예지몽이나 태몽 등의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가.

잠은 인간의 생체 리듬의 한 주기를 담당하고 있으며 끊임없는 화학 작용의 결과이고 열심히 일한 자들을 위한 꿀 같은 선물이다.

그리고 이렇게 잠에 관해 끊임없이 고찰하는 나는 ‘잠 예찬론자’이다.

하지만 잠 예찬론자인 나에게는 불행히도 아침잠이 별로 없다.

세상에나, 아무리 늦게 자건 일찍 자건 아침 6시에서 7시 사이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모름지기 내 말에 공감이 갈 것이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럴 것으로 예측한다.

출근 시간은 8시 30분 혹은 40분까지인데, 아이들이 우리의 출근 시간보다 일찍 도착할 때가 종종 있다.

아마 그 아이의 부모가 이른 시간에 출근하는 까닭으로 그러리라 추측한다.

초등학교에서는 보안을 위해 퇴근 시 교실 문을 모두 잠그고 퇴근하기에 우리의 이 부지런한 아이들은 하릴없이 교실 밖 복도에서 기다릴 때가 있다.

만약 그런 아이가 있다고 들으면 교사들은 아침에 침대에 누워 있다가도 죄책감에 벌떡 일어나곤 한다.


뭐, 지금은 돌봄 시간을 운영하거나 도서관을 개방하는 등의 방법으로 일찍 온 아이들을 먼저 봐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학교가 대다수다.

그렇기에 ‘일찍 오는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은 잠 예찬론자인 나에게 같잖은 변명거리에 불과하다.

내가 그 아이들로 핑계를 대면 아침잠은 나에게 코웃음 치며 비웃을 거다.


[에이 거짓말. 넌 특수교사잖아. 아이들은 각자 통합반으로 등교한 뒤에 수업 시간이 되어서야 특수반에 내려오는걸.] 


그래. 그렇다.

아침잠이 나를 비웃으며 하는 그 말이 지극히 옳다.

나에게 아침 일찍 와서 반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을 학생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나는 아침잠이 없는 걸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휴일이면 아침 9시까지 누워 있다가 10시쯤 되어 눈을 비비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잠들어 12시쯤 깨어날 수 없는 걸까?


나는 매우 게으르고 싶다.


무지막지한 게으름을 피우며 휴일 낮 늦게 일어나는 ‘게으름뱅이 소’가 되어보고 싶다.

아!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아침잠이 없는 이유로 매우 유력한 가설이 방금 떠올랐다.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 하면 네 빈곤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궁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잠 6:9~11-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몇몇은 갑자기 성경의 한 구절이 나와 당황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위 잠언의 말씀은 자다가도 뜬금없이 생각나는 문구 중의 하나이다.

이 성경 말씀이 무슨 이유에선가 내 머릿속에 한 번 떠오르면, 뇌리에 박혀 잊히질 않고 계속 되뇌게 된다.

그 이유는 바로 일종의 ‘불연속 시행훈련(Discrete Trial Trainig/DTT)’이란 것 때문이다.

*불연속 시행훈련: 특정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 구조화된 환경에서 응용행동분석 원리(ABA)를 집중적으로 적용하여 습득하게 하는 훈련/비연속 시행훈련이라고도 하며 ‘주의집중-변별자극제시-반응-피드백-시행 간 간격’의 단계를 거친다. 


‘불연속 시행훈련(이하 DTT)’이란 목표 행동을 산출할 수 있도록 명확한 지시나 자극을 제시하여 훈련자가 그 행동을 산출하게 하는 훈련을 말한다.

DTT는 설계되고 통제된 상황에서 아동의 주의를 끄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첫째, ‘주의집중의 단계’다.

만약 DTT로 아동에게 ‘APPLE’이라는 단어의 뜻을 가르치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들고 있거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00아!” 


그렇게 아동의 주의를 끌었다면 둘째, ‘변별자극 제시의 단계’로 돌입한다.

변별(식별)자극이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강화(좋아하는 과자나 칭찬)를 받게 될 단서를 의미한다.

위의 예로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APPLE이라는 단어 카드를 조용히 들고 아이에게 묻는 것이다.

 

“이 뜻이 뭐지?”


다음으로 셋째, ‘반응의 단계’를 거친다.

반응이란 단어 뜻 그대로 아동이 변별자극에 대해 반응한다는 것이다.

위의 예시로 APPLE이라는 단어를 물었다면 그다음 단계로 아동이 반응해야 한다.

아마 아이는 정답이든 아니든 간에 질문에 대한 답을 할 것이다.


“사과요/귤이요.”


아동의 반응을 본 DTT시행자는 넷째, ‘피드백 단계’로 돌입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는 피드백(Feedback)의 뜻 그대로 아동의 반응에 적절한 반응을 되돌려 주어야 한다.

만약 사과라고 말했으면 칭찬과 좋아하는 과자를 주고, 귤이라고 대답했으면 ‘아니야 다시 생각해 볼까?’라는 등의 대답을 들려준다.

아마 정답을 말해 칭찬이나 과자를 받은 아이는 낱말카드를 보고 정답을 맞히는 행동이 증가할 것이다.

단, 잘못 말한 후 다시 정정하여 정답을 말했을 때는 강화하지 않는다.


DTT시행자는 단순 일회성으로 이 훈련을 끝내면 안 된다.

DTT의 꽃이라 불리는 마지막 단계인 ‘시행 간 간격’을 지속해야 한다.

이는 첫 번째에서 네 번째까지의 단계를 시시때때로 시행하는 단계인데, 이렇게 계속 훈련한다면 아동은 APPLE의 뜻을 아는 것은 물론이요.

낱말카드를 보고 그 뜻을 말하는, ‘지시에 즉각 반응하는 행동’까지 습득하게 된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DTT가 어떻게 나에게 성경 구절을 집어넣었을까?

나의 부모님이 DTT를 알고 나에게 따로 훈련을 시켰을까?

단연코 절대 아니다. 아마 내 부모님은 저도 모르게 DTT를 적용한 것 같다.

초, 중, 고 시절의 매일 아침, 커튼이 걷히는 소리와 함께 군인이셨던 아버지가 절도 있는 목소리로 크게 외치셨다.


“기상!”


이건 DTT에서 첫째, ‘주의집중 단계’에 해당한다.

하지만 단숨에 깨어날 내가 아니다. 창문이 열려 찬바람이 들어오고 부엌에서 달그락달그락하는 아침 식사 준비 소리가 들려와도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며 끝끝내 눈을 뜨지 못한다.

물론, 사실 눈도 뜰 수 있고 정신도 말짱하다.

그저 일어나기 싫을 뿐이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지금껏 듣지 못했던 ‘특수한 기상 소리’가 나를 깨웠다.


교회의 전도사였던 나의 어머니가 내 방으로 다가와 한껏 외치는 소리. 이것이 바로 둘째, ‘변별자극 제시의 단계’다.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 하면 네 빈곤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궁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잠언 6장 9절에서 11절 말씀이야! 너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래? 어?”


그렇게 말한 엄마는 안 그래도 추워서 뒤집어쓴 이불을 훌러덩 가져갔다.


이때 나는 셋째, ‘반응의 단계’를 거친다.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거나.

두 가지 반응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솔직히 말하면 두 가지 반응은 아니다.

세계 모든 자녀들이 그렇듯, 가정의 평화를 위해 무조건 일어나는 반응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일어나면 어머니가 말한다.


“나와서 밥 먹어.”


이것이 바로 넷째, ‘피드백 단계’이다.

비몽사몽에다가 억지로 일어나 항상 짜증과 불만이 가득했었지만, 늘 그렇듯 아침밥은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그렇게 일어나는 행동에 맛있는 아침밥으로 강화를 받게 된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 혼자 살기까지 계속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마지막 단계인 ‘시행 간 간격’이다.

그렇게 나는 잠 예찬론자이면서도 아침잠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더 정확히 말하자면 DTT로 일찍 일어나는 행동을 습득하였으며 잠언 6장 9절에서 11절 말씀을 외우게 되었다.


물론 나의 부모님이 정확하게 DTT를 시행한 건 아니다.

사실 그저 나이가 들어서 아침잠이 없다는 걸 부정하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며, 그저 흥미를 위해 억지로 끼워 맞춘 식에 불과하기도 하다.

실제로 DTT는 ‘자극 의존성’이란 것을 키우는데, 이 말은 자극이 있을 때만 반응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내 ‘특수한 기상 소리’를 예로 들자면,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는 행동은 나의 어머니가 성경 구절을 읊는 자극을 주어야만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DTT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이런 DTT의 방법은 즉각 반응이 많이 필요한 군대에서 흔히 쓰인다.

그러니 사실 DTT 때문에 내가 아침잠이 없다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아무튼, 이번 주 토요일은 제발 9시까지만 이라도 늦잠을 자고 싶다.


늦잠을 잘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그래도 꾸준한 부모님 덕에 부지런히 집밥을 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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