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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랍비 Aug 29. 2024

특수한 인연

먼저 연락한 후 단답과 함께 사라진 아이

아내와 결혼할 적엔 결혼을 준비하는 이라면 모두 그렇듯, 메신저에 한껏 멋 부린 프로필 사진을 올렸다.

그래도 사진 속의 내가 아쉽기는 매한가지였다.

열심히 다이어트한다며 먹는 양도 줄이고 운동도 했지만, 몇 번의 위경련으로 살 빼는 걸 포기했었다.


바로 코로나19로 받은 스트레스 때문이다.


서로 가진 것이 얼마 없었지만 결혼할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던 그때, 코로나19가 발병하여 전대미문의 ‘범유행 전염병(Pandemic:팬데믹)’ 사태가 일어났다.

살면서 내가 겪었던 일이 즉각 역사책에 기록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부모님 세대가 언급하거나 기록으로만 봤던 ‘국내 신혼여행’을 다녀왔으며, 그 유명한 ‘마스크 하객’을 받았었다.

이런 탓에 스트레스가 막심하여 결국 결혼 준비를 하던 도중 위경련이 일어났다.

하지만 꼭 안 좋은 일만 있던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시기 때의 결혼으로 오랜 시간 잊고 있었던 재미있는 인연과 연락 닿기도 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T와 J 교수님에게 속아 일했던 특수교육지원센터를 통해 만난 학생이다.

게다가 이 학생은 내가 직접 맡았던 학생도 아니고 ‘방학중학교’라는 프로그램에서 약 한 달 동안만 맡았던 학생이었다.

나는 너무 오랜만이기도 하고 갑자기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여 답장하길 망설였다.

혹시 코로나 시국인지라 할 게 없어서 메신저 프로필이나 돌려보다가 내가 결혼한다는 걸 발견한 건가?

아니면 내가 교사란 걸 알고 학생을 이용한 막장 사기극은 아니겠지?

너무 갑작스러워서 학생을 의심하는 생각과 이로 인해 내가 음해당할 거란 상상이 가득해졌다.

하지만 그래도 학생이 스승에게 먼저 안부를 물었으니, 용기 내어 그 기특한 마음에 답장해 주자 마음먹었다.

*방학중학교: 방학 중에 특수교육대상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캠프 형식의 프로그램


[어, 그래. 희진(가명)이구나? 잘 지냈니?]

[네]


이 학생은 나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내놓고 겨우 ‘네’라는 짤막한 답장으로 메시지를 끝냈다.

설마 이게 끝이라고?

메시지를 의심하다 용기 냈던 나는 이런 결말은 생각지 못했기에 허탈했다.  

그와 동시에 못한지라 웃기기도 하고 매우 귀했다.

아무래도 나는 ‘특수학교’나 ‘특수학급’보다 ‘순회교육’ 경력이 더 긴지라 나에게 먼저 연락할 수 있는 제자가 없었다.

나를 거친 대부분의 특수교육대상자는 말을 못 했고 몸도 제대로 못 가눴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특수학교나 특수학급에 대해서는 알아도 ‘순회교육’에 관한 이야기는 처음 듣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순회교육’이란 심한 장애 정도와 건강 등의 이유로 인해 학교나 학급에 통학하기 어려워 가정이나 시설에 거주하며, 교사가 그곳으로 직접 방문하여 교육하는 시스템을 일컫는다.


이러니 나를 거친 학생 대부분이 다 중중도의 장애 학생이다.

그러나 나에게 먼저 연락한 희진이라는 학생만큼은 순회교육 대상 학생이 아니기에 달랐다.

약 9년이라는 경력 중 5년을 순회교사로 임했으니, 내 상황에 희진이라는 학생처럼 연락해 줘도 감지덕지라며 감사했다.

그리고 좀처럼 연락이 없다가 며칠 뒤에 다시 메시지가 왔다.


[선생님 결혼해요?]


나는 이 상황이 웃기기도 하고 그 학생의 심리가 궁금하기도 하여 답장을 했다.


[응. 그래. 선생님 결혼하기로 했어.]

[언제 어디서해요?]

설마 오는 건 아니겠지?

[0월 0일에 안양에서 해.]

[축하해요]


구체적으로 안 물어봐서 다행이다.

온다고 했으면 정말 어색할 뻔했다.


[고마워. 희진아^^]

[네]


이 학생은 또 ‘네’라는 메시지를 끝으로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나는 이렇게 끝내는 게 맞는 건가 싶어서 한참 메시지를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했다.

하지만 결국 그 학생에게 다른 메시지를 보내진 않았다.


고맙기도 하면서 어이가 없고 웃음이 나면서도 슬프다.

당시 경력이 약 4년 정도로 짧을 때다.

그러하니 중학교 교사를 하던 지인의 결혼식에 제자들이 나와 축가 하던 것과 비교하며, 웃기지만 조금 섭섭한 양가감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차라리 결혼식 온다고 했으면 더 잘해줬을 텐데….

그래도 이 연락을 계기로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이 좀 더 다채롭게 변했는지 모른다.




가수 ‘폴킴’의 노래 중에 ‘우리 만남이’라는 곡이 있다. 이 곡의 가사가 다음과 같다.



우리 만남이 특별하진 않았지
이 나이에 뭐 있겠어
즐거웠다. 또 만나자. 어 연락해. 말해도
한동안 또 안 볼 사이
그리울 거야



인연이라는 것이 딱 이 노래 가사와 같지 않은가.

반가운 사람, 고마운 사람, 즐거운 사람 모두 결국 헤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한동안 못 보며 지내다가도 또다시 만나면 반갑고 즐거우며 고맙다.

이러한 인연이 반복되어 익숙해지고 무뎌져서 결국 ‘편안함’의 관계가 되는 것이 아닐까.

이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다른 이에게 돌고 돌아 걷다가도 다시금 앉아 쉴 수 있는 그런 편안한 공원 의자같이 살다 가야지 싶다.


그렇게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나 내 생일이 되었을 때, 희진이라는 학생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쌤 안녕하세요 저희진이에요 잘지내있지요? 생신축하해요^^ 동생결혼안해요?]


제법 웃기지만, 갑자기 뜬금없고 맥락도 없다.

게다가 온갖 띄어쓰기와 높임 표현을 무시하고 보내니, 교사 특유의 직업병이 도지려고 한다.

하지만 무시하고 애써 고마운 생각만 하도록 했다.


[희진아 고마워. 응. 동생은 아직 생각이 없나 봐.]

[뭐라고지내요?]


‘뭐라고지내요?’는 무슨 말이었을까?

동생이 왜 결혼하지 않냐고 물어보는 말일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번뜩이는 내 추리력에 감탄한다.

아, 쿼티 키보드에서는 'ㄹ'과 'ㅎ'이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ㅎ'을 'ㄹ'로 잘못 찍어 보낸 것이구나. ‘뭐라고지내요?’가 아니라 ‘뭐 하고 지내세요?’ 구나!

나는 나 자신에게 감탄하며 답장을 보냈다.


[선생님은 늘 똑같지. 학교 갔다가 퇴근하고 운동하고. 뭐, 희진이는 뭐 하니? 일하고 있어?]

[네. 일다녀요]

[우와 대단하네. 열심히 다니고. 직장 동료분들과 잘 지내고 있는 거지?]

[힘지요. 스트레스받고요. 짜증나고요.]


대충 힘들다는 내용인 것 같았다.

그에 나는 보통의 평범하고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그렇구나. 그래도 힘내서 다녀보렴. 선생님도 사실 학교 다니기 힘들어. 그래도 벌써 7년이나 하고 있네.]

[잘못되면 혼나요? 몇시출근해요?]


아마 직장에서 혼났던 적이 있나 보다.

나는 이 학생에게 모두 비슷한 일로 힘들지만 다들 이겨내며 살고 있단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럼 선생님들도 잘못하면 혼나지. 출근은 8시 반까지 해.]

[일잘못하면 혼나면 집에서 기분 잃어버야돼요.]

[그래도 힘내렴. 파이팅이야!]

[네]


그렇게 또 어색한 끝맺음으로 평범하지만, 소중한 인연이 맞닿았다 또 헤어졌다.

몇 년 뒤에 다시 연락이 올지 모르지만, 이렇게 주고받은 대화가 그리울지 모르겠다.

<늘 한 자리에서 배를 기다리는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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