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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랍비 Aug 30. 2024

어쩌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어쩌다 얻은 깨달음

복싱을 배운 지 벌써 5개월이 넘었다.

원래 재미 붙인 일을 꾸준히 하는 편이기도 하고, 이왕 하는 거면 열심히 하자는 마음이 커서 자잘한 부상이 몇 번 있었음에도 줄곧 복싱장에 다녔다.


사실 나는 본래 투기 관련 운동에 흥미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복싱에 흥미를 붙이게 된 계기는 군대를 다녀온 한 동생 덕분이다.

우연한 연락으로 동생과 같이 복싱장에 가게 되었고 첫날 글러브를 끼고 미트를 치자 ‘짝!’ 하는 소리와 함께 온몸에 전율이 스쳤다.


아, 이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타격감’이라는 것이구나.


글러브 너머로 느껴지는 그 진동은 내 가슴에 커다란 울림을 주었고, 고막을 경쾌하게 울리던 그 소리는 나에게 정체 모를 짜릿함을 주었다.

그렇게 생애 첫 복싱을 하고 한동안 잠에 들기 전, 원투 자세가 머리에 저절로 그려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는 어쩌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깨닫게 되었다.


‘아, 이래서 아이들이 그렇게 선생님들을 때리는구나!’


약 2년 전, 나는 특수학교에서 근무했다.

모름지기 특수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일반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보다 장애 정도가 심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장애가 중도에 중복인 학생들도 많고 그에 따라 ‘자폐성 장애’와 더불어 ‘지적 장애’나 ‘지체 장애’ 등의 여러 가지 복합적인 장애를 지닌 아이들이 많이 온다.

이런 아이들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상동행동(stereotyped behavior)’이다.

상동행동이란 반복적으로 되풀이하는 의미를 가지지 않는 행동을 말하는데, 주로 자폐성 장애 아동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상동행동을 보인다고 모두 자폐성 장애로 볼 수 없다.

오해할 수 있으니 말해두지만, 영유아의 발달과정에 있어 무의식의 목적성 없는 놀이의 형태로 상동행동이 종종 나타날 수도 있다.

이는 감각 운동기관과 뇌신경의 자연스러운 발달 현상이기도 하다.


뭐, 아무튼. 요즘 학생이 교사를 때리며 욕을 하는 등의 안타까운 상황이 많이 나온다.

아마 윗글에서 아이들이 선생님을 때린다고 했을 때, 많이 놀란 사람이 몇몇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예전부터. 아니, 내가 일하기 전의 전부터 특수교사들이 아이들에게 맞는 건 일상다반사였다.


의도치 않게 부딪히는 것은 기본이요.

갑자기 폭력 성향을 나타내는 아이들에게 꼬집히거나 주먹에 맞고 발로 차이는 등의 일도 잦다.

그럼에도 크게 이슈가 되지 않는 이유는 특수교사 대부분이 이러한 일을 그냥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기 때문이다.

물론 맞으면 아프고 화가 나기도 하며 울컥 억울함이 솟아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냥 참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행동에 특별한 의미가 없는 ‘상동행동’이기 때문일 때가 다반수다.


상동행동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고치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감각 추구’이다.

인간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각성 상태(awareness)’를 유지하려고 한다.

이는 태생적인 것으로 각성 수준이 낮으면 일이 안 되고 집중할 수 없으며 주변의 상황이나 현상을 인지할 수 없다.

우리가 일하기 전에 ‘아 카페인 당긴다.’ 혹은 ‘당 떨어지네.’라며 커피나 초콜릿을 섭취하는 것이 바로 각성 상태를 추구하기 위함이다.

이토록 인간은 태생적으로 각성 상태를 유지하려 하는데, 이는 장애 아동들 또한 마찬가지다.


비장애인은 각성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본인만의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들은 각성을 위해 운동을 하기도 하고 음료나 당류를 섭취하기도 한다.

이는 방법과 양이나 시간만 적당하다면 각성 상태도 유지하고 포만감이나 건강을 유지하기도 하는 등 윈윈(winwin) 상태로 발전한다.

하지만 장애 아동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본인에게 적당한 각성 방법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좋아하는 감각을 추구하여 각성 상태에 들어가려고 한다.


지금까지 봐 왔던 아동들을 예로 들면, 팔을 풍차처럼 휘둘러 원심력으로 팔에 피가 쏠리는 걸 즐기는 아이가 있었다.

또한 쉴 틈 없이 점프하여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을 즐기는 아이도 있었으며, 손바닥이 얼얼한 느낌을 좋아하여 시도 때도 없이 손뼉 치던 아이도 있었다.

나에게 그 아이들은 왜 그런 느낌을 좋아하나요?라고 묻는다면, 나도 잘 모른다는 대답밖에 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민트초코 맛을 좋아하는 반면, 그와 다른 사람은 극도로 혐오한다.

또한 어떤 이는 평양냉면이 맛있다며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는데, 다른 이는 소를 씻은 맛이라고도 평하기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장애 아동들도 다 ‘개인차’가 있으며 그들이 왜 그런 느낌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마도 ‘그냥’이라는 단어가 알맞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다시 돌아와 각성 상태와 감각 추구, 그리고 폭력 행동에 대한 상관을 설명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일전의 예시로 각성상태 유지를 위해 손바닥의 자극을 추구하는 아동의 경우, 주로 손바닥으로 책상이나 벽을 치다가도 문득 다른 사람의 팔이나 등짝을 치기도 한다.

이를 아이의 관점에서 보자면, 교사가 밉다거나 싫은 것이 아니라 그냥 있으니 등을 때려볼 때의 느낌은 어떤가 하여 때려본 것이다.

그러한 사정을 알고 있으니, 대부분의 특수교사는 맞더라고 그냥 참고 그러면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물론 아프고 울화가 치민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러한 아이들 대부분이 팔을 채찍처럼 휘둘러 ‘짝!’ 소리가 나게끔 스윙한다.


폭력적 행동에 대해 이렇게 일차원적으로만 설명하면, 몇몇 특수교사들은 요약과 미화가 심하다고 말할 게 뻔하다.

비장애인들에 화가 날 때 주먹을 휘두르는 것처럼 장애 아동들도 반항적 부분이나 단순 화가 났다는 표현으로의 폭력 행동을 할 때도 많다.

이렇듯 인간의 행동 형성을 단순히 감각적인 부분만으로 이해하는 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볼 수 있다.

폭력적 행동의 형성 이유에는 생리적, 심리적, 환경적 요인을 모두 살펴보아야 한다.

이는 뇌신경의 호르몬 작용 문제일 수도 있고, 적대적 반항장애 같은 심리적 장애요인일 수도 있으며, 의도치 않게 주변 환경으로부터 습득한 행동일 수도 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일부 사례만 가지고 결론을 도출하여 모든 경우에 적용하는 것


내가 특수학교에 있을 때 유독 폭력 성향의 아이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 아이들 모두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

초등학생 5학년의 ‘태산(가명)’이는 키가 나보다 크고 손바닥도 솥뚜껑만 했다.

아이는 가명처럼 나에게 커다란 산과 같았다.

당시의 태산이를 설명하자면 험준하고 높아서 차마 오르지 못할 산이지만 결국 넘어야 하는 힘겨운 아이라고 말하겠다.

그 아이는 신체적 성장은 이미 준 성인인데, 말할 능력은 없고 ‘으, 어, 아’ 등의 소리만 냈다.

아이가 뭔가 표현하고자 할 때는 손을 번쩍 들었는데, 내가 왜 손을 들었냐고 물으러 가면 그 아이는 다짜고짜 내 뺨에 그 솥뚜껑 두께의 손바닥을 휘둘렀다.

맨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하여 드라마 속 물 싸대기를 맞은 처량한 주인공처럼 눈만 껌뻑였다.


하지만 나중에 그 아이를 더 자세히 알고 보니, 손을 들 때 손의 높이와 각도에 따라 그 의도가 다른 것이다.

그 각도와 높이에 따라 나름의 표현이 있었고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면 저도 모르게 답답하여 손을 휘두른 것이다.

그 손에 맞은 대부분의 사람이 태산이에게 더 관심을 주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이 형성된 것 같았다.

물론 대부분 안 좋은 관심이었겠지만.


여담으로 나는 태산이에게 익숙해지고 그 아이의 표현 방법도 잘 파악하게 되어 나중에는 좀 덜 맞게 되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손을 들 때면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언제인가 도서관에서 다른 반 선생님인 P를 만나 인사를 나누던 중, 내 손을 잡고 있던 태산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손을 번쩍 들었다.

그때의 나는 불쌍하게도 습관적으로 고개를 움츠리고 팔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나와 마주친 P는 한동안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다.

이는 나에겐 좀처럼 없는 비굴한 교직 생활의 기억이다.


다음으로 초등학교 1학년을 맡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 맡은 아이 중 범호(가명)가 유독 인상적이었다.

나에게 남은 기억이 아주 강렬하다 보니 작명하는 가명도 강력해지는 것 같지만 귀여운 부분도 많았던 아이다.

허리까지 오는 키에 손석구 배우를 닮은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기분이 좋으면 까르륵까르륵 잘만 웃던 아이였다.

그런데 그 아이는 하필 점프하는 것과 팔 휘두르는 것, 그리고 손바닥으로 치는 것 모두를 좋아했다.

한편으로 시끄러운 것을 극도로 싫어했는데, 아직도 밥 먹다가 이유도 없이 그 아이에게 ‘등짝 스매시’를 맞은 것이 아픈 듯 아른거린다.

그때도 도서관에서 마주쳤던 선생님 P가 뒤에서 안 되었다는 표정으로 한탄했던 기억이 있다.


얘들아 잘 지내니?
단 하루라도 너희들이 되어서 너희가 왜 그러는지 알고 싶어 하던 선생님은 어쩌다 보니 너희 마음을 알게 되었단다.
특히 태산아 네가 답답할 때면 왜 그리 손을 날리고 보는지 알게 되었어.
샌드백을 치고 보니 스트레스가 훨훨 날아가더구나.
그래도 내 손 잡고 잘 따라와 줘서 고맙다.
그리고 범호야, 나에게 등짝 스매시는 네가 처음이야.
선생님은 엄마한테도 등짝을 내어주지 않았었거든.


아무튼 이제라도 너희의 마음을 알게 되어서 다행이야. 선생님은 갑자기 너희를 이해하게 된 계기가 바로 복싱이란다. 얼마 전부터 복싱장에 열심히 다니게 되었어. 때릴 때의 쾌감, 좋더라. 그래.


부디 어디서든 잘 지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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