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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랍비 Sep 03. 2024

어쩌다 파티 약속

코코아를 모르는 아이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전학을 온 혜성(가명)이에게는 ‘예성(가명)’이라는 동생이 있다.

아무래도 두 아이 모두 가정폭력을 겪다 보니 같은 보호 센터로 오게 되었나 보다.

이 아이는 이제 막 1학년인데, 말투나 행동이 꼭 5-6세 아동 같다.

이제 막 어린이들의 말투에 적응하여 잘 알아듣나 싶었는데, 이 아이를 보고 있자니 다시 익숙해져야겠단 생각이 든다. 


“도이 두세요. 도이요.”


이 말은 ‘종이 주세요. 종이요.’라는 말이다.


“턴탱니, 뜨어요.”


그리고 위의 말은 ‘선생님 추워요.’이다.

이처럼 약 5세 정도의 아동처럼 시옷과 지읒, 치읓 발음을 잘 못한다.

이렇게 조음 정확도가 떨어지는 아동들에게는 조음 지시법이라는 방법으로 조음 교정을 종종 해주었는데, 예성이는 아직 혀와 구강구조 발달이 더딘지라 잘 안된다.

그나마 이 아이에게는 파닉스 교수(phonics instruction) 음절의 소리를 알려주어 천천히 합치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조음 지시법: 모형이나 설압자 등을 사용하여 올바른 조음점(혀의 위치)이나 조음법을 찾아 알려주는 방법. 
*파닉스 교수/발음 중심 교수법: 단어나 낱자가 가진 소리와 발음을 배우는 방법. 예를 들어 '산'이라는 글자를 배우려면 '스+아+안'으로 천천히 발음 하는 방법을 먼저 알려준다. 뒤로 이어서 빠르게 '스+안'으로 알려준 후, '산'으로 발음하게 한다.


하지만 요즘 글자 공부에 탄력을 받았는지, 나와 글자 공부를 하고 나면 흥얼거리며 자음 노래를 부르곤 한다. 그리고 아동들이 폭발적으로 언어가 발달하는 시기가 있는데, 마침 예성이가 딱 그 시기로 들어왔다.

이 시기에는 지나가며 보이는 글자를 읽고, 배웠던 글자를 찾으며 기뻐하며, 그 글자로 시작하는 또 다른 글자가 뭐가 있는지 생각해 본다.

어느 날 예성이와 나는 키읔을 공부하며 ‘코’라는 글자를 배웠다. 그러자 예성이가 물었다.


“코로 시작하는 단어가 또 뭐 있어요?”

(실제로는 이렇게 정확한 발음이 아니지만, 읽기 편하게 적어본다)


“글쎄, 코, 코라…. 우리 예성이가 쉽게 알만한 단어가 뭐가 있을까.”


아무래도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이다 보니, 쉽게 알만한 단어가 뭐가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코웃음? 코털? 코뚜레? 모두 어렵다. 아! 코코아! 어린이들 모두가 좋아하고 알만한 단어다.


“코코아가 있네! 코코아 알지?”

“코코아가 뭐예요?”

“따뜻하고 달콤한 거 몰라? 어른들 커피처럼 갈색에다가….”

“커피 알아요.”

“커피는 아는데 코코아는 몰라?”

“네.”


마음 한구석이 또 불편해졌다. 나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반 아이들에게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이지만 그 안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이 아이도 좋은 부모를 만났다면 각각 커피와 코코아를 마시며 웃고 떠드는 평온한 일상이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이 든 나는 아이에게 웃으며 말했다.


“따뜻하고 달콤한, 아주 추운 겨울에 마시면 굉장히 좋은 음료가 있어. 그게 코코아야. 우리 다음에 친구들이랑 코코아 파티하자. 알겠지?”

“네.”

<혜성이의 그림이다. 왜 맨날 울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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