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랍비 Sep 05. 2024

어쩌다 구름-2

다른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

구름이를 보자면 예전에 키웠던 고양이 ‘시월이’가 떠오른다.

두 녀석 다 수컷이고, 두 녀석 모두 새끼일 때 나를 만났다.

하지만 시월이는 건강이 안 좋아 일찍 떠났고, 구름이는 다행히 건강하다.

시월이가 세상을 떠나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그 녀석 덕분에 반려동물이 보는 세상을 이해하게 되었고 무언가를 해줄 때의 기쁨도 깨닫게 되었다.

장난감으로 놀아줄 때의 그 빛나던 눈, 침대에 올라와 같이 쓰다듬어 달라며 고롱고롱 하던 그 진동과 소리, 퇴근할 때면 문 앞에 앉아 나를 기다리던 그 간절한 표정.


잊을 수 없다.


나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음에도 아직 이별에 익숙하지 않다. 

시월이는 내가 지방 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일할 때 나의 쓸쓸함을 달래준 유일한 녀석이다.

젊었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시월이를 들여왔다.

날씨가 쌀쌀해질 무렵 10월의 어느 날, 은빛 긴 털의 페르시안 친칠라는 나를 만나 ‘시월이’가 되어주었다.


10월에 만나 시월이다.

*페르시안 친칠라: 고양이의 한 종. 털의 무늬나 색에 따라 ‘친칠라’라고 불리기도 한다.


처음 시월이가 왔을 때는 아직 박스와 배변통과 모래밖에 없던 지라 둘 다 어색한 눈치였다.

게다가 시월이는 그때 처음 보는 커다란 인간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옷장 구석에 숨어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던 시월이를 위해 약 이틀 정도 바닥에 누워 생활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 조그만 녀석이 어느 순간부터 내 어깨 주변에서 놀며 잠을 자기 시작했다.

고양이에 대해 잘 모르던 나는 ‘고롱고롱’하는 ‘골골송’을 듣고 얘가 감기에 걸렸나 깜짝 놀라기도 했다.

물론 그 뒤로 시월이를 기르기 위해 고양이에 관한 공부를 꽤 열심히 했었던 것 같다.

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리고 인터넷으로 검색도 하고 카페도 가입하여 여러 정보를 얻었다.

당시 세탁기가 없던 나는 시월이 혼자 집에 두고 코인 빨래방에 가기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나는 시월이를 고양이 가방에 들어가는 연습을 시킨 후 항상 코인 빨래방에 같이 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순회 교육을 돌며 일주일에 4회 이상 밖에서 점심을 먹어야 했는데, 주로 집에 들어가서 시월이와 같이 점심을 먹었다.

퇴근하면 항상 문 앞에 앉아 나를 기다리는 모습이 늘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후 시월이가 감기에 걸렸는지 계속 기침을 하고 기운도 별로 없었다.

자주 가던 동물 병원에서는 단순 감기라고 했지만, 아무리 약을 먹여도 낫질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다른 동물 병원을 검색하여 그곳에 시월이를 데리고 갔다.

그러자 수의사 선생님은 시월이 가슴에 주삿바늘을 꼽아 몇 번 복수(腹水)를 채취하더니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했다.


고양이 전염성 복막염입니다.”

“네? 그게 뭔가요?”

“일종의 바이러스성 질병인데, 이름처럼 전염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감기 바이러스의 변형 바이러스로 따로 걸리는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이게 문제는… 치사율이 90퍼센트 이상이라는 겁니다.”

“예?”

“보호자 분이 보시면 알겠지만 여기 배가 부풀어 오른 게 많이 먹어서가 아니에요. 바이러스로 인해 복수가 차는 건데, 이것 때문에 호흡하기 힘들어지고요. 그리고…”

*고양이 전염성 복막염: 배나 가슴에 계속 물이 차오르는 고양이에게 아주 치명적인 병이다. 현재까지도 그 발병 원인이나 치료 방법을 모른다. 


그 뒤로도 수의사님은 친절하게 그리고 매우 천천하고도 길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수의사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치사율이 90% 이상이라니.

이제 막 5~6개월 갓 넘긴, 너무나 작고 소중한 내 가족인데.


“아, 예. 그러면 제가 뭘 해야 하나요?”

“우선 약을 꾸준히 먹이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병원에 오셔서 주사기로 물을 빼줘야 합니다. 우선 너무 낙담하지 마시고…”


수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그 병원에 다니는 고양이 중 시월이와 증상이 같지만, 잘살고 있는 고양이가 있다고 했다.

학회에 알려진 바로는 치사율이 90% 이상이지만, 2년 동안 계속 병원에 오며 물을 빼주며 약도 잘 먹이고 그렇게 산다고 한다.

이 말이 나를 위로하려는 거짓말인 건지 아니면 실제 그런 고양이가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그저 믿기로 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 멍하니 시월이를 보자니 덜컥 차오르는 두려움에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복수를 뺀 시월이는 다시 힘이 생기는지 나에게 와서 앵긴다.


놀아달라는 거야? 배고파? 쓰다듬어 줘?


아픈 녀석이 장난감이나 사료에도 별 관심 없이 오직 나한테만 매달리는 걸 보니 내가 우울한 걸 눈치챘나 보다.

그렇게 나 홀로 간병을 시작했다.

가족들이 맡기라고 하지만 도저히 아픈 녀석을 남의 손에 맡길 수 없었다.

내가 끝까지 함께할게. 수의사 선생님이 예로 들어준 2년 동안이나 병원에 다닌다던 고양이 이야기가 내겐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날 이후 여행은 절대 안 갔다. 그리고 순회 교육을 하다가 중간중간 집에 수시로 들러서 시월이가 괜찮나 살피기도 했다.

순회 교육을 하며 다른 아이들의 교육 장소로 이동해야 하므로, 혹시나 하는 걱정에 집에 잠깐 들러 간식과 밥도 챙겼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무조건 병원에 가서 복수도 빼고, 심지어 어쩔 수 없는 명절에는 할머니 댁에 같이 데리고 가 그곳에서도 병원을 찾았다.

집에 무슨 동물을 들이냐며 나에게 꾸중하시는 할머니의 말씀에도 그저 죄송하단 말만 했다.


“무슨 동물을 집에 들여. 털 날려!”

“죄송해요. 얘가 많이 아파요.”

“그래도 그렇지. 쯧, 저기에 놓아.”


역시 손주 이기는 할머니는 없다.

할머니는 소파 옆에 시월이 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하셨고 나중에는 쓰다듬으며 털이 부드럽다고 허허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하지만 명절이라고 복수가 차는 게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장거리 이동의 스트레스로 더 복수가 찼다. 그렇게 나는 재빨리 집에 돌아와 동물 병원에 갔고 시월이는 금방 또 괜찮아지는가 싶었다.


“보호자님 정말 잘하고 계시네요. 고양이 전염성 복막염에 걸리고도 이렇게 오랫동안 사는 경우가 드물어요. 정말. 이렇게 4개월이나 버티는 건 보호자님도 시월이도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는 증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역시 불행할 때 가지는 희망이 가장 무섭다.


실낱같은 한 줌의 희망이 나를 나태하게 했고 자만하게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늘 잘 먹던 습식 사료와 약을 먹지 않았다. 나는 가루약과 알약 둘 다 항시 준비하고 있었는데, 일단 습식에 환장할 때는 가루약을 잘 먹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습식 사료를 먹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수의사 선생님이 알려준 방법으로 입을 벌려 알약을 집어넣고 꾹 닫아 억지로 먹게 했다.

시월이가 몸부림치는 바람에 할퀴고 물려 손가락에 피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미안, 미안. 그래도 이 약을 안 먹게 되면 네가 죽을지도 모르니까. 미안해. 그래도 제발. 이 약 좀 먹자.”


애걸복걸해도 고양이가 어떻게 사람 말을 알겠는가.

타이르고 달래고 화내고 혼내고.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후 시월이는 기어코 가루약을 안 먹고 억지로 억지로 알약만 먹게 되었다.

나도 나름 노하우가 생겨 알약을 먹일 때, 처음처럼 끙끙대며 씨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정말 괜찮은 줄 알았다

100만 분의 1이 겪는 기적처럼 시월이가 금방 병세를 극복하고 다시 건강을 찾을 것으로 생각했다.


한적한 일요일 저녁 여타 다를 것 없는 날의 늦은 10시쯤, 시월이가 씨름씨름 앓았다.

게다가 걷는 것도 힘든지 계속 털썩털썩 주저앉아 병아리처럼 낑낑거렸다.

복수가 많이 차서 힘들 때면 가끔 그렇게 계속 누워 있었기에, 나는 복수를 빼주기 위해 지금 연 동물 병원이 있나 검색해 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없다.


기다려. 내일 아침에 일찍 병원에 가자. 응? 아이고, 힘들지?


나는 온갖 말을 하며 시월이를 쓰다듬고 달래주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숨 쉬는 것조차 벅찬지, 가슴을 헐떡이며 눈만 껌뻑였다.

그렇게 저녁 늦게까지 바닥에 누워 시월이를 보며 쪽잠을 자다가 12시와 3시, 5시에 각각 일어나 시월이를 확인했다.

다행히 숨을 거칠게 몰아쉬긴 해도 평온하게 잠을 자는 듯했기에 조금 안심하고 출근을 하기 위해 잠에 들었다.

어찌 되었든, 일찍 출근하고 외출을 달던가 조퇴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바닥에 누워 쪽잠을 자니 너무 피곤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알람도 못 듣고 못 일어났다.


그런데 갑자기 시월이가 크게 ‘삐익 삐익’하는 병아리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나는 핸드폰 알람인 줄 알고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살피려고 했다.


“아, 그만. 진짜 피곤하다.”


그러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혹시 시월이? 시월이가 이런 소리를 낸다고?


하지만 내가 늦장 부리는 바람에 그 소리는 이미 멎었다.

그리고 내가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시월이를 살피니, 그 녀석의 숨도 멎어 있었다.

나는 그렇게 마지막도 함께 해주지 못한 못난 보호자였다.

하지만 ‘시월이의 시간’은 끝이 났어도 여전히 ‘나의 시간’을 흘렀고 나는 출근해야만 했다.


냉정하지만 그게 바로 현실이다.


나는 나밖에 모르는 나만의 슬픔에 잠겨 출근하여 일하다가 아프다는 핑계로 조퇴했다.

현실은 고작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공가를 주지 않는다.


나는 그런 것으로 현실이 차갑고 냉정하다 하지 않겠다.


오히려 차갑게 가슴을 식히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차가워진 시월이를 안고 동물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 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특수교육지원센터에서 나올 때부터 눈물이 차올랐다.

그리고 반려동물이 죽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기에 무작정 자주 가던 동물 병원으로 갔다.

그러자 매번 카운터를 보던 간호사님이 나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오늘은 일찍….”


하지만 내가 펑펑 우는 걸 보고 간호사님도 시월이의 죽음을 직감하셨나 보다.

그녀는 나와 같이 새빨개진 눈으로 아무 말 없이 수의사 선생님께 안내했다.

나는 시월이의 마지막을 함께 해주지 못한 죄책감에 수의사 선생님께 아무 말이나 지껄였던 것 같다.


내가 잘 못 해줘서, 끝까지 못 봐줘서, 나 때문에….


수의사 선생님은 나를 다독여주고 위로해 주셨던 것 같다.

그렇게 수의사 선생님의 위로를 뒤로 나는 그 녀석과의 이별은 화장으로 마무리했다.

수의사 선생님은 시월이를 더 오래 기억할 이런저런 장례 절차가 있다고 친절히 설명해 주었지만, 나는 당시 병세를 버티지 못하고 나와 함께 오랜 시간을 못 견딘 시월에게 화가 났던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잘 못 해줬다는 죄책감에 시월이를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다른 장례를 회피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는 노력에 대한 대가가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의 나는 대가 없는 노력, 결과 없는 과정에 대한 회의와 불신으로 나 자신을 주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무튼 시월이는 나에게 있어 미안하고 슬프지만, 화나고 밉기도 하다가 결국 다시 보고 싶은 그런 녀석이다.

나는 처음 겪는 이별로 시월이를 빨리 잊기 위해 고양이용품을 하루 만에 모두 버렸다.


그때는 이별이 서툴러서 그랬는지 모른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 그때의 이별이 서투름을 고백하며 아직도 이별이란 건 참 어렵다는 걸 체감한다.


나는 그날 이후로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겠단 내 다짐에도 불구하고 구름이를 이렇게 약 2주간 보고 있으니, 내 가슴속에 구름이를 그냥 내가 키울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밀려온다.

그러다 떠오르는 생각이, 시월이를 위해 애쓴 건 그 녀석을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해 그렇게 오랫동안 붙잡았나 싶다.


인간이 아무리 지혜롭고 명철하다 한들, 인연(因緣), 묘연(猫緣), 견연(犬緣) 모두 다 예측할 수 없고 그 이치를 깨달을 수 없다.

그렇기에 인간인 나의 생각과 시야는 굉장히 좁다.

시월이는 죽기 전까지 너무도 아팠기에, 달리 생각하면 오히려 내가 그 녀석에게 너무 질척거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욕심을 배제하고 생각하면, 오히려 2년 동안이나 매주 병원에 갔다던 고양이보다 훨씬 더 좋은 곳에 평안하게 있을지 모른다.


아픔과 고통이 없는 곳 말이다.


솔직히 과거와 지금의 내가 벌인 일들이 무슨 일로 이어질지, 그로 인해 무슨 책임을 져야 할지 어떻게 다 안단 말인가.


이렇게 무덤덤하게 전하는 척해도 결국 나는 내 아픈 이별을 소심한 글로 호소하는 한낱 인간임에 불과한 걸.

그리고 구름이를 통해 시월이의 기억을 떠올리며 걱정하다가, 이 아이는 괜찮을 거라며 비이성적 불안을 합리적 판단으로 고쳐 생각하고 다짐하는 연약한 사람에 불과한 걸.


그렇게 구름이를 보며 내 불완전함을 고백하며, 부디 구름이만큼은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라고 부탁해 본다.




구름이는 결국 시골 할머니 집에 안 가게 되었다.

할머니께서 안 키우신다고 하셨단다. 그렇게 구름이는 결국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생활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전직 군인이셨던 아버지는 구름이에게 절대 선을 안 넘게 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집에 강아지 데리고 오면 쫓아낸다는 모든 아버지가 그렇듯, 결국 구름이에게 함락당하고 모든 걸 내어주셨다.


이제 우리 가족은 애견 동반 식당과 카페를 애용한다.


구름아 부디 건강히 행복하자.

<산책에 신난 구름이>


이전 11화 어쩌다 구름-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