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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랍비 Sep 04. 2024

어쩌다 구름-1

마당 개로 들여온 포메라니안

내 어머니는 불도저다.

한 번 생각이 나고 확신이 들면 거침없이 밀어붙인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기르는 개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했다.

그 개는 여타 시골집에서 흔히 마당에 묶어 기르는 믹스견(잡종)이였고, 내 할머니는 나이가 지긋하신 분답게 먹다 남은 밥과 사료를 주어 길렀다.

사실 그 개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할머니는 개에 대한 복지를 생각하시기에 나이가 너무 지긋하셨다.


어쨌든 시골개는 명줄이 다했다고 하니, 명복을 빌어주며 그곳에서는 행복해지길 빌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명복 빌어주는 것과 더불어, 한 발짝 더 나아가 할머니께서 외롭지 않게 기를 다른 강아지를 얻어오셨다.


그 강아지가 바로 ‘구름이’다.

어머니는 시골 마당 개로 기를 강아지로 '포메라니안' 인 ‘구름이’를 데리고 왔다.
세상에나.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곳에 올렸다가 욕먹기 딱 좋은 사연인데, 이걸 어떻게 말려야 하나.


<이렇게 작은 녀석을 마당에서 기를 생각을 하시다니, 아이고 대단한 우리 어머니...>

오목조목한 이목구비에 구름같이 부푼 풍성한 털갈기, 작은 몸집으로 앞발을 뚱땅거리며 걷는 심장폭격 귀여운 외모에 나와 동생은 아연실색하며 어머니를 말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우리보다 강력하다.


어머니는 이미 할머니의 결정에 맡기겠단 의지가 확고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단체 대화방에 구름이의 사진을 올릴 때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데려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나: 엄마 그 강아지는 무릎 강아지인데, 마당에서 기르는 건 힘들지 않을까?]

[동생: 그러게 너무 작아서 마당에 놓기 불안하다. 거기 멧돼지들도 많지 않아?] 


하지만 어머니는 불도저답게 우리의 의견을 철저하게 짓밟고 밀어 버렸다.

그렇게 폐건물처럼 파사삭 무너져버린 우리는 결국 어머니 설득하길 포기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께 연락이 왔다.


[집 화장실 리모델링 공사를 해야 해서 말인데, 혹시 구름이를 얼마간 맡길 수 있을까?]

“아, 그럼요. 오히려 좋지.”

[그래? 그러면 그냥 너희가 길러보던가. 저번에 빗질도 잘 시키더만.]


사실 우연히 어머니의 부탁으로 하루 동안 구름이를 보살핀 적이 있다.

어머니는 구름이를 우연히 얻어오게 된 거고, 그때까지만 해도 강아지에게 큰 관심을 줄 용기가 없어서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나는 출근해야 하니 주 양육자는 아내가 되겠지?

그런데 아내는 고양이 파인데.

게다가 집에 있는 아내에게 상의도 안 해 봤고….

예방 접종비랑 사료비, 패드와 장난감, 간식 비용 등등은 또 어떻게 하지?

강아지 양육에 관한 온갖 생각이 떠오르며 머리가 복잡해진다.


“생각해 볼게요. 화장실 공사 잘하셔요.”

[그래. 고맙다.] 


전화는 그렇게 착잡했지만, 구름이를 잠시 동안 맡게 되었을 때 조금 들떴던 것 같다.

나와 아내는 동물을 매우 좋아하고 구름이는 굉장히 순하고 귀엽게 생겼다.

게다가 특수교육학은 스키너의 행동주의이론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기에 더욱 그랬다.

*스키너: 본명은 버러스 프레더릭 스키너(Burrhus Frederic Skinner)로 미국의 심리학자다.
*행동주의이론: 적절한 보상을 통해 바람직한 행동을 형성해 가는 방법을 다룬 이론. 스키너가 주장하여 교육학과 동물행동학, 행동경제학 등에 영향을 끼쳤다. 


‘아, 오면 무슨 훈련부터 시켜볼까. 아니, 무슨 방법을 써보지? 우발적 교수? 아니지. 강아지들은 집중력이 약하니까 좀 더 구조화된 환경이 필요해. 그렇다면 좀 더 올드하게 조작적 조건형성을 통해 행동 훈련을 해볼까? 우선 부적 벌이나 정적 벌보다는 정적 강화의 장치만 사용해서……. 흐흣. 신난다.’


그 귀여운 얼굴로 앉아서 기다리는 모습을 상상하니 이가 뿌득 뿌득 갈리고 주먹이 부르르 운다.

귀여운 건 모름지기 저도 모르게 괴롭히고 보는 못된 성격이라, 그걸 꾹꾹 눌러 참느라 어금니가 깨질 만큼 꽉 물게 된다.

그렇게 구름이가 우리 집에 온 후, 몇 시간은 그대로 집에 놓고 놀아줬다.

먹이도 주고 간식도 주고. 인간으로 치면 ‘라포(Rapport: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리 와’를 훈련시키는데, 역시 이론과 실전은 매우 다르다.

특히 사람과는 교육시키는 법이 다르다.

사람과 개를 비교해서 조금 이상하지만, 어쨌든 행동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역시 ‘강화(보상)’가 관점인데 사람은 행동한 후 강화가 조금 지연되어도 괜찮은 반면, 개는 ‘즉각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개는 ‘포만 상태’를 잘 못 느껴서 간식을 너무 많이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간식이 과하면 건강에 좋지 않단다.

*포만 상태: 욕구가 충분히 해소된 상태로 강화가 먹히지 않는 상태를 일컫는다. 예를 들어 과자를 강화로 삼아 행동 조건 충족 시 과자를 계속 주었는데, 배가 부르면 더는 목표 행동을 하지 않는 상태와 같다. 


아무튼 그렇게 구름이와 약 2주간 지냈는데 이 요물 녀석은 나를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해준다.

아침 6시면 침대 밑으로 종종걸음으로 와서 낑낑거린다.

이놈아, 내 모닝콜은 7시라고.


[밥, 밥 줘!]


그러면 나는 갈라진 목소리로 신음하듯 말한다.


“어, 으. 아, 알겠어. 잠깐만.”

‘으… 여긴 지옥이야.’


비몽사몽으로 사료를 챙기고 소파에 누워 있으면 경사로를 타고 올라와 내 얼굴 주변에 앉는다.

아직 6개월 정도밖에 안 된 새끼 강아지인지라 아침 산책은 조금 힘들다.

산책 훈련이 안 되어 있어 아내와 같이 나가야 하는데, 같이 산책하러 나가더라도 10분이면 지쳐서 나가떨어진다.

이 녀석, 아직 어려서 그런가 엄청난 저질 체력이다.

하지만 그렇게 에너지 발산할 곳이 적음에도 제법 얌전하다.

얌전히 앉은 구름이의 구름같이 폭신한 뒤태를 보고 있자니, 내 손이 너무 아깝다.

그 복실폭신한 털을 만지면 구름이가 사료 냄새를 풍기며 나에게 안긴다.


‘여기가 바로 천국이구나.’

<얌전히 앉은 구름이의 폭신한 뒤태-이걸 안 만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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