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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랍비 Sep 06. 2024

특수한 수업계획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

아이들을 교육하다 보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주제에 골머릴 앓기 마련이다.

게다가 나처럼 1학년에서 4학년까지의 수준이 다양하고 특성이 다양한 ‘복식학급’을 맡았다면 더욱 그러하다.

이는 비단 학교의 일만이 아니라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자녀들을 기르는 부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화나 놀이의 주제, 난이도, 흥미 유발 요소 등 어느 것 하나 쉽게 고를 수 없다.

*복식학급: 두 학년 이상의 학생들로 편성한 학급


게다가 학교 수업이란 것이 100% 교사의 재량이 아니다.

비슷한 세대끼리 각기 다른 학교의 다른 반을 나오고 다른 교과서를 배웠어도 그 시절에 배운 내용을 같이 추억하고 공유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당시 교육과정의 ‘성취 기준’ 덕분이다.

‘성취 기준’이란 ‘국가에서 정한 마땅히 도달해야 할 목표나 수준’을 의미하며 이는 각 교육과정의 학년마다 구체적이고 명시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교사가 해당 학년에 부합하는 성취 기준을 따라 목표를 정하고 수업을 설계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비슷한 세대끼리 ‘그땐 그걸 배웠지’라고 말하며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복식학급을 맡은 나로서는 성취 기준에 부합하며, 다양한 수준을 고려하고, 여러 특성과 흥미를 고려한 수업을 설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렇게 학년과 수준이 다양한 우리 반에도 공통 분모가 있다.


바로 ‘이야기책’이다.


우리 반 아이들은 동화책 읽는 걸 좋아한다.

그렇기에 전체가 참여할 수 있는 수업을 설계할 시 항상 이 아이들의 흥미를 고려하여 국어의 독서와 관련된 단원을 준비한다.

독서는 2학년부터 4학년까지 모두 적용할 수 있으며 심지어 이야기에 나오는 낱말을 적용하여 1학년에게 낱말 가르치기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특별히 ‘나는 토마토 절대 안 먹어’라는 이야기를 준비했다.

편식과 이를 극복하는 롤라라는 아이의 이야기인데, 우리 반의 편식이 심한 대성(가명)이라는 아이에게 딱 알맞다.


대성이는 튀긴 음식만 먹기에, 이참에 대성이가 여러 음식에 도전할 용기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이들에게 질문한다.


“여러분 롤라가 여기 ‘오렌지뽕가지뽕’을 먹었어요, 안 먹었어요?”

*이야기 중에서는 주인공네 오빠가 당근의 명칭을 목성에서 나는 ‘오렌지뽕가지뽕’이라고 바꾸자, 주인공 롤라가 당근을 먹기 시작한다.

“먹었어요!”

“우리 친구들이 롤라의 오빠면 다른 어떤 이름을 지어볼까? ‘당근뽕뽕이’랑 ‘당근당근’이랑 어떤 이름이 더 어울리는 거 같아요?”

“당근뽕뽕이요/당근당근이요!”


아이들이 신나서 소리친다.

당연히 대성이 또한 이름 지을 능력이 되는 아이들은 신나서 이것저것 작명하기 시작했다.

이야기에서 주인공 롤라는 당근을 ‘오렌지뽕가지뽕’, 완두콩을 ‘초록방울’, 감자를 ‘구름 보푸라기’, 생선 튀김을 ‘바다 냠냠이’라고 칭하며 편식을 극복한다.

그렇기에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이 가장 잘 먹지 않는 김치를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적용해보기 시작했다.


“자, 그러면 우리는 김치의 이름을 한 번 바꿔볼까요?”


그러자 역시나 한 번에 정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나는 미리 생각해둔 예시를 몇 개 알려주었다.


“1번은 ‘아삭 냠냠이’, 2번은 ‘빨간 망울’, 3번은 ‘배추뽕열무뽕’. 자 우리 어떤 걸로 정할지 한 번 말해봐요.”


아이들은 너도나도 자기가 마음에 드는 이름을 말했고 그중 1번 아삭냠냠이가 1등을 차지했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각자의 감화와 감동을 가지고 김치를 먹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대성이의 점심을 지도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성이가 김치를 먹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성이에게 달래듯 말했다.


“대성아, 우리 ‘아삭 냠냠이’ 먹기로 했잖아.”

“김치는 맛없어.”

“대성아 이건 김치가 아니야. 얘는 새빨간 화성에서 온 ‘아삭 냠냠이’인걸!”

“아삭 냠냠이?”

“응! 기억 안 나? 우리 ‘토마토 절대 안 먹어’에서 배웠잖아.”


그러자 수업 때는 그렇게 이야기에 감정 이입하여 여러 음식의 이름을 작명하던 아이가 갑자기 현실을 깨닫는다.


아삭 냠냠이는 김치야. 김치는 맛이 없어.”


아, 이 녀석의 간헐적 상상력은 어떻게 해야 하나.

자기가 재미있을 때만 나오는 뜨겁도록 열정적인 상상력과는 반대로 김치 앞에서는 지극히 차갑고 이성적임에 혀를 내두른다.


“어, 그래.”


아휴, 정말 김빠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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