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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배 Sep 19. 2022

까마중

배고픔을 달래주던 어린 시절의 추억


‘불교라는 종교와 관련된 꽃’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나요?


연꽃

불교와 관계되거나 스님과 관계된 꽃들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연꽃이 떠오르겠지요. 전통적으로 진흙탕 속에서 순수한 꽃을 피우는 연꽃은 부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 머리를 닮은 불두화를 연상할지도 모릅니다. 또는 초여름에 연꽃이 아직 피지 않아 연꽃 대신 시냇가에 핀 꽃으로 부처님께 대신 바쳐서 부처꽃이란 이름을 가진 꽃을 떠올리실 수도 있습니다. 화려한 노란색 풀꽃으로 환한 부처님 얼굴을 닮았다는 금불초, 그리고 잡초 가운에 중대가리라는 풀꽃도 있습니다.

 

   

저는 불교와 관련되어 먼저 떠오르는 꽃이 ‘까마중’이란 풀꽃입니다. 그 많은 좋은 꽃들을 놔두고 하필 까마중이냐고 좀 서운해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꽃은 꽃 때문에 붙은 이름이 아니고 순전히 열매 때문에 붙인 이름입니다. 늦여름이 되면 둥그렇고 까만 열매가 익어가는데 마치 스님의 까까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까마중 열매

    

도시 한구석 아파트 풀밭에서도 자라고, 담벼락 끝에서 포장된 도로 좁은 틈새에서도 올라와 굳건히 꽃을 피우며 자리 잡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도시인들에겐 전혀 관심 밖의 대상으로 보입니다. 아무도 까마중꽃이 피었다가 열매를 맺는지 어떠하든지 전혀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어쩌다가 낯선 도시의 꼬투리에서 자릴 잡고 살아가게 되었는지 처량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마 추억 때문일 것입니다. 어릴 적 까마중은 시골 논과 밭두렁에서 자라던 풀꽃이었습니다. 배고프던 시절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따먹던 추억의 간식입니다. 까마중 열매가 익으면 아이들과 함께 몰려다니며 따먹곤 했습니다. 달짝지근한 까마중 열매를 먹으며 입술이 까맣게 변해 서로를 보고 웃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던 추억의 풀꽃이기에 도시의 이곳저곳 피어나 아무 관심도 받지 않고 사라져 가는 까마중이 처량하게 보였는지 모릅니다. 가끔 보이는 보랏빛이 감도는 까마중은 ‘미국까마중’입니다. 미국까마중 열매는 먹지 마세요. 열매를 따 먹으면 후회하실 겁니다.

미국까마중


황석영의 소설 <아우를 위하여>에 까마중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인 김수남이 11살이던 한국전쟁 직후 피난지 부산에서 서울로 전학 오게 되고, 학급에서 일어난 일과 짝사랑했던 교생 선생님에게서 얻었던 교훈을 군에 입대한 아우에게 보내는 서간체 형식으로 전해주는 소설입니다. 주인공이 학급에서 일어나는 불의에 항거하고 교생 선생님의 가르침을 통해 의식이 성장하고, 행동화함으로써 삶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일종의 성장소설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19년 전인 열한 살 시절을 회상하며 “그땔 생각하면 제일 먼저 까마중 열매가 떠 오른다.”, “너 영등포의 먼지 나는 공장 뒷길이 생각나니? 군복이나 물 빠진 작업복을 걸치고 도시락을 든 아저씨들이 공장의 담벼락을 따라 줄지어 밀려가던 그 길. 우린 그때 폭격에 부서진 철길 옆의 화통에서 곧잘 까마중을 찾곤 했지. 그 열매의 달콤함에 한 시간씩이나 지각을 했잖니.”하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오래전 시절에도 까마중 열매는 배고픔을 달래주는 열매였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성선경 시인이 쓴 <까마중이 머루알처럼 까맣게 익어 갈 때>라는 시입니다. 여름의 끝에서 까마중을 통해서 저처럼 동자승이 떠오른다고 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는 천진난만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동자승의 깜찍하고 순수한 모습만을 보았다면 시인은 동자승을 통해 외로움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저와 시인의 다른 마음 상태가 동자승에 투영되면서 차이를 보이는 것이리라 추측합니다. 시에서 동자승은, 자신 스스로 결정하여 속세에서 벗어나 스님이 된 성인 스님과는 달리,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속세를 등지고 스님이 된 어린 스님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동자승에게서 외로움을 발견하고 자신의 외로움을 동자승에 대입합니다. 그 연결 매체가 된 것이 까마중입니다.  

        

나의 칠월은 이미 끝났는데

까마중이 머루알처럼 까맣게 익어 갈 때

왠지 나도 동자승같이 외로워져서

까마중 까마중 입속으로 우물거리면

왠지 까만 동자승이 생각나

꼬마중 꼬마중 하게 되지만

당신은 벌써 가고 나의 칠월도 끝이 났습니다

당신이 떠나간 길섶 뒷덜미의 깊이만큼

까마중이 머루알처럼 그렇게 익어 갈 때.

 - 성선경, <까마중이 머루알처럼 까맣게 익어 갈 때> 부문


     

까마중같이 외로운 시인의 마음은 여름이 가면 열매가 스러지듯이 어느 한순간 사라져 버리고, 외로움은 그 옛날 까마중의 달짝지근한 맛으로 혀에서 감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의 추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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