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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배 Sep 15. 2022

광대나물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느끼는 인간의 고통

  
                  


이른 봄 풀밭을 헤매고 있을 때 누군가 나를 향해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공원 경사지 위쪽에 문득 분홍색 꽃무더기가 보입니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올라 무릎을 꿇고 앉아 꽃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바로 너였구나! 네가 그렇게 크게 입을 벌리고 큰소리로 나를 부르고 있었구나. 아니, 절규했구나.” 그제야 큰 소리의 정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너는 무엇에 놀라, 무엇이 고통스러워 그렇게 큰 입을 벌리고 절규하는 것이냐?’   

  

 이 순간 저는 누군가의 익숙한 그림을 떠올렸습니다. 제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꽃 모양을 보시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뭉크(Edvard Munc)의 <절규(THE SCREAM)>라는 그림입니다. 제가 이 그림을 알게 된 것은 학창 시절 미술 시간에 아주 낭만적이고 멋쟁이 패셔니시트시었던 미술 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신 덕분입니다.   


뭉크의 <절규>

  

이희숙은 <스칸디나비아 예술사>에서 뭉크의 인생과 예술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뭉크가 이 그림을 그리게 된 결정적 계기와 모티프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뭉크의 말입니다.

     

“나는 두 친구와 길을 걸었다. 태양이 지고 있으며, 나는 멜랑콜리의 기미를 느꼈다. 갑자기 하늘은 피 같은 레드로 변했다. 나는 멈추어, 길 난간에 기대었고 죽은 자처럼 피곤했다. 나는 블루 블랙의 피오르드와 도시를 넘어 피처럼 불타는 구름을 보았다. 친구들은 계속 걷고 있었고 나는 거기서 전율을 느끼며 서 있었다. 나는 자연을 꿰뚫은 큰 목소리의 절규를 느꼈다.”  

   

헬러는 그의 책 「Edvard Munch : the Scream(1973)」에서 “얼마 동안 뭉크는 석양의 기억들을 그리기 원했다. 피 같은 레드. 아니, 그것은 실제 응고된 피였다. 그러나 누구도 뭉크가 경험한 같은 방법으로 볼 수가 없다. 뭉크는 자신의 석양에 아프고 그것이 얼마나 그에게 불안을 주었는가를 이야기했다.”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뭉크는 이 그림에서 ‘열린 입과 눈꺼풀이 없는 눈’을 통해 우리에게 이 남자는 ‘지옥의 죄인’임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자연의 위대한 힘과 그에 따른 고통스러운 인간 반응을 창조시켰습니다.   

  

저는 광대나물에서 바로 뭉크가 표현한 불안과 공포, 그리고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고통을 느끼는 한 사람의 상징적인 모습을 보았습니다. 마치 '지옥의 죄인'처럼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제 모습을 바라보는 것 같아 동질감을 느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통을 없앨 희망조차 잃어버리고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제 모습처럼 처량하게만 느낍니다.

         

시각을 돌려 이 꽃 이름인 '광대'와 관련하여 우리나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조선 시대 예인들의 집합인 남사당패는 여러 가지 놀이를 했습니다. 풍물(농악)·버나(대접돌리기)·살판(땅재주)·어름(줄타기)·덧뵈기(가면극)·덜미(인형극, 꼭두각시놀이) 들을 공연했습니다. 가(歌)∙무(舞)∙악(樂)을 곁들인 연희를 통해 파계승이나 타락한 양반을 풍자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관객들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을 형성하는 광대 무리입니다. 하층민인 광대의 한과 멋, 그리고 기예를 떠올리게 하는 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잡초처럼 취급받던 광대들의 삶과 연결한 배형준의 <광대나물꽃>이 눈에 띕니다.     


     

논, 밭두렁에서

잡초 취급을 당하고

일찍 피었다고 서러워하지 말게나     

무시당해 서럽다고

좌-악 펼친

짧은 치마 위에 빙그르르

광대까지 불러 살풀이를 해야겠는가

선구자는 늘 외롭고 힘든 길이라네     

그대가

소리 없이 봄을 부르면

봄맞이꽃 냉이꽃 별꽃 꽃다지

노랑 민들레가 봄의 노래를 합창하고

꽃등에도 나들이를 시작한다네     

누가

꽃이 작다고 꽃이 아니라 하던가

비록 꽃은 작아도

달콤한 꿀이 있어 개미도 사랑을 전해주고

무엇보다 그대의 가슴은

인생의 그윽한 향기가 풍기고 있으니

보아주는 이 없다고 외로워하지 말게나

그대보다 못한 나그네가 지천이라네

     - 배형준, <광대나물꽃>   

       

이 꽃은 서양의 어릿광대 목에 두르는 넓고 둥근 것과 비슷하다고 하여 ‘광대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꽃의 모양이 코딱지 모양과 같다고 하여 ‘코딱지나물’이라는 다른 이름도 있습니다. 입술 모양이라 하여 '순형화(脣形花)'라고 달리 부르기도 합니다. 배형준의 시처럼 씨앗에 향기가 있어 개미를 불러 모으며 개미가 그 씨앗을 실어 집으로 돌아가다 이리저리 떨어뜨려 번식을 하기도 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정말로 광대를 닮은 것 같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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