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캅 황미옥 Jul 27. 2024

마지막은 있다

예설이와 함께 양부대 83병동에 있습니다. 어제 퇴근하자마자 예설이 입원할 가방을 챙기고, 책가방에 제가 필요한 짐을 넣었습니다. 갈아입을 여벌 옷과 책, 노트, 블루투스 키보드까지 챙겼습니다. 아침마다 천천히 읽고 있는 <인생 수업> 책과 박완서 작가님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를 가져왔습니다. 예설이와 한 침대에서 같이 자서 불편하다고 말하는 예설이지만, 제 곁에 누워서 잘 자더라구요. 아침이 되니 살짝 열이 오르는 예설이와 피검사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를 뽑아야 밥을 먹습니다. 기다리면서 글씁니다.


<만약고교야구여자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책의 주인공 미나미는 야구부 매니저로 활동하면서 드러커의 매니지먼트 책을 읽고 야구부에 적용합니다. 매니저로 활동하면서 미나미는 진지함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저자를 통해 저의 진지함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진지함은 필요할까? 너무 진지해도 힘들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해봤구요.


매일 일상은 이어지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빈자리는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엄마의 빈자리는 그냥 계속 비어있었습니다. 식사를 하루 종일 하지 않았을 때 느껴지는 허기처럼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엄마가 떠난 뒤로 제가 바라보는 세상은 이 전과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왜 달랐을까요. 저는 똑같은 사람인데요. 제 마음의 상태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독하게 외롭고 쓸쓸하다고 느낀 것도 있었고, 반대로 엄마와의 마지막순간들은 저에게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엄마는 가르쳐주셨어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 마지막이 있다는 사실을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 마지막을 향해 저는 걸어가고 있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요.


저의 마지막 어린이날에 엄마와 함께했던 소중한 순간들이 멈추어 있습니다. 예빈이 예설이와 함께하는 어린이날마다 어린이로 돌아가 저를 추억해보곤 합니다. 저는 다 큰 어른이 되었지만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볼 수 있음에 감사해집니다.


모든 것은 마지막이 있습니다. 예설이가 치료하는 백혈병 치료 역시 끝이 있습니다. 치료과정에서 만나는 환우가정들과의 만남 역시 마지막이 있습니다. 마지막이  있어서 만남은 아름다운게 아닐까요. 무엇이든 끝이 있는 것은 결이 다릅니다. 예설이 몸에 찾아온 바이러스 역시 마지막이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 오늘 입원했던 순간을 떠올렸을 때 오늘이 열이 나서 입원한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의 의미를 새기면서 토요일 하루를 예설이와 함께 시작합니다. 아자자!!!



매거진의 이전글 양부대 소아 응급실 & 입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