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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에서 울다

by 황미옥

오랜만에 백혈병 환우회 독서모임 '쉼표'에 참석했다. 이 모임에 계신 분들의 이야기는 내게 항상 여운을 남겨준다. 그 여운 덕에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내가 가진 그릇의 크기를 조금씩 키워준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아마도 삶과 죽음에 대해 겪어본 분들이고, 슬픔보다는 즐거움을 택하는 삶의 태도 때문일것이다. 독서모임을 리드해주시는 문 선생님은 여전히 잘 이끌어주셨다. 마치내가 매월 참석했던 것처럼 편안하게 이야기를 듣고 올 수 있었다.

오랜만에 뵈었던 분중에 김 선생님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H마트에서 울다>를 읽는 내내 엄마 생각을 했다. 항암치료로 머리가 없었던 엄마의 모습, 독한 항암약으로 점점 말라가는 엄마의 몸, 퇴원해서 엄마가 나에게 챙겨준 마지막 어린이날 선물, 퇴원 후 재발되어 입이 돌아가고 반신이 마비가 되어 몸을 잘 움직일 수 없었던 엄마, 아무것도 먹지를 못해 배에 구멍을 내었는데 "괜히 했다"며 너무 아파하던 엄마의 모습, 귀신이 보인다며 말하는 엄마의 모습, 큰일도 아닌데 정을 때려는건지 매일 나를 야단치던 엄마, 흰 천 밑에 주검이 된 엄마의 마지막 모습까지. 그 외에 엄마가 아프기 전에 너무 짧은 시간이었지만, 뉴욕에서 엄마와 함께했던 순간 순간들이 떠올랐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슬펐는데 김선생님은 엄마를 잃은 사람들보다 한인타운에서 고립되어가는 한국사람들에게 더 마음이 갔고, 미국 생활을 생각나게 하는 "재밌는" 책이라고 하셨다. 왜 재밌는 책이라고 말하셨을까 궁금했는데 모임 끝무렵에 슬픔보다는 즐겁게 긍정마인드로 살아가시는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선 선생님은 어떻게 저자가 이겨내고 인생을 만들었는지 궁금해하며 책을 끝까지 읽으셨다고 했다. 저자의 어머니는 남자친구인 피터에게 자신이 아픈 소식을 알리며 딸을 잘 돌봐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있다. 선 선생님은 자신의 딸이 피터와 같은 남자를 고를 수 있는 능력, 피터 같은 사람을 알아볼 줄 아는 눈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선 선생님의 딸도 엄마를 잃는 것과 같은 시련이 닥쳐도 잘 커갈 수 있도록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있게 도와주어야겠다고 하셨다. 책 읽는 내내 딸의 관점을 떠올리는 모습을 보면서나를 돌아봤다. 내가 죽고나면 예빈이와 예설이는 어떻게 살아갈까? 라고 나도 나에게 묻게 되었다. 나보다는 덜 방황했으면 하는 마음과 슬픔보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저자 미셸은 엄마와의 추억을 음식 이야기를 많이 풀어낸다. 독서모임에서도 추억의 음식을 말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참 신기하게도 엄마와 나는 크게 떠오르는 음식이 없었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더니 엄마는 음식 솜씨가 없었다. 엄마는 나에게 식사를 차려주었고, 나는 잘 먹었다. 이런 엄마와 나의 관계가 나와 큰 딸 예빈이와의 관계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에게 요리를 요구하지 않는 큰딸, 간장계란밥이면 된다는 큰딸. 친정엄마보다는 오히려 시어머니가 반찬을 해주신 게 더 생각났다. 내가 좋아하는 호박죽을 한 번씩 한 통에 넣어서 주신다. 두 딸을 낳고 한 달 동안 몸조리할 때도 미역국 한 솥을 끓여서 매일 주셨을 때도 질리지도 않게 먹었다. 결혼생활 15년동안 시어머니와 음식에 대한 추억은 많이 떠올랐다. 우리 딸들에게 음식을 잘 해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냥 너무 무리하지말고 어머니께 음식을 좀 배워보는 게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책의 저자는 엄마를 잃고 난 뒤 한국 음식을 요리하면서 엄마를 되살려내고, 자기 자신으로 바로 설 수 있었다고 했다. 나는 엄마를 잃고 난 뒤 두 딸의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면서 엄마를 되살려내고 내 자신으로 바로 설 수 있었다. 예설이가 항암치료 받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엄마가 치료받을 때 얼마나 힘들었을지 다시금 알아갈 수 있었다.

저자는 진공상태처럼 텅빈 자신 안에 "음악"이 훅 밀고 들어와 공허를 채웠다고 했다. 나는 음악들으면서 타자기를 두드리며 글 쓸 때 불필요한 감정을 쓰레기통에 넣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뭔가 내 안에 있는 감정을 소비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졌다. 글쓰기는 어른이 되어 본격적으로 쓰게 되었지만 10년 가까이 쓰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내게는 중독성 있는 행위인 것만은 확실하다.

죽음을 목격한 뒤에는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이 질문에서 멈췄다. 저자는 엄마와 자주 갔던 과수원으로 갔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 엄마가 지냈던 병원 앞을 서성였다.

엄마와 추억할 수 있는 마지막 장소였다. 남편과 뉴욕 여행갈 때도 그 병원 앞에 가봤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병원에서 생활할 때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의 투병, 때 이른 어머니의 죽음, 무거운 상실의 시간을 견딘 딸, 음식을 만들고 나누고 추억하며 자기 치유했던 순간들,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소통하며 함께한 시간을 통해서 저자는 자기 정체성을 찾아갔다.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가면서 나 역시 나의 화살표는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여전히 인생 여정이 진행중이다. 엄마를 여전히 그리워하며.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지만, 엄마가 내게 준 것이 많다.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잘 품어서 내 딸들에게 그 사랑을 잘 이어서 전해주어야한다. 엄마와 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귀한 책이었다.

#H마트에서울다 #미셸자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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