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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캅 황미옥 Dec 07. 2022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이자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 타인의 슬픔이다


1. 해설되지 않는 뒷모습

미야모토 테루 <환상의 빛> 중에서 p55


말하자면 뒷모습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 알게 된다. 인간의 뒷모습이 인생의 앞모습이라는 것을.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는 인간은 타인의 뒷모습에서 인생의 얼굴을 보려 허둥대는 것이다.


2. 액자 속의 진정성

이준익 <동주> p55


몽규의 관심은 메시지의 효율적 전달을 통한 행동에의 촉구에 있고, 동주의 관심은 문학을 통한 인간 내면의 표현과 더 깊은 차원의 소통 가능성에 있다. 전자에게 후자는 나약해 보이고 후자에게 전자는 편협해 보인다.


3. 사물성, 사건성, 내면성

사진적인 것과 문학적인 것 p114


작은 결론


인간은 사건의 진실에 응답하면서 그를 통해 인생의 근본 불음에 대한 각자의 답을 제출하고, 문학은 그것을 음미하면서 삶의 의미를 생각한다.


둘째, 왜 내면성인가. 내가 문학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내면의 탐구에 가장 유능한 장르라고 믿기 때문인데, 소설이 파괴되는 내면성 혹은 구제되는 내면성을 시간의 축 끝에 이르러 보여줄 때, 어떤 사진은 내면성을 수호하기 위해 시간을 멈추려는 불가능한 노력 그 자체를 보여준다.


4. 왜 소설을 읽는가

김숨, 윤이형, 백영옥 p170-171


나는 체호프를 게걸스럽게 읽는다. 그의 글을 읽으면 삶의 시작과 종말에 대해 무언가 중요한 생각을 곧 만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단은 출생과 죽음이겠지만, 더 나아가 기쁨과 슬픔, 소유와 상실, 에로스와 타나토스, 만남과 이별 등등이기도 한 것이다. 나는 이런 것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아는데 정작 그런 것들을 가장 잘 모른다. 그러니 소설을 읽는다. 무언가 중요한 생각을 곧 만나게 되리라 기대하면서.


5. 우리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p175


쓰기에 대해.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매일 쓴다고 해서 반드시 글을 잘 쓰게 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더 나은 인간이 된다는 사실만은 장담할 수 있다.


글을 쓰는 행위는 자신을 긍정하는 일인 것이어서 그 덕분에 우리 존재가 실제로 바꿀 수 있다는 것 등의 그의 체험적 결론이다. <<우리가 보낸 순간, 마음산책 2010 소설가 김연수>


6. 시, 정답 없는 질문

릴케, 하나 P 264


즉, 진정한 삶을 사유한다는 것은 곧 '삶의 의미'를 사유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더 줄이면 이렇다. '왜 사는가?' 요즘 인기 있는 질문은 아니다. 의미가 아니라 효율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효율을 위한 '노하우'이지 의미에 관여하는 '노와이'가 아니다.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 대목에서 장렬히 실패하기 위해서다. 자기계발서가 '노하우'를 알려줄 때 인문학 서적은 '노와이'를 알려주지 못한다. 인문학은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에는 원래 정답이 없다.


7. 이토록 뜨거운 태도들

이상과 김수영 P305-306


제게는 이상과 김수영이 삶과 문학을 대하는 태도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김수영의 태도를 한 마디로 '정직'이라 부를 수 있을 겁니다.

"거짓말이 없다는 것은 현대성보다도 사상보다도 백배나 더 중요한 일이다."

"진지성이다. 포즈 이전에 그것이 있어야 한다. 포즈의 밑바닥에 그것이 깔려 있어야 한다."


그래서 김수영은 포즈를 버리고 자신의 옹졸함과 폭력성을 시로 썼습니다. 자기 자신을 폭로하는 시 쓰기가 읽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율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을 입증한 사람이 바로 김수영입니다.


반면에 이상은 포즈가 거의 전부인 사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수영이 싫어한 그런 의미의 포즈가 아닙니다. 자신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 그것이 이상이 생각하는 포즈의 의미였습니다. 그냥 살아지는 대로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배역의 성격을 창조해나가는 듯 인위적으로 연기하는 삶.


8. 동춘동 디오게네스의 초상

김영승 <흐린 날 미사일> 316


...

등꽃은

바닥에서부터 지붕까지

수직으로 이어져

꼿꼿한 것이다


허공의 등나무 덩굴이

반달을 휘감는다


급한 일?

그런 게 어딨냐


<흐린 날 미사일> 전문, <문장 웹진> 2010년 6월호

 

매인 데가 없는 천진함, 그 천진한 눈에 비친 세상의 투명함, 근거 없어서 더 빛나는 자부심 등이 이 마지막 구절에 응축돼 있다.


회법은 가볍지만 질문마저 그렇진 않다. 작게는 한 개인의 생에서, 크게는 한 국가의 경영에서, 과연 무엇이 "급한 일"인지 이 시는 묻는다. 우리에게 가장 급한 일은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급한 일이 무엇인지 아는 일이 아닐까.


9. 넙치의 온전함에 대하여

사랑의 논리학을 위한 보충 P331, 338-339, 340-341


욕망과 사랑의 구조적 차이를 이렇게 요약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은 욕망의 세계다. 반면,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은 사랑의 세계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줄게요>, <정확한 사랑의 실험>


영화 <제리 맥과이어, 케머런 크로, 1996>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나를 채우는 '요소'가 아니라 나를 세우는 '구조'여야 한다. 나는 당신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당신 속에서 온전해진다. 결여는 여전히 있되 그 결여가 더는 고통이 되지 않는, 온전한 사람,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나를 그런 사람이 되게 한다.


상대방이 가진 것에 매혹되면서, 관계가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그 관계가 상대방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이해로 돌이킬 수 없이 깊어질 때에만, 저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사랑은 나를 '완전하게' 만들지는 못해도 '온전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10. 인간의 디폴트에 대하여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 <이것은 물이다> P370


일상과 그 반복이야말로 우리 인생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면, 그것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느냐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닌가?


흔히 인문학은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월리스에 따르면 그것은 곧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대한 '선택'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방법이란 곧 선택하는 방법이라는 것. 어떤 현실과 맞닥뜨렸을 때 이를 다르게 생각할 수 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다른 생각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늘 같은 방식으로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상 생각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늘 같은 방식으로 생각한다고? 그렇다. 월리스는 이를 "디폴트 세팅", 즉 '초기 설정'이라고 부른다.



11. 문학에 적대적인 세계 386


내게 연재의 간격과 사유의 깊이는 반비례 관계였다. 일주일마다 쓰는 글에는 딱 일주일 생각한 만큼의 깊이가 담기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종류의 글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자주 빨리 쓰는 분들 중에는 내가 한 달을 생각해도 가닿을 수 없는 깊이의 글을 써내는 이들도 있다.


나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내 글을 말에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해왔고 내 말이 글에 가까워지기를 소망해왔다.


"작가는 누구에게서나 상처를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다.

아무리 상처가 영혼의 본질이라 하더라도 문학이 상처의 기록에 그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의미의 위기> 2007




책에서 와닿은 문장들이 많았습니다. 귀접이를 통해 접어두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접어둔 부분만 다시 읽었습니다. 다시 와닿는 것만 정리하니 11개로 압축되었습니다. 이 책은 한국 백혈병환우회에서 주최하는 독서모임 쉼표 11월 선정도서입니다. 이번이 두 번째 참석하는 모임입니다. 책을 보니 저자의 여러 생각들을 모은 것으로 보입니다. 글 마지막에는 글을 쓴 날짜가 적혀있었습니다. 이 책 덕분에 저는 문학이 무엇인지, 소설이 무엇인지, 문학평론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제가 가장 와닿았던 문장을 소개합니다.


동춘동 디오게네스츠의 초상

김영승 <흐른 날 미사일> P316-317


&


넙치의 온전함에 대하여

사랑의 논리학을 위한 보충 P331


이렇게 두 파트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지금부터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시의 마지막 부분

"급한 일?

그런 게 어딨냐"


이 부분에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제가 서른아홉까지 살면서 제가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추진했던 일들을 떠올려봤습니다. 그 일들이 급한 일이었냐고 저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


저에게 급한 일이 무엇일까요?

빠르게 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게 뭐지? 공부가 급하나?

내 일을 마스터하는 것이 급하나? 성장하는 것이 급하나?

글 쓰는 것이 급하나? 책 많이 읽어내는 것이 급하나?

뭐가 급하지? 내 인생에서는 무엇이 급하지?...


제가 좋아하는 두 분이 떠오릅니다. 두 분 다 외국인이시네요. 한 분은 마인드계의 밥 프록터. 한 분은 현대 경영학 창시자 피터 드러커. 두 분을 저는 좋아합니다. 그분들이 출간하신 책들을 많이 읽지는 못했습니다. 한 권을 제대로 읽기에도 1년이 족히 걸렸거든요. 지금도 읽고 있고요. 밥 프록터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원하는 것을 욕망으로 바꿔야 한다고도 합니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가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알려줍니다. 반면에 피터 드러커는 책임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 성공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하기보다 사람들에게 필요로 하는 사람(Useful)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문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실제, 실천(Practice)으로 옮기는 것을 가장 중요하다고 하시고요.


이 두 분의 가르침 속에서 저는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하고 싶고, 되고 싶고, 가지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책임감을 가지고 마땅히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하는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차에 작년 제 생일날인 8월에 남편이 피터 드러커의 전 도서와 그의 도서를 대부분 번역하신 이재규 씨의 책을 모두 중고로 생일 선물로 사주셨습니다. 성공보다는 유용한 사람이 되자고 선택했거든요.


How to be successful?

How to be useful?


후자를 선택했고, 저는 <피터 드러커 자서전>, <매니지먼트>를 1년 동안 반복해서 읽으면서 학습하고, 강의하면서 피터 드러커를 점점 더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제 삶의 정의도 이 해보면서요. 그러던 와중에 올해 5월 제가 좀 아팠습니다. 어지럼증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직장도 병가 내고 쉬었습니다. 각종 검사 끝에 뇌 쪽에 특이사항 발견된 것이 없어 한의원 치료와 심리상담을 몇 달간 받았습니다. 이어서 둘째 딸이 8월에 갑작스럽게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이가 치료한 지 3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아픈 아이를 보고 있으면 아이를 케어하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어딨냐는 생각이 듭니다.


예설이가 힘든 치료를 이겨내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아이가 어려도 강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어쩔 때는 너무 의젓하게 이야기해서 저보다 어른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저의 모든 활동이 예설이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더 앞서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저 안에 있는 욕망이 사랑보다 앞서지는 않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넙치의 온전함에 대하여 글이 제일 와닿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은 욕망의 세계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2주 전쯤 예설이가 열이 나서 양산부산대 응급실에서 진료받고 귀에 중이염이 생겨 염증 수치가 높아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입원 전에는 늘 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가슴 쪽에 시술한 케모포트에 수액을 연결해야 하고, 피검사를 해야 합니다. 엑스레이도 찍어야 하고 소변검사와 코로나 검사까지도요. 아이가 힘들어합니다. 특히 응급실은 불이 하루 종일 켜져 있어 잠자는 아이가 계속 깨요.


예설이와 코로나 검사하고 격리병동으로 옮겨졌어요. 아이를 재우고 짐 정리하려고 허리를 잠깐 방향을 바꾸는데 허리가 찍.... 하는 겁니다. 그때부터 허리를 아예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통증이 너무 심해서 눕지도 앉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예설이는 느리게 움직이는 엄마에게 불평 하나 없이 기다려주었습니다. 속이 매스꺼워 구토를 하는 상황에서도요!!! 그렇게 저는 남편과 보호자 교체를 하고 며칠 동안 집안을 기어 다니다가 병원에서 CT, MRI 촬영하고 난 후에 디스크가 터진 것을 알게 되었고 허리 신경성형술 시술하고 2주째 회복 중에 있습니다.


저는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저가 휴직하고 예설이 케어만 하면서 점점 황미옥이라는 사람은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쯤 infinite you라는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강의 듣고 나서 자기 암시 문구를 만들어봤습니다. 두 번째로 만든 카드에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 마음속에는 집중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평온한 마음. 이 세가지만 존재합니다."


이 문장을 매일 말도 해보고 품었습니다.

예전에는 독서하는 시간, 책 읽는 시간을 보통 정해서 했습니다. 지금은 예설이가 잘 때 합니다.


예설이가 무엇을 가지든 가지지 않든 저는 한결같이 예설이를 사랑합니다.


저, 황미옥은 작가든, 경찰이든, 매일 책을 읽는 사람이든, 매일 글 쓰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저를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저의 욕망을 사랑으로 바꾸는 작업을 가르쳐주려고 예설이 곁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저를 완전하게 만드는 일보다 저를 온전하게 해 줄 수 있는 것들에 마음이 갑니다. 책을 만나 욕망과 사랑에 대한 저만의 생각 정리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이 책을 읽고 한국 백혈병환우회 주최하는 쉼표 독서모임 줌으로 참석했습니다. 환우분들과 2시간 동안 토론을 하면서 나누었던 대화를 며칠간 생각해봤습니다. 인상적인 질문 몇 가지를 나눠볼까 합니다.


❣️나 타인의 슬픔에 얼마만큼 공감하는가?

❣️나는 왜 타인의 슬픔에 공감해야 할까?


저는 제가 이제까지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5년 전쯤 지구대에서 근무했을 때 저희 팀에 아이가 아파서 서울로 매번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녔던 직원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최근에 아팠던 게 소아암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벌써 5년이 지난 일이고, 그 아이는 완치 판정을 받았을 것입니다. 일선 현장을 같이 뛰면서 가정폭력 현장에서도 흉기를 들고 있던 가해자 집 앞에서 같이 총기와 장비들을 들고 긴장감으로 함께했던 동료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회식자리에서도 아이가 어디가 아픈지, 치료는 잘 되는지 묻지 못했습니다. 제가 같은 일을 경험하고 있다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후회되었습니다. 그때 조금 더 마음을 열지...


예설이가 치료받고 있습니다. 지인들이 아이는 잘 버티고 있는지 카톡, 전화가 오시는 분들도 있고, 묻고 싶지만 제가 불편할 까 봐 연락 오기를 기다렸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제가 그 직원과 같은 일을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그 직원의 마음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 말은 즉, 같은 일을 겪어야만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위로는 마음이 쌍방향으로 통할 때 잘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공감할 수 없는 아픔이라면, 위로보다는 차라리 설거지를 해주는 편이 낫다는 말 공감합니다. 꼭 설거지라 아니라도 그 사람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돕는 것이 필요합니다.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평소에 소통이 필요합니다. 평소에 소통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뜬금없이 연락 와서 걱정해준다고 해서 마음이 가지는 않으니까요. 뒤집어 말하면, 저도 찔립니다. 제가 평소 연락도 잘하지 않으면서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을 알고 불편한 제 마음 편하고자 연락했던 적이 떠오르거든요.


토론할 때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어떤 분은 책의 핵심 내용이 "공부"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곱씹어봤습니다. 사람마다 슬픔을 다르게 느낍니다. 상황도 다르고, 슬픔도 다릅니다. 똑같은 슬픔은 없을 거 같습니다. 비슷한 상황으로 보여도 말입니다. 공부란 책을 읽고 깨우치는 공부도 있겠지만, 사람 대 사람이 대화하면서 알아가는 과정에서 깨닫고 배우고 깨우치는 공부도 분명 있을 겁니다. 제 생각에는 슬픔에 대한 공부란 모든 것을 포괄적인 공부로 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Think And Grow rich>라는 영화는 부자란 돈이 많은 부자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슬픔 또한 우리의 오감처럼 듣고, 말하고, 느끼고, 냄새 맡고, 느끼는 것 모두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슬픔에 대한 공부는 준비 시작하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살면서 매일 매 순간 느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저는 오늘 어머니가 고등 엄빠 프로그램에서 백혈병 치료 중인 4살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잠시 플릭스에서 시청했습니다. 아이에게 밥 한 숟갈 먹이기 위해서 다른 엄마 집에까지 실례를 무릅쓰고 데려간 엄마와 아이를 보면서 엄마의 기다려주는 마음, 엄마의 미소를 봤고, 엄마의 꾹 참고 있던 눈물도 봤습니다. 으로 시청한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저는 저와 비슷한 슬픔을 목격했고, 공감했습니다. 작은 한 부분을 공부했습니다. 슬픔에는 슬픈 슬픔도 있지만 아이가 밥을 먹어주어 너무 좋아서 흘리는 눈물도 있지. 맞지. 하고요.


이렇게 살면서 하나씩 걸음마하듯이 슬픔에 대해 학습하고 배워가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알아가고 있습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이런 공부가 쌓일수록 저도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성숙도가 나아지지 않을까요.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함께 가야 멀리 가듯이 공감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타인의 슬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닙니다. 저의 일입니다. 공부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나는 왜 살아남았을까?


이 질문을 답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분은 자신이 떠난 뒷자리를 깨끗하게 하고 싶어서 자신이 죽지 않은 이유라고 하셨습니다. 저에게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맨해튼 쌍둥이 건물이 있던 곳에서 내가 죽지 않고 살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저는 2001년부터 2022년까지 저에게 주어진 삶의 기회이기 때문에 저에게 주어진 제 삶을 정말 열. 심. 히. 살았습니다. 문득 고 이영권 박사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황미옥 씨, 삶은 열심히만 사는 게 아니라, 삶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도대체 전략적으로 사는 것이 무엇일까요?

더 재미있는 사실은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 책에 보면 스트렝스 파인더로 진단을 받는 것이 나옵니다. 저도 검사해봤습니다.


1위 전략

2위 책임

3위 자기 확신

4위 연결성

5위 개별화


전략이 없다던 저에게 이 진단에서 저의 강점이 1위가 전략이라고 합니다. 전략의 뜻을 살펴보니 이렇습니다.


"전략 테마는 혼돈에서 벗어나 최선의 길을 찾게 해 준다. 이 테마는 가르친다고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이는 독특한 사고방식이며, 세상 전반에 대한 특별한 시각이다.


이런 특별한 시각 때문에 전략 테마의 소유자는 복잡하게 보이는 혼돈 속에서도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신은 이런 패턴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대안과 시나리오를 생각해본다.


'이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저렇게 되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라고 반복해서 자문하다 보면 다음에 일어날 일을 예측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당신은 자신에게 장애물이 될 만한 것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당신의 눈에는 각각의 길이 어디에 이르는지 보이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선택을 할 수 있다. 목표 성취에 도움이 안 되는 길, 저항에 부딪칠 길, 혼돈의 안개로 이어지는 길은 선택에서 제외한다. 이렇게 추려내는 과정을 통해 결국에는 당신이 원하는 경로,, 즉 당신이 선택한 전략에 도달한다. 튼튼한 전략으로 무장한 당신은 이제 '공격 앞으로!'를 외치며 전진한다. 한마디로 전략 테마는 현실에서 여러 가상 상황과 대안을 세우고 그중 가장 좋은 전략을 선택한 후, 목표를 향해 전지 하는 것으로 발현된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시어머니가 떠오릅니다. 제가 올해 5월 어지럼증으로 머리 MRI 찍고 나오는 길에 전화드렸습니다. 이렇게 말하시더군요.


'옥아, 미리 걱정하지 말고, 딱 50살까지 딸내미들 다 키울 때까지만 글 쓰지 말고, 얘들만 키우자. 엄마랑 약속하자. "


어쩌면 어머니는 알고 계셨던 게 아닐까요. 제가 상황들을 매번 로드맵처럼 그려본다는 사실을요!


20년 넘게 열심히 살아온 결과 저는 <열. 심. 히.>라는 단어에서 <전. 략.>이라는 단어로 넘어가는 느낌 받습니다.

앞으로 3년 동안 이전의 저와는 다르게 쉼을 가질 것입니다. 목표를 잡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예설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없애지 않을 것입니다. 예설이와 시간 보내고 남는 시간 저의 일을 할 것입니다. 쉼에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제 삶의 전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밑바탕을 천천히 아주 느린 속도로 잘 쌓고 다듬어서 완성되면 그 방향으로 쭉 나아갈 것입니다. 휴식,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으르게 나태하게 보내는 날의 연속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마음속에 바쁨, 조급함이 없다는 말이지, 게으름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집중하는 마음과 쉼이 같은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휴식, 쉼 = 집중하는 마음 = 사랑하는 마음 = 평온한 마음


쉼은 결국 시간을 정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매 순간이 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쉼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쉼 있게 집중하는 마음으로 평온한 마음으로 한 발짝 나아가는 것일 테니까요.


제가 2001년 9월 11일 살아남은 이유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저의 강점인 전략을 가지고 깊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의 질병, 둘째 예설이의 질병 덕분에 저에게 우선순위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모든 일을 폐기했습니다. 첫 출발선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서 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백지상태에서 진지하게 묻습니다. 오늘 저에게 던진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의 맡은 조직에서, 가정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수행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첫 번째 과제와 의무는 무엇인가?"

"조직, 가정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여기지 질문을 글로 써봤습니다. 남은 질문은 시간이 허락하면 조금 더 써 보기로 하겠습니다.




❣️나는 죽기 전에 무엇을 하고 싶은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무엇인가?

❣️본인의 뒷모습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누군가의 기억나는 뒷모습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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