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멈춤의 하루

by 황미옥

병원이다. 수술(?)을 마치고 입원실로 옮겨졌다. 병원복을 건네받는데, 그 색깔에서 괜히 웃음이 났다. 예빈이·예설이 낳을 때 입었던 그 오렌지색 입원복과 똑같아서다.

하루만 있을 건데도 짐은 꽤 많다. 책, 노트, 블루투스 키보드, 휴대폰 거치대, 이어폰, 충전기. 물과 간식까지 빠짐없이 챙겼다. 타이핑하려고 링거 바늘도 일부러 왼손에 꽂았다.

조용한 1인실에 혼자 있으니 기분이 묘하다. 마취가 조금씩 풀리면서 통증이 오지만 참을 만한 정도다. 엉덩이에 주사는 이미 한 대 맞았고, 침대에 앉아 책 읽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으니 간호사 선생님이 와서 묻는다.

“일하세요?”

“아뇨, 그냥 놀고 있는데요^^”

가슴에 물혹이 있어 매년 초음파를 보는데, 이번엔 혹이 1cm 이상 자랐다 해서 조직검사를 하게 되었다. 떼어내는 건 10분도 안 걸렸지만, 사전 설명이 조금 무서웠다.

10만 명 중 2명은 암일 수도 있고, 만약 암이면 재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암…

암…

암…

그 단어는 들을 때마다 묘하게 마음을 쿡 찌른다. 우리는 언제쯤 암이라는 공포에서 정말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문득 스스로가 참 신기하다. 23살 경찰 합격 당시만 해도 책이랑 별로 친하지 않았다. 24살 임용받고 몇 년 지나고 나서야 책과 사랑에 빠졌다. 어느새 16년째 활자 중독자라니, 이건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어제 해영 선배를 만났다. 선배가 들고 온 크레마 전자책 리더기를 보고 나도 홀딱 반했다. “올해 몇 권 읽었는지 맞춰봐라” 하셔서 “30권이요?” 했더니 정답이란다. 와… 10년 전 관광경찰대에서 처음 본 선배는 책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 책 읽는 습관을 갖게 해줘서 고맙다고 하시는데 괜히 뭉클했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책 선물도 많이 했고, 단톡방 만들어 습관 챙기는 것도 오래 했었지.

아무튼, 남은 동백 마일리지로 남편이 크레마를 사준다고 해서 진심으로 신났다.

입원해 있는 동안은 읽고, 쓰고, 생각하고, 톡도 하고, 음악 듣고, 루키스 시즌 4도 봐야겠다.

아참, 빈설이랑 통화하는 것도 빼먹으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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