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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네 Dec 29. 2020

엄마와 한글 공부

기억을 추억하다

지인이 이사 가며 남긴 책들 중 할머니들이 쓴 시집 한 권을 발견했다.

할머니들의 시를 읽고 있자니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났다.

< 성영경 할머니 시 >

할머니도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한다.

나도 할머니가 돼서도 엄마가 그립겠구나.

< 엄마와 한글 공부 >


우리 엄마는 학교에 가본 적이 없다.

까막눈이 부끄러워 불편하게 사시던 엄마가 안쓰러워 한글 공부를 했다.


엄마, 글씨 알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하더라.

-알면 좋지만 늙어가 공부가 되나


엄마보다 더 할매도 글 배운다.

-글씨 보면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다.


하기 싫어서 그렇지. 글씨 쓰기 한 장 하면 500원 줄게.

엄마는 못 이긴 척 서툰 연필을 들고 공책에 삐뚤거리며 글씨를 따라 썼다.


-눈이 침침해가 오늘은 고마 써야겠다...


이후로도 엄마의 공부 진도는 더디기만 했다.

내가 더 잘 가르쳤다면 나아졌을까.

엄마는 자신의 이름 석자와 숫자를 쓰면서 공부를 마무리했다.


그래도 보고 싶은 딸내미들에게 안부전화도 할 수 있게 되고, 버스번호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만해도 엄마에겐 신세계가 된 것이다. 글씨 모를 땐 버스번호를 종이에 적어 다니곤 했으니 그제 좀 편안히 차를 탈 수 있게 된 것이다.


엄마는 6년 동안 누워계신 아버지를 병간호하느라 힘들게 지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이제 좀 쉬나 했건만 5년 만에 엄마마저 아버지 곁으로 가셨다.


엄마가 있을 때는 며칠 만에 오는 전화도 귀찮아 하며 받았는데, 이젠 오지 않을 전화를 기다리며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 거기서 두 분이 훌훌 여행이라도 자주 다니셔요.

우리 언제 꿈에서 또 만나요.


< 성영경 할머니의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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