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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네 Jan 22. 2021

물이 안나와요. 단수6일 체험기

시골에서 만난 북극한파

뉴스에선 연일 기온 이상현상에 대해 보도했다. 북극한파 입니다.


1일차.금요일

체감온도가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지던 지난주 금요일. 주방 물이 나오지 않았다.

실 물은 나와서 다행이다.


2일차.토요일

어라. 믿었던 욕실 물마저 나오지 않았다.

분명 한 방울씩 틀어 뒀는데 그새 얼어버렸다.

받아 놓은 물이 없어서 급하게 생수를 사왔고 아랫집에 가서 큰 프라스틱 통 2개에 물을 받아 왔다. 곧 녹아야 할 텐데 어쩌지.


일단 500리터 물통 세개에 빌려온 물을 채워 놓고 손 씻기. 양치. 세수만 해결했다.

가능한 물을 조금씩 아껴 썼다.

설겆이는 엄두도 못내고 계속 쌓여만 갔다.

화장실은 작은 볼일은 쌓아두고 큰것 타이밍에 물을 붓기로 했다.

암모니아 냄새가 코끝을 찔러 화장실에서 숨쉬기가 불쾌했다.

욕실 창문은 환기를 위해 잠깐 열어 두고 수도관 때문에 잘때는 닫아야 했다.

화장실가기 싫다고 아이들이 아우성쳤다.


3일차.일요일

머리가 가렵다. 고양이 세수하듯 눈코입만 씻었더니, 없는 물을 아껴 쓰느라 발 씻기는 사치이다. 씻을 수 없을 때 더 씻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남편이 줌으로 모임을 해야했다. 이미 기름기로 떡진 머리에 모자를 쓰고 참여하기가 민망해 했다. 차선책으로 뜨거운 물을 끓여 스팀 수건을  만들어 머리를 닦아 냈더니 그런대로 개운하다고 했다.


밥은 먹어야 하니 물을 조금씩 넣고 헹군 뒤 모은 쌀 뜻 물을 재활용했다.

밥그릇을 씻지 못해서 일회용 컵과 나무젓가락까지 동원됐다.

기다린다고 녹을 것 같지 않은 날씨가 계속되니 샤워를 못하게 생겼다.

급한 대로 원정가서 해결하고 왔다.

남의 집 화장실과 싱크대에서 물이 나오는데 그렇게 신기할 수가.

5일차.화요일

야외 수도에서 흘려 놓은 물이 많이 얼어서 남편이 얼음을 깨서 마당에서 녹였다.

녹인 얼음물은 변기물  내리는 용도로 썼다.

물이 없니 얼음이라도 귀해진다.

아랫집에서 여러번 물을 떠다가 최소한의 씻음물로 활용했다. 500리터 물로 세수하고 양치하고 발씻기가 가능했다.

<500리터로 가능한 모든 것>

온수가 나오지 않아서 주전자에 물을 데워서 세숫대야에 채웠다. 찬물을 조금 타서 한 그릇에 담고 막내 얼굴, 아들 얼굴 씻고 세사람의 발까지 씻었다. 너무 알뜰했나.

발을 씻겨줬더니 대접받는 기분이 들어 좋다고 다.


날씨가 조금 풀려서 야외 수도는 난로를 틀어 녹였다. 기분이 좋아서 큰 김장 대아에 2개나 물을 채웠다. 왠지 부러울 것 없이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 또 얼어 버리면 안 되니까 세탁기로 빨래를 두 번 돌렸다.

노출된 수도관은 모조리 보온재로 감쌌다.

작년 겨울에는 별일이 없어 걱정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진짜 추운가 보다.


6일차.수요일

여전히 집안에는 수도관이 녹지 않아서 온수를 쓸 수 없었다. 아이들과 머리감기위해 커피포트에 물을 데웠다. 한 사람 감는데 두 주전자의 뜨거운 물과 찬물을 섞어 큰대야에 담았다.

바가지로 머리에 부어서 두아이를 씻기고 나도 감았다. 머리만 감아도 너무 시원했다.

날씨가 제법 풀리고 오후엔 비소식도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욕실 수도밸브를 살짝 열어 두었다.


이른 저녁을 대충 먹고 쉬는데 어디선가 '쏴아~'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 물소리다. 급히 화장실 문을 열었더니 얼음이 끼어 덜덜거리는 수도관을 지나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왔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 가족모두 모여서 기쁜 함성을 질렀다.

 "물이다!!"



한파로 이 얼어 단수가 된 지 1주일 만이었다. 수도계량기는 얼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5일 정도 언 것은 어놓은 수도관을 파서 다 녹여야 한다는 업체의 견적은 100만원이었다.

손을 쓰지 않으면 봄까지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는 엄포를 듣고 마음이 간절했다. 돈이 많이 드니까 딱 1주일만 기다려보고 안되면 기술자를 부를 터였지만 다행히 물이 나와 준 것이다.

 물, 공기, 밥

없으면 불편하고 살 수 없는 것들. 더불어 함께 고생한 가족이 있었기에 짧은 시간이지만 잘 넘어가게 된 것 같다. 가족은 어려울 때 빛을 발하는 관계라는 걸 느꼈다.


물이 참 소중하구나. 기후변화-지구온난화 모두 멀게만 느껴졌던 이야기들이 이젠 코앞에 다가왔음을 경험했다. 

너무 편해서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것들이 소중한 선물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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