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시골 사색
치타를 처음 만난 건 6년 전이었다.
처음 집마당 잔디밭을 기웃거리던 아기 고양이였다. 겁도 많아 인기척이 나면 쏜쌀같이 사라졌었다.
고양이와 사귀고 싶어서 맛있는걸 몇 번 주었더니 강아지처럼 쫄래쫄래 따라다녔다.
말로만 듣던 사교성 좋은 길고양이였다.
시골에는 길고양이가 많다. 어디서 밥을 잘 찾아 먹나 보다. 텃밭에 똥을 싸는 것 외엔 도시처럼 별다르게 미움받을 일이 없는 것 같다.
그냥 그들은 그들의 삶을 우리는 우리 삶을 더불어 살뿐이다.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는 듯하다. 고양이가 있으면 쥐가 떠난다 하여 일부러 장에서 사 와 키우는 분도 더러 계신다.
우리 집 마당을 제집처럼 놀다가는 시골길 고양이는 이름이 있다.
치타처럼 머리가 작고 잘생긴 모습에 내가 '치타'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우리의 인연이 벌써 6년이라니! 시간도 참 빨리 갔다. 2년 이상은 코로나 여파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기에 마당에서 치타와 마주치는 일은 더 잦았다.
특히 빨래를 널 때마다 다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만나기만 하면 벌러덩 눕곤 했다.
무뚝뚝한 내가 마음을 연 걸 보면 치타는 필시 대단히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중 작년 쥐덫에 발이 걸려 한쪽 다리를 못쓰게 되었다. 아픈 발을 절뚝대며 마당에 들어왔을 때 너무 마음이 아팠다.
피도 많이 났고 다리가 이미 괴사 되어 잘라야 한다고 했다. 치료하는 데 너무 큰 액수가 들어서 주사만 몇 번 맞고 연고를 발라주고 소독해 주고 밥 주는 것 외엔 해줄 것이 없었다.
날씨가 추워서 굶어 죽을까 싶어서 일주일정도 창고에 두었다. 다행히 잘 먹고 조금씩 기력이 회복되었고 어느 날 다시 사라졌다.
한동안 치타는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도 되고 보고 싶기까지 했다.
몇 주가 지났을까. 날이 풀리고 어느 날 절뚝거리며 치타가 나타났다. 무척 반가웠다.
그해 여름엔 다리염증이 덧나서 고름을 뚝뚝 흘리고 다녔다. 짠한 마음에 항생제도 몇 번 줬는데 씩씩하게 잘 견뎌냈다.
가끔은 문 앞에 출근 도장을 찍고 밥 달라며 당연한 듯이 우는 녀석이 귀찮기도 했었다.
줄게 없다며 돌아설 때도 아쉬운 듯 드러누워 시위하는 모습이 세상 처세를 다 아는 것 같았다.
그럴 땐 마지못해 국멸치 몇 마리라도 결국 나오고야 만다는 경험을 쌓은 걸로 보인다.
오늘도 넌 문 앞에 와서 야옹 거리며 인기척을 낸다. 살기 위해서 너의 존재를 알리고, 밥을 당당히 먹고 간다.
시골은 서로가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생명을 존중한다. 멧돼지나 고라니가 온다고 해서 죽이지는 않는다. 그저 농작물에 들어가지 못하게 울타리만 칠 뿐이다.
따뜻한 햇살을 쬐며 한가로운 널 보며 배운다. 큰일을 당해 아파도 잘 견뎌내면 또 살아낼 수 있구나. 잘린 다리가 멀쩡해 지진 않지만, 상실의 한편을 용기로 단련해 조금은 불편해도 살 수 있다는 생명의 위대함을.
참, 나만 아는 이야기지만 나의 글다운 첫 이야기의 주제도 바로 이 고양이였고, 우리 동네 집집마다 출근하고 있는 인싸라는였다는 건 작년에 알았다.
골목에서 '치타야'하고 부르면 어디선가 '야옹~'하고 뛰어나오는 너. 절뚝대는 발 때문에 예전처럼 어디선가 쏜살같이 뛰어나와 마중해주는 일은 없겠지만.
이제 치타는 나에게 익숙한 친구 같은 존재다.
말이 안 통하는 친구, 밥만 먹고 뒹굴대다 가도 매일 와서 생존신고도 하는 길위의 친구.
치타야, 오늘도 살아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