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귀도를 바라보다 쓰다
마실 중에
누군가와 마주치면 살짝 돌아간다. 요즘은 거리두기라는 좋은 핑계도 있다. 동네 삼춘들의 ‘어디서 왔어?’는 괜찮은데, ‘제주 분이세요?’로 시작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여행객들은 사양하고 싶다. 제일 큰 이유는 낯가림. 두 번째는 ‘여기 어디가 좋아요?’ 공격이 두려워서.
나만 아는 비경이나 현지인 숨은 맛집(그런 데가 있으면 저도 알려 주세요. 꾸벅)은 알려줄 수 없지만, 가끔은 먼저 말을 걸고 싶어 조마조마할 때가 있다. 어제 같은 때-
“어머 이 꽃 뭐야? 너무 예쁜데?”
“나팔꽃인가?”
“이런 나팔꽃은 한 번도 못 봤는데? 아! 접시꽃인가?”
“어?! 맞는 거 같다! 접시처럼 생겼네~!”
“그치그치?”
“어머 이건 또 뭐야?”
“무슨 과일이지? 자둔가?”
“좀 다른 것 같지 않아? 딱딱해 보이는데”
“사관가?”
“그 쬐그만 사과-통째로 먹는 거? 그럴 지도.”
“아! 혹시 석륜가?”
“어?! 맞다 맞다 석륜가 보다.”
“이게 커서 쫙 벌어지는 건가 보네.”
“우와 신기해.”
“저거 마라도야?”
“어?!! 마라도..는 아니지 않아?”
“제주도에 마라도 말고 무슨 섬 있는데?”
“어..우도랑..”
“우도는 아니잖아.”
“그치 우도는 일출봉에서 봤으니까. 그럼 마라도 맞나?”
“근데 마라도는 진짜 맑은 날에만 보일락 말락하는 거 아니었어? 환상의 섬 이어돈가 뭔가.. 그런 얘기 있지 않나?”
“오늘 맑잖아!”
“하긴. 우리가 운이 좋은가 봐 그치?”
결국 아무 말 못 했음. 운 좋다고 기뻐하고 있는데 굳이..
*덧. 혹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_
정답(사진)은 능소화 / 동백열매 / 지귀도 이며, 마라도는 이어도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