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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Sep 07. 2022

태풍의 눈 안에서 고냉이 남매는

고양이를 돌보다 쓰다


아들은 가뜩이나 외출을 좋아라 하는데 가을냄새가 나니 미치겠는 모양이다. 귀뚜라미 울지, 잠자리 날지, 나가 놀고 싶어 아주 안달이 났다.


우리집 고냉이들은 닝겐 남매가 보일 법한 행동을 고대로 한다. 아들은 나가 노는 걸 좋아하고 딸은 겁 많고 수다쟁이다. 하루종일 조잘대고 애교가 많아 잘 앵긴다. 냥애교에 정신팔려 있는 사이 아들은 몰래 탈출로를 찾는다. 보안이 약한 곳-주로 방충망을 공략한다.


문을 다 뚫기 전에 발각되어 대부분 실패지만 아주 가끔 문 여는데 성공할 때도 있다. 잡혀서 혼나도 당당하고 닝겐의 말 따위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한다. 그래도 아주 잠깐 얌전한 척하고 있다가 애꿎은 여동생에게 화풀이를 한다. 괜히 와서 뒷통수를 퍽 때린다.


먹을 걸 늘 더 많이 주는데도 동생 거 먼저 뺏어먹으려 하고, 늦게 먹는 동생 밥그릇을 기어이 뺏는다. 딸은 심심하면 장난감을 물고 와 놀아달라고 웅냥냥 조른다. 오빠는 애들장난 따위 시시하다는 듯 시크한 척 옆눈으로만 보다가 재밌어 보이면 득달같이 장난감을 가로챈다. 평소엔 쳐다도 안 보던 것도 동생이 좋아라하면 욕심부린다.


타고난 성격이라는  어찌할  없는지, 이젠 동생의 덩치가 훨씬 큰데도 오빠가 덤비면 꼼짝  한다. 아니  한다. 가끔 너무하다 싶을 때만 반격하는데, 그럴  보면 아멩헤도(암만해도) 충분히 이길  있지만 오빠라서 봐주는 거다. 맘만 으면  주먹거리도  되지만 오라방 기십 세와주젠( 살려주자고) 하는 건데  바보는 지가   알고 으스대는 거지.


그렇게 톰이 제리 쫓듯 허구헌날 물고뜯고 싸우면서도 저네끼리 있을 땐 세상 이런 애틋한 남매가 없다. 물고뜯을 땐 언제고 물고빨다가 꼭 보듬어안고 잔다.


우다다우다다 소란스럽다가 웬일로 조용하면 슬그머니 걱정이 된다. 어디서  하나 찾아본다. 무슨 사고를 치고 있을지 모른다. 대부분은 자거나 졸고 있지만 물어뜯다 지쳐 팽개친 슬리퍼를 먼저 발견할 때도 많다.


비오는 날은 남매가 비교적 얌전하다. 나가고 싶다고 울긴 하지만 빗소리에 금세 정신이 팔리니까. 냥이들은 소리에 민감해서 빗소리 새소리 음악소리를 좋아한다.


태풍이   다들 얼른 대피하라 했는데 냥들 핑계를 대며 밍기적밍기적 버텼다. 둘을 데리고 움직이기 힘들어서라고 했지만 다른 맘도 있긴 했다.  녀석들이 너무 무사태평인 거다. 종일 사고    치고 세상 얌전했다.  년에   있을까말까한  날이었다. 종일 창가에서 비바람 음악소리를 듣다가 밤이 되니 먼저 이불 깔고 누웠다. 닝겐은 자정께에 도착한다는 태풍 땜에 조마조마 노심초사인데 사지 뻗고 쌕쌕 고롱고롱 잘도 잔다.  모습을 보자니 아무일 없겠구나 싶기도 했다.


닝겐은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형편없지만  짐승과 벌레들은 민감하다질 않나. 지진이 오기 전에 쥐들이 먼저 알아차린다던지, 배에 불이   같으면 벌레들이 먼저 탈출한다던지. 개와 고양이는 기척에 민감하여 신이나 , 죽은 이들을 보고 듣는다고도 하고. 그렇게 초민감한 아이들이 저추룩이나(저렇게나) 천하태평인  보면 공기에 위험분자같은  없는  아닐까 하고.


정전이 되어 랜턴을 켜니 아들냥이 슬그머니 눈을 뜨고 새로운 광원을 바라본다. 딸냥은 거울에 반사되는 불빛에 꽂힌 모양이다. 랜턴을 조금 흔들어주었더니 반딧불이를 잡으려는  거울을 툭툭 치기 시작했다. 아아 그냥 아무생각 없었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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