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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Oct 26. 2022

만화로 배웠어요

머핀을 먹다 쓰다

마들렌, 휘낭시에, 에그 타르트. 이 정도는 쉽다. 대한민국에 많고많은 게 카페고, 그중 또 많은 곳이 빵이나 디저트를 같이 파니까. 이 셋은 그중 삼대장 정도랄까? 빵집에 가지 않고도 사거나 먹을 수 있는 익숙한 이름이다.


깜빠뉴, 포카치아, 스키치아타. 정신 바짝 차리자. 크기가 커지고 부재료가 많아질수록 이름도 길어지고 어려워진다. 그래도 아직 할 만하다. 앞이나 옆에 씌어있을 글씨를 발음에만 유의해 읽으면 되니까. 말없이 직접 쟁반에 담아도 되고, 정 급할 땐 손가락으로 찌르며 “이거요.” 해도 된다.


팡도르, 에끌레르, 크렘 브륄레. 문제의 원인은 다양하다. 자음과 모음의 익숙치 않은 조합, 흔치 않은 조우, 파티셰의 유니크한 조형감과 주재 파악이 힘든 신비주의 외형 외 다수. 베어물기 전에 기대해 두어야 할 맛의 이상형을 상실하는 단계까지 오면, 하나둘 포기자가 속출한다. “안 먹어!”


언니와 밥을 먹기로 했는데 시간이 좀 애매하였다. 점심이라기엔 늦었고 저녁치곤 일렀다. 많은 식당이 브레이크 타임을 가질 때기도 해서 샌드위치에 커피를 먹기로 했다. 언니의 말.

- 선호하는 메뉴 있수? 근처에 장봉뵈르 맛집이 있는데.

- 장봉뵈..는 또 뭐임.

- (사진 보여주며) 장봉=햄, 뵈르=버터. 저 초록은 바질.

- 빵은 바게트인가? 치아바타는 없고?

- 치아바타 맛집은 따로 있는데.

- 파니니도 괜찮고. 뭐, 깜빠뉴만 아니면 됨. 이 땜에(딱딱한 빵은 힘들어서).


옆에서 듣고 있던 형부의 말.

- 처제도 불어 전공?

- ? 아뇨?

- 뭔 외국어인가 해서. 나한테는 묻지 말고 알아서 시켜주슈.


그렇다. 옆 사람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불문학 전공에 빵순이인 언니 덕에 나는 촌년치고는 이쪽에 빠삭한 편이다. 어디 가서 이름을 몰라 창피당할 일은 없다는 얘기다. 물론 신메뉴를 영접하는 등의 경우도 많지만 그렇다고 주눅들지 않는다. 모르면 물어보면 된다. 사는 데 도움 되는 별다른 재주는 없지만, 물어보는 거 하나는 잘한다, 내가. “이 중 어느 게 슈톨렌인가요?”


하나도 안 창피하다. 잘라서 꽁꽁 싸놓기까지 한 걸 알아보는 사람들이 용한 거 아닌가? 에그 베네딕트가 뭔지도 모르고 시켰다가 덜 익은 계란 토스트를 비싸게도 팔더라며 기함하는 것보단 낫다. 친구 A군 얘기다.


묻지도 않고 시킨 건 실수였지만 충분히 이해되었다. A는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첫 제주여행을 온 거였다. 직접 예약한 바닷가 레스토랑에서 근사하게 브런치라는 걸 즐겨보고 싶었던 거다. 아내가, 그래도 빵으로 접시를 깨끗이 훑어 먹더라며 웃었다. 빵은 끼니가 될 수 없고 반숙은 음식도 아니라는 고루한 입맛의 A가, 묵묵히 쓴 커피만 홀짝였을 모습이 훤하게 그려졌다. 그렇다고 기가 죽었을까. 아니, 재미있는 추억 하나 새겨넣었을 뿐이다. “남겼으면 진짜 억울했겠지만, 다 먹었다니까.” 이름은 몰랐어도 맛있게 먹었다니 된 거다.


스콘, 티라미수, 부쉬 드 노엘. 많은 이름을 책으로 배웠다. 동화와 만화로 보고 상상하며 궁금해했다. 구운 사과, 거위 요리, 문어풀빵, 포토푀. 사람 이름 동네 이름은 다 까먹었어도 이 이름들만은 생생한 건, 흘린 침만큼 간절했던 상상 덕분이리라.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마리 앙뜨와네뜨의 이름은 잊었어도 오스칼의 얼굴은 잊지 않았다. 이 대사 덕에 빵과 케이크가 다른 음식이라는 걸 알았다.   


P의 전화.

- 밥 먹었어?

- 어. 너는?

- 커피에 케이크 먹었어. 누가 줘서.

- 케이크 먹었어?

- 아니, 케이크는 아닌데.

- 케이크는 아닌데 케이크 먹었어?

- 어. 그런 걸 뭐라 하지?

- 파운드 케이크?

- 아니, 동그란 건데.

- 롤케이크?

- 아니, 롤은 아니고.

- 팡도르? 파네토네? 부쉬 드 노엘?

- 아니, 그렇게 어려운 이름이 아니야.

- ....

- 스머프가 먹는 거!

- 스머프? ....머핀!

- 어. 머핀!!!!


욕심이 스머프에게 머핀을 배웠다. 오늘의 브런치는 커피와 머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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