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다 쓰다
큰이모가 한국 올 때 갖다주신 커피를 동생이 보내줬다. 뭘까 싶었는데 세이렌 로고네, 흠. 모비딕을 사랑하는 나라에서 온 커피답긴 하군.
아니 대량생산과 유행을 사랑한다고 해야겠지. 올드패션드 스위스 회사 대신 미국 프랜차이즈가 최신유행을 선도하리니. 이모는 이십년 전에는 초이스를 가져왔었다. 한 박스를 싸왔어도 9남매의 조카들까지 챙기기엔 빠듯하다 했으니, 세 봉지가 내게 돌아온 건 언니동생이 양보한 덕이었다. 지금 이 커피도 실은 동생 몫이었던 거다.
그 때, 그러니까 이십 대 때 집에서 먹을 수 있는 커피는 인스턴트 뿐이었고, 나는 입에 밴 초이스가 제일 맛있었다. 그 중에서도 이모가 준 커피가 으뜸이었다. 국내에 수입되던 것보다 미국에서 유통되던 제품이 훨씬 좋았던 거다.
하루는 고모가 우리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가서는 평생 마시던 맥심을 버리고 초이스를 샀다고 했다. 그리고 몇 달인가 후에 새 커피 한 봉지가 사라진 일이 있었다. 집에 드나드는 유일한 사람인 고모는 초지일관 모르쇠였다. 몇 달치의 커피가 못내 아쉬웠던 나는 단골커피숍을 통해 해외직구를 시도하기도 했다.
어렵게 구한 노란통 한 병을 친구에게 선물했다가 원망을 들었다. 커피 별로 안 좋아했는데 중독이 되버렸어, 게다가 이제 싸구려 커피는 맛없어서 못 먹겠어, 너 때문이야! 난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좋아하는 걸 꾸준히 좋아하다 보면 좋아하는 기운이 자연스럽게 퍼진다.
성격 이상하다느니 취향 독특하다는 말을 곧잘 듣는다. 좋은 걸 좋다고, 싫은 걸 싫다고 표현하는 일이 줄어든다. 불평 많은 사람이라는 단정은 몇 번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커피가 ’쓰다‘는 말이 혹평이나 불평은 아니라고 이해시키려 애쓰는 것도 피곤하다. 커피맛? 응, 커피맛이야.
역시 불평 많네. 그냥 맛있다, 맛없다로 얘기해 보라고? 미국에서 출발해 대전과 부산을 거쳐 제주에 있는 내 뱃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스타벅스 오가닉 윈터 블렌드. 맛있다. 브랜드라서, 유행이라서가 아니라. 오늘의 커피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