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 <체스 이야기>를 읽다 쓰다
체스를 둘 줄 모르지만 로망이 있다. 환상이나 콩깍지 같은 거. 예쁜 체스판을 보면 사고 싶고, 체스 두는 사람을 넋놓고 보게 되고, 그가 영화나 소설 속 인물이면 덮어놓고 사랑에 빠져버리는, 그런.
왜 이렇게 되었나 생각해 보니 결국 이야기 때문이었다. 환상동화를 좋아했고 아버지가 게임에 져서 빼앗긴 영혼을 아이가 찾아오게 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주인공은 성벽 아래서 기사, 성직자와 함께 싸워 여왕을 지킨다. 체스 세계는 환상 그 자체였다.
슈테판 츠바이크라는 세계적인 전기작가를 안델센 친구쯤으로 떠올리곤 하는 연유도 같다. <체스 이야기>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거다. 나는 이 사람의 소설 몇 편을 환상동화로 기억하고 있었고, 크게 잘못된 기억은 아니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체스 이야기>에는 체스를 두는 사람이 여럿 나오지만 누구도 주인공은 아니다. 제목에 답이 있듯 주인공은 ’체스‘다. 세계 챔피언일지라도 체스를 제치고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사람은, 어떤 사람도 체스를 지배하거나 이기거나 익힐 수 없다. 체스는 ’무로 이끄는 생각, 무에 이르는 수학, 작품 없는 예술, 실체 없는 건축‘이니까.
인간은 실체 없는 무를 만들 수 없으니 이 이야기는 환상 속에서만 일어나고 비극으로 끝날 것이다. 하지만 판타지 등장인물에게는 불가능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용기라는 아이템이 있는 법. B박사는 혼자서 체스와 상대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시도를 한다. 상대한다고는 하지만 상대(체스)는 실체가 없으니 실제로는 혼자 왔다갔다하는 거다. 한 수는 이 편, 한 수는 저 편에서 게임을 한다. ’자기 자신을 상대로 게임을 하려는 것이 체스에서는 자신의 그림자를 뛰어넘으려는 것과 같은 역설을 의미‘하는데도.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뛰어넘었을까? 작가가 그리는 인물은 모두 작가 자신의 반영이다. 츠바이크는 이런 생각 자체가 부조리임을 알고 있었을 테다. 그럼에도 불가능한 시도를 해본 것 같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자유의지와 맑은 정신으로” 세상을 떠난다는 유서를 남기고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