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만화를 떠올리며 쓰다
최유기라는 만화가 있었다. 서유기의 과격버전 정도 되는데, 이상현상으로 세상의 요괴들이 폭주하기 시작하여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도 아니 요도로 향한다는 설정이다. 가는 곳마다 죽자고 덤벼드는 요괴들을 처치하며 달려가는 판타지요괴액션어드벤처게임로드만화다.
삼장법사만 빼고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은 요괴 혹은 반인반요다. 평상시엔 요기를 누르고 다니는지라 겉보기엔 모두 인간으로 보인다.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러 간다 하니 무슨 고스터버스터즈 같은 팀일 것 같지만 팀웍 같은 거 없고 지들끼리도 죽도록 싸우는 오합지졸 깡패집단이다. 단지 싸움을 좀 잘 할 뿐이다.
한 마디로 정체불명이다. 사명감이랄까, 싸움의 원칙 같은 것도 없는 듯하다. 문제가 있는 곳에 가서 싸우는 게 아니라 이들이 가는 곳마다 싸움이 생긴다. 요괴들하고만 싸우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과도 싸우고 신하고도 싸운다. 엉망진창이다.
아무튼 내 취향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 책을 기억하고 있는 건 대사 하나 때문이다. 한 번은 무고한 요괴를 다구리하던 사람들과 싸움이 붙었는데, 두들겨맞은 사람 중 하나가 매우 억울해하며 말한다.
-너희는 인간이잖아.
그런데 왜 요괴 편을 드냐는 말이다. 유일한 순수인간인 삼장의 답이다.
-그게 뭐 대단해?
인간, 인류애. 그때까지 보아온 모든 문학과 드라마와 영화와 만화에서 지상 가치로 삼던 것들을 간단히 무시하는 대사였다. 이때 귀가 좀 트였다.
한 가지를 절대가치로 삼으면 맹목이 될 수 있구나. 무언가를 대단하다고 정의하는 순간 그 외 부분은 하찮게 여길 수 있겠구나. 사람들에게도 그리 할 수 있겠구나. 대충 그런 생각을 했다.
자기와 다른 사람, 자기보다 약한 사람이나 동물을 무시하는 경우를 보거나, 인간의 편의만을 좇는 자연파괴 현장을 볼 때면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 뭐 대단해?
옛날 사진을 발견하고, 기억이 기억을 부르고,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불러와 시답잖은 얘기를 한참 했다. 그러고 나니 배가 고프다. 인간이 참 별 거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