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단풍잎 앞에서 쓰다
단풍잎은 무슨 색일까?
단풍잎이란 말을 하거나 들으면서 우리는 대부분 붉은색이나 붉은 갈색을 떠올린다. 늦가을 단풍잎이 붉게 물들긴 하지만 봄 여름 두 계절을 초록으로 사는데도.
단풍잎은 몇 갈래?
단풍잎 같은 손, 이라는 말에 길든 나는 오랫동안 단풍잎이 다섯 갈래인 줄만 알았다. 실제로 보면 일곱 갈래로 보이는 잎이 훨씬 더 많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거나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 직원에게 어머니라고 불리곤 한다. 어머니 혹은 할머니도 될 수 있는 나이인 건 맞지만 암만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이가 읽을/입을/먹을 걸 찾으시나요, 라는 질문까지 받으면 결국 기분이 상해서 대꾸도 하기 싫어지곤 한다.
호칭에 있어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도 안다. 한국은 누굴 부르기가 참 어려운 나라니까. 흔히 쓰던 말을 비하의 표현이라 하여 쓰지 못 하게 된 경우도 여럿이니 더욱 어려워졌다. 마땅한 호칭을 찾지 못 해 절절매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요즘은 선생님이 두루 쓰이는 편인데, 이도 탐탁찮게 여기는 사람들은 있다. 선생님은 교사에게 붙이는 호칭이니 (교사가 아닌)아무에게 쓰는 건 옳지 않다고 그들은 말한다.
선생이란 먼저 태어난 사람이니 교사가 아니어도 쓸 수 있는 말이라 해 버리면 이번에는 나이가 걸린다. 그렇다면 나보다 어린 사람한텐 뭐라고 불러? 언젠가 자기를 선생님이라 했다며 ‘내가 누군 줄 알고’로 시작한 싸움을 본 적이 있었다. 알고보니 ‘내가 누구’씨는 교수였고 그가 교수인 줄 모르고 선생님이라 부른 주차장 직원은 조금 더 나이가 있어 보였다. 주차하는 와중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던 모양인데 와중에 자기를 옳지 않은 호칭으로 불렀다며 교수가 화를 내기 시작한 것. 선생님이란 말 한 번 했다가(아저씨도 아니고) 주차장 직원과 나를 포함한 다른 운전자 서넛까지 교수의 일장연설을 들어야 했으니 가장 피해가 심했던 건 제3자인 나(와 다른 운전자들)였다.
길었는데, 말 하나에 새겨진 고정관념에 대하여 생각해 봤다는 얘기고, 숲마실을 마친 한참 후의 일이었다. 숲에서는 신록을 보고 마시고 만지느라 바빴다. 단풍잎도 새록새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