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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Jun 03. 2023

비파 쇼크

비파 앞에서 쓰다

내 고향 유월은 비파가 익어가는 계절.


..아님. 내 고향도 아니고 비파라는 과일이 고대 중국 아니고 현재 대한민국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몇 해 전에야 알았음.


촌년이 제주 와서 알게 된 게 한두 가지가 아니고 모두 나름의 각별함이 있지만 그중 또 유난했던 게 야이(얘)다, 비파. 어느 유월엔가 어느 집 돌담에 상반신을 무겁게 걸친 나무를 봤다. 살구색 열매가 자락자락(주렁주렁) 달렸길래 살구구나, 했다. 비파도 모르고 살구도 뭔지 몰랐던 것. 분홍빛 도는 주홍을 살구색이라고들 하길래 살구라는 과일이 있는 줄 알았지 실제로는 먹어본 적도 없었다. 마트에 진열된 모습 정도는 흘긋 본 듯도 해서 작은 복숭아 같은 거라고만 뇌세포 한 꼬집쯤 써서 인식했던 거 같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음악시간마다 부르던 노래에 들어있던 살구도 그럴진대 이름도 생소한 비파를 알았을 턱이 있나. 고대 중국 배경의 전설 따라 삼천 리 속에, 천하제일미녀는 비파를 뜯고 수염 허연 신선들은 비파나무 아래서 열매를 먹으며 장기를 두었다,는 식으로나 등장하던 귀한 몸을 무슨 수로.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친절하게 이름을 알려 주시는 삼춘들에겐 그리 대꾸하는 게 아니다.


“어디난 비파도 몰르멘?(어디서 왔길래 비파도 몰라?)”


“(목소리는 클수록 좋다)비파마씸? 기구나예. 육지서 오난 몰라수다. 고맙수다양!“


이추룩 허는 거. (이렇게 하는 거다.)


주의사항. 삼춘의 기분 상태와 바쁨 정도에 따라, 가던 길 못 가고 붙들릴 수 있음. 무식한 촌년 귀여워하는 삼춘 만나면,


”이건 알아져? 저디 저건 알아져? 제피 알아져? 양애도이?…”

(이건 알아? 저기 저건 알아? 초피 알아? 양하도?)


“모르쿠다. 와! 기마씸? 예게, 근데 삼춘, 저가 이제 가ㅂ..ㅘ야 ㅎ… “

(아뇨. 와! 진짜요? 네, 근데 삼춘, 제가 이제 가야….)


이추룩 될 수 있다. 게다가 이쯤 되면 삼춘 말을 알아듣는 건 불가능 쪽으로 가속이 붙는다.


참, 비파!


얘는 중국이 고향이 맞다. 나무 중에 그런 게 많은데, 일본에서 품종을 다양하게 개발해 퍼뜨렸고 그때 한국에도 많이 들어왔을 거라 한다. 하나 본격적으로 재배하지 않아서 지금은 시골마을 시골집에서나 가끔 보이는 정도. 아열대성이라 남쪽, 특히 섬에 많다. 바닷가 기후에 잘 맞는 모양이다.


생과도 향긋하니 맛있지만 작년에 누가 청을 담가놓은 걸 얻어 맛을 봤는데, 어머 깜짝이야! 태어나서 황도백도(과일 통조림)를 처음 먹어봤을 때 받았던 충격을 고스란히 느꼈다. 이해가 안 된다면 각자, 없어서 못 먹는 과일을 처음 먹었을 때 받은 충격을 떠올려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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