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앞에서 쓰다
어린 나이에 책을 읽으면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당연히 있다. 아이들에게 영재교육을 시키고 싶어하는 부모들이야 미미한 단점쯤은 없는 셈치고 싶을 테지만.
아빠는 바쁘고 엄마는 더 바빴다. 모르는 말을 물어봐서 친절한 답이 돌아오는 건 딱 두 번까지였다. “엄마, 개암이 뭐야?“는 세 번째 질문이었고 돌아온 답은 “바쁘다 안캤나, 저녁에 아빠한테 물어바라.” 였다. 저녁까지 기다릴 수 없던 얼라는 밤 도토리 비슷한 건가보다 짐작하며 다음 문장으로 넘어갔다. 실물 개암을 본 적이 없는지라 아직껏 그런 걸로 생각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홀로 문해력을 키워갔으나 마땅한 쪽으로만 큰 건 아니라는 얘기다. 짐작은 짐작일 뿐이어서, 엉뚱한 의미를 단어에 입혀 버리곤 했던 것. 문해력이 상상을 만나니 난독이 되기도 하더라. 이해력과 난독력이 함께 늘었다.
곰국은 곰고깃국인 줄, 동전세탁소는 동전을 닦아주는 가게인 줄 알았다. 지금도 비슷하다. 어제, 간판에서 ‘死後관리’라는 글씨를 읽고 화들짝 놀라 찰나의 안드로메다 여행을 하고 왔다는 얘기를 길게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