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담 앞에서 쓰다
산담만 찾아다니며 찍던 때가 있었다. 담벼락만 보면 나침반 자침 돌듯 극점을 향해 돌아가는 눈을 갖기도 했지만, 집담 밭담과는 또 다른 끌림이 산담에 있다.
우연히 만난 산담은 언제나 좋다. 외진 산모롱이를 돌다, 혼자 걷는 숲길을 사뭇 으스스해 하기도 하다 마주친 산담은 그저 반갑다. 양지바른 둔덕에 떨어지는 볕이 따숩다 못해 고맙다. 말간 들풀 무성한 봉분과 산담 사이 저 우묵한 자리가 그렇게 아늑해 보이니, 무덤가에 몸을 뉘고 단잠을 잤다던 옛이야기 속 나그네가 비로소 이해가 되는 거다.
오롯이 쉬고 싶으나 혼자일 수 있는 시간도 장소도 없던 때 무덤을 찾곤 했다는 사람을 둘 알고 있다. 그들이 간 건 부모나 가족의 무덤이 아니라고 했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무덤가에서 잠시 머물다 오곤 했다고. 외딸고 적요한 산(무덤)을 볼 때면 고요를 찾아와 머물렀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들이 기대기도 했을 담돌에 손을 대 보면 온기와 함께 찌르르 옮겨오는 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