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말리는 풍경
해를 보러 갔었다. 사람 많은 데 싫다고 새해 첫날 해맞이도 한번 안 가봤는데 무슨 변덕이었을까. 어쩌면 그전에 올랐을 때 날이 너무 흐려서, 경치가 그만이라던 오름에서 (한라)산도 바다도 보지 못해서였는지 모른다. 알 만한 이는 다 아는 해돋이 명소라는 토박이 친구의 말을 확인하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고.
어쩌면 중턱에서 숨 고를 때 보았던 산담이 기억에 또렷해서였을지도. 어느샌가 한 바퀴 돌고 온 친구 손에 꽉 차게 들려있던 고사리가 눈에 밟혀서였을 수도 있겠다. 식탁 위 반찬으로만 보던 풀들을 걷다가도 주워 올리는 모습은 경이롭기만 했으니, 처음 간 동쪽 동네와 오름이 마음에 확 들어왔더랬다.
모처럼의 휴일에 어둠을 달려 도착하고서야 생각났다, 오름 입구가 곧 공동묘지였던 것. 무덤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고 그제야 혼자라는 게 슬몃 걱정이 되었다. 귀신이 아니라 어느 순간 갑자기 마주칠지 모를 사람이. 컴컴한 묘지에서 낯선 사람을 만난다면? 스스로 공포영화 주인공이 된 셈이었다.
한참 꾸물대다 예까지 온 게 아깝지 않냐고 나를 달래 더듬더듬 올라갔다. 몇 대쯤의 덕은 쌓아야 영접한다는 바다에서 뜨는 해를 보았고, 한라산의 맑은 얼굴도 반가이 보았고, 귀신이나 사람은 마주치지 않았다. 혹은, 마주치고도 알아채지 못했거나. 환해진 길을 되짚어 내려올 때 저만치서 풀숲을 더듬는 이가 있기에 성묘객이겠거니 했을 따름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수상한 옷차림의 사람’이라는 옛날 간첩신고 문구를 떠올렸고, 내 차림은 어떤가 훑으며 웃을 여유마저 있었다.
고사리를 꺾고 있었을 테지. 이 집 저 집 마당에, 담벼락 여기저기에 널린 방충망들을 보며, 그때와 같은 웃음을 입 끝에 물고 생각한다. 도시내기 눈엔 신기한 것투성이여서, 문에나 달려있어야 할 방충망이며 문발이 따로 떨어져 있는 풍경이 그렇게 재미있었다. 지붕 위에고 길바닥에고 놓여 있으면 쪼르르 달려가던 버릇이 여전하다. 망 위에 몸을 펴고 얌전하게 말라가는 생선이며 풀들을 보면 마냥 기분이 좋다. 조금도 질리지 않는다.
올해 고사리장마는 퐁당퐁당 날씨다. 하루는 흐리고 하루는 쨍쨍하고, 어제 비가 오더니 오늘은 맑다. 좀 더울 정도다. 반짝 난 봄볕에 얼른 내다 널었을 고사리들이 고슬고슬 말라간다. 손을 대보지 않아도 또똣(따뜻)하고 입에 넣어보지 않아도 코시롱(고소)한 풍경이다.
고사리(장)마라구? 진짜 그런 게 있는지, 그냥 비유인지 첨엔 몰랐으되 귀에 쏙 들어오는 말이긴 했다. 재미있잖아, 뭔가 동화에 나오는 말 같기도 하고. 본 장마가 시작되기 전, 올 듯 말 듯 내리는 장마의 애벌쯤 되려나, 짐작해 봤었다. 아가들 손을 고사리손이라 부르는 데서 연상해보았던 거다. 그러고 보니 그땐, 고사리손이 왜 고사리손인지도 모르는 바보였다. 산 고사리를 태어나 처음 보고 한 말이 “진짜 고사리손처럼 생겼네!”였으니까.
사오월 제주엔 비가 잦다. 원래도 사시사철 비바람 많은 섬이긴 하나, 추위와 더위가 자리바꿈을 하는 이때엔 밤마다 비가 오거나 날마다 안개가 자욱하거나 한다. 마침 새순을 올리는 고사리가 빗물과 습기를 쭉쭉 받아먹고 쑥쑥 큰다. 해서 고사리장마라는 거다. 기후도 말도 조금씩 다른 섬, 역시 조금은 동화 같은 곳이다.
고사리 동화 속, 고사리 마을을 걷는다. 동세벡(꼭두새벽)에 고사리 앞치마 입고 고사리 가방 메고 오름이니 무덤가니 촐밭으로 올라갔던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와 고사리를 넌다. 이 집 저 집 마당에, 담벼락 여기저기에 고사리가 널린다. 빗물 통통했던 고사리가 이제 햇볕을 담뿍 먹는다. 고슬고슬 말라가는 고사리에서는 맡아보지 않아도 봄비 냄새가 나고, 멀리서만 봐도 봄볕 냄새가 난다. 만져보고 쥐어보지 않아도 보드랍고 또똣하다. 아이의 고사리손을 솔짝이(살짝) 잡은 듯, 마음이 연해지는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