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의 기억을 쓰다
방을 갖고 싶었다. 책상도 책장도 갖고 싶었다. 방 하나에서 다섯 식구가 같은 이불 덮고 잠을 자고 옷을 갈아입었다. 밥상에서 숙제를 하고 벽에 기대앉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책을 읽었다. 책은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 한쪽에 쌓여 있었다.
다락은 벽장이나 다름없는 좁은 공간이었다. 앉아서도 천장에 손이 닿았다. 그래도 몸집이 작은 내가 엎드려 책을 읽을 정도는 되었다. <부활>과 <돈 까밀로>를 읽었다. 어느 날 언니가 선물 받았다며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2>를 집에 가져왔다. 언니가 다 읽기를 기다리며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다시 읽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빈 데를 못 참는 결벽이 있다.
이럴 수가. 이렇게 슬픈 내용이었어? 처음과 달리, 티셔츠 위로 가슴을 쥐어뜯으며 읽었다. 꺼이꺼이 울었다. 손바닥으로 받을 새도 없이 바닥에 펼쳐놓은 책장 위로 눈물이 투둑투둑 떨어졌다. 계단 위로 엄마나 언니의 머리가 불쑥 올라올까 봐 반대로 엎드렸다. 용을 쓰며 훌쩍소리를 삼키느라 목젖부터 식도 안쪽, 목 뒷덜미까지 다 아팠다. 젖어서 우글쭈글 울어버린 책장을 들키지 않으려고, 서로 달라붙을까 봐 저녁 내내 말렸다. 옆에 있던 <데미안>으로 부채질을 했다. 조금만 더 넓었으면, 잠글 수 있는 문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스무 살에 방과 책상이 생겼다. 아빠가 사무실에서 쓰던 책상을 가져왔다. 의자를 넣고 이불을 깔고 누우면 안으로 열리는 방문을 열 수 없었다. 상관없었다. 문에 달린 반투명 유리를 <키드> 포스터를 붙여 가렸다.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당시 컴퓨터 본체 가격과 맞먹던 스피커를 샀다. 서라운드 스피커를 구석마다 두고 4.1 채널로 음악을 듣고 영화를 봤다.
몰래 옷소매로 울음을 누르지 않아도 되고 일기장을 감춰둘 필요도 없었다. 닥치는 대로 읽고, 보고, 듣고, 썼다.
짧았다. 짧았던 것 같다. 얼만큼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방을 잃었다. 다시 갖기까지 십 년이 걸렸다. 기쁜 줄도 몰랐다. 많이 읽고, 보고, 들었지만 쓰지 못했다. 너무 오래 쓰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고, 과거로만 돌아앉아 억울해했다.
방만 갖고 싶었다. 방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었다. 큰 소리로 노래를 듣고, 직접 지을 수도 있었다. 랭보 흉내를 내어 술잔을 홀짝이며 시를 쓸 수 있었다. 커트 보니것을 읽으며 맘 놓고 킬킬거리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때문에 펑펑 울다가 기타노 다케시를 보고 데굴데굴 웃을 수 있었다. 그러다 영화를 만들고 시나리오와 소설을 써볼 수도 있었다.
방이 생겼다. 세를 주고 빌린 방이고, 방음이 썩 좋지 않지만 문만 잠그면 혼자다. 책상도 있고, 노트와 랩탑도 있다. 가스레인지도 있고 전기 주전자도 있다. 좋아하는 커피를 얼마든지 마실 수 있다. 냉장고에 맥주를 넣어둘 수도 있다.
쓰지 못하는 이유가 없어지니 쓰지 않는 이유가 생겼다. 과거로 돌아앉는 버릇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바라던 방이 생겼는데 여기 앉아있지 않고 자꾸만 과거로 간다.
억울해서 그런가? 억울해! 불공평해! 충분히 악을 쓰지 않아 그런가? 그럼 한 번 해보자. 악쓰고 떼써본다. 목이 쉬게 소리 지르고 돌아와 방에 앉자.